책 만드는 일을 재밌다고 표현하면 불경스러울까. 잘난 체하는 것일까. 재밌는 것은 사실이고 잘난 체하고 싶은 마음이 생길 때도 있다. 어떤 잘난 체냐면, 책을 내지 않으려는 저자를 설득해 결과물을 냈을 때의 쾌감을 바탕으로 ‘세상에나, 결국 해냈어’하는 심정.

다큐멘터리 평전 〈노라노: 우리 패션사의 시작〉은 4년 전 다큐멘터리 영화 〈노라노〉를 본 데서 비롯되었다. 영화를 보면서 아흔 가까운 나이의 현역 패션 디자이너에 매혹되었다.  

〈노라노:우리 패션사의 시작〉
최효안 지음
마음산책 펴냄

작년 여름 한 방송기자의 출판 아이디어를 들었다. 노라노를 10년 정도 취재했는데, 다큐멘터리 평전을 내고 싶다고 했다. 마음산책이 때마침 우리 여성의 최전선이라고 할, 시대보다 보폭이 조금 빨라 삶은 힘겨웠지만 개척자의 강함과 매력을 잃지 않은 여성 이야기를 기획하려던 때였다. 

1956년 한국에서 최초로 패션쇼를 연 디자이너, 맞춤복이 아닌 기성복을 최초로 도입한 디자이너, 미니스커트와 판탈롱 유행을 만들어낸 디자이너, 미국의 백화점에 최초 진출한 디자이너. 뭐든 ‘최초’라는 수식어가 붙는 패션디자이너가 최장수 현역으로 일하고 있다. 자서전을 출간한 2007년 이후의 삶도 궁금했거니와 다시 새로운 시각으로, 노라노의 삶을 저널리스트의 생동감 있는 필체에 담아내고 싶었다.

책의 편집 과정은 순조롭지 않았다. 〈박남옥:한국 첫 여성 영화감독〉과 동시 출간을 계획했지만 쉽지 않았다. 노라노 디자이너가 살아생전 평전의 형태로 자신의 이야기가 나오는 것을 극구 사양했기 때문이다. 사진 자료 등은 얼마든지 제공할 테니 살아 있을 때는 출판하지 말라는 게 조건이었다. 왜 지금 출판해야 하는가에 대해 깊은 토의, 설득 끝에 책이 나왔다. 책의 행간에 노라노의 겸양이 스며 있다. 다행이다, 지금 독자와 함께 나눌 수 있어서.

기자명 정은숙 (〈마음산책〉 대표)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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