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 신선영퓰리처상 상패가 전시된 〈필라델피아 인콰이어러〉의 ‘퓰리처 벽’.

필라델피아 인콰이어러(The Philadelphia Inquirer)

설립 : 1829년 6월1일규모 : 기자 250명출판 방식 : 종이 신문, 웹사이트독자 : 유료 구독 30만명       웹사이트 월 순방문자 8500만명수상 : 1975년 퓰리처상 국내보도 부문      1976년 퓰리처상 만평 부문      1977년 퓰리처상 지역 탐사특별보도 부문      1978년 퓰리처상 공공보도 부문      1979년 퓰리처상 국제보도 부문      1980년 퓰리처상 특종보도 부문

      1985년 퓰리처상 탐사보도 부문·피처사진기사 부문      1986년 퓰리처상 국내보도 부문·피처사진기사 부문      1987년 퓰리처상 탐사보도 부문 2개·피처기사 부문      1988년 퓰리처상 국내보도 부문      1989년 퓰리처상 국내보도 부문·피처기사 부문      1990년 퓰리처상 공공보도 부문      1997년 퓰리처상 해설보도 부문      2012년 퓰리처상 공공보도 부문      2014년 퓰리처상 비평 부문

미국 펜실베이니아 주 필라델피아는 미국 건국의 역사를 간직한 도시다. 도시 한가운데 작은 공원에 있는 인디펜던스 홀은 1774년 미국 최초의 연방의회라고 할 수 있는 제1차 대륙회의가 열린 곳이다. 1776년 7월4일, 이곳에서 식민지 대표들이 독립선언문에 서명했다. 1787년에는 미국 연방헌법이 제정·공포됐다.

이 지역 대표 언론 〈필라델피아 인콰이어러〉(The Philadelphia Inquirer)도 인디펜던스 홀만큼이나 미국 언론사에서 유서 깊은 곳이다. 188년 전인 1829년 6월에 창간했다. 지역 신문사이지만 〈필라델피아 인콰이어러〉는 전국지 못지않게 정론지로서 명성을 떨쳐왔다. 창간 이래 퓰리처상만 20개를 받았다(퓰리처상은 1917년부터 시작해 〈필라델피아 인콰이어러〉보다 역사가 짧다). 상패를 걸어놓기 위해 사무실 벽 한 개를 통째로 비워야 했다. 기자들은 ‘퓰리처 벽(Pulitzer Wall)’이라고 부른다.

벽을 장식한 화려한 역사가 프린트 미디어(인쇄 매체)의 미래까지 담보해주지는 못했다. 디지털 파고를 겪는 언론사가 그렇듯 재정 위기가 덮쳤다. 2006년 〈필라델피아 인콰이어러〉의 소유주였던 나이트 리더가 20년간 보유했던 신문사를 매각했다. 이후 신문사는 계열사인 〈필라델피아 데일리 뉴스〉 〈필리닷컴〉과 함께 2014년까지 소유권이 일곱 차례나 바뀌었다. 출판사, PR 회사 간부, 헤지펀드, 보험회사 간부, 뉴저지 민주당 대표에게 잇달아 매각됐다. 회사 경영이 불안정하면서 세 언론사의 광고 수익이 2000년 3억9204만8000달러(약 4434억4549만원)에서 2012년 7845만9000달러(약 887억2143만원)로, 12년 만에 5분의 1로 줄었다.소유주는 비영리 재단, 신문사는 영리조직으로

2014년 필라델피아 출신 자선가 제리 렌페스트가 공개 경매에서 〈필라델피아 인콰이어러〉 〈필라델피아 데일리 뉴스〉 〈필리닷컴〉을 사들였다. 인수한 뒤 그는 ‘필라델피아 미디어 네트워크’라는 이름으로 세 언론사를 합병했다. 〈필라델피아 인콰이어러〉 전성기였던 1995년 기자가 700명에 달했는데, 합병한 뒤에는 250명으로 줄었다.

새 소유주 제리 렌페스트는 한 걸음 더 나아갔다. 그는 실험적인 경영 모델을 도입했다. ‘뉴미디어 저널리즘 재단(Institute for Journalism in New Media)’이라는 비영리 재단을 만들어 필라델피아 미디어 네트워크 지분 전체를 기부했다. 즉 신문사 소유주가 비영리 재단이 된 셈이다. 이 재단은 저널리즘의 지속 가능성을 지원하기 위해 전국적으로 모금 및 후원 활동을 벌였다. 그 재원으로 저널리즘 스쿨의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주거나, 후원을 요청하는 언론사를 지원한다.

〈필라델피아 인콰이어러〉의 소유주는 비영리 재단이지만, 그 자체는 여전히 영리조직이다. 즉 신문을 팔고, 광고를 받고, 신문사 이름으로 포럼이나 콘퍼런스를 개최해 수익을 낸다. 다만 그 수익이 외부로 빠져나가지는 않는다. 더 이상 배당을 요구하는 주주나 이익을 바라는 소유자가 없기 때문에, 이 수익은 고스란히 〈필라델피아 인콰이어러〉에 재투자된다. 제리 렌페스트는 〈필라델피아 인콰이어러〉를 인수할 당시 “가장 사랑하는 도시에 저널리즘이 계속 살아 있는 것보다 중요한 일은 없다”라고 밝혔다.

필라델피아 미디어 네트워크 부회장 겸 〈필라델피아 인콰이어러〉 주필인 스탠 위슈노스키는 〈시사IN〉과 인터뷰하면서 “예전에는 항상 우리 회사 주가가 얼마인지 걱정했고 주주들에게 항의 전화가 오지 않을까 노심초사했다. 이제는 우리가 지출하는 만큼만 벌면 된다”라고 말했다(오른쪽 상자 기사 참조).

〈필라델피아 인콰이어러〉도 다른 전국 언론사와 마찬가지로 뉴미디어 저널리즘 재단에 후원을 요청할 수 있다. 다른 언론사와 똑같이 심사를 받는다. 최근 〈필라델피아 인콰이어러〉는 ‘편집국의 다양성 확보’ 차원에서 성 소수자나 장애인 기자 등을 추가로 고용하고 싶다며 후원 요청서를 재단에 냈다. 뉴미디어 저널리즘 재단은 이를 심사한 뒤 지원을 결정했다. 이 지원금으로 기자 6명을 더 고용할 수 있었다.

흑자와 신뢰도, 두 마리 토끼 잡아

〈필라델피아 인콰이어러〉의 실험은 성공했을까? 위슈노스키 주필은 “실험 단계이다. 아직 확실하게 성공을 말하기는 조심스럽다”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징조는 나쁘지 않다. 지난해 〈필라델피아 인콰이어러〉는 2012년 적자로 돌아섰던 이래 처음으로 수익을 냈다. 또 지난해 〈필라델피아 인콰이어러〉는 펜실베이니아 주 전체에서 최고의 신문사로 선정되기도 했다. 흑자와 신뢰도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은 셈이다. 위슈노스키 주필은 “분명한 건 이 모델을 복제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제리 렌페스트처럼 사회문제에 관심을 가진 시민들이 나서준다면, 재정 문제로 고군분투하는 신문사도 지속 가능한 길을 찾을 수 있다”라고 말했다.

지난 9월27일 오전 9시30분, 〈필라델피아 인콰이어러〉 회의실에서 아침 뉴스 회의가 시작됐다. 편집국장 가브리엘 에스코바를 비롯해 각 취재 부서 에디터들이 모였다. 여기까지는 한국 언론사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다. 그다음부터 달랐다. 먼저 〈필리닷컴〉의 디지털 부서가 최근 일주일간 트래픽 분석 결과를 그래프로 보고했다. 새롭게 시도한 콘텐츠 반응도 분석해 보고했다. 트위터의 ‘모멘트(Moment)’ 기능을 사용해 지역 야구팀의 플레이오프를 향한 여정을 보도한 바 있는데 이 실험의 반응을 보여주었다. 최근 〈필라델피아 인콰이어러〉는 온라인 유료 구독 서비스를 시작했다. 기사 10개까지는 무료로 읽을 수 있지만, 그 이상은 유료로 구독해야 한다. 첫 반응은 나쁘지 않다. 지난 3주간 벌써 한 달치 구독 목표의 5배를 돌파했다.

ⓒ시사IN 신선영〈필라델피아 인콰이어러〉 편집회의에서는 먼저 〈필리닷컴〉의 디지털 담당자가 뉴스 트래픽 분석 결과를 보고한다.

취재와 편집도 디지털 중심으로 재편됐다. 데이터 분석에 따르면 〈필리닷컴〉의 트래픽은 낮 12시에서 오후 1시 사이에 정점에 도달하고 그 이후 급격히 줄어든다. 종이 신문 시절처럼 오후 5시에 마감하면 디지털 독자를 모두 놓친다. 그래서 아침 회의에 모인 각 취재 부서 에디터들은 “정치부 기사가 정오까지 준비될 예정이다” “경제부 기사가 오전 11시까지 마무리될 것 같다”라고 보고한다. 예전에는 기자들이 오전 10시에 출근해 오후 6시에 퇴근했다면, 이제는 새벽 5시에 출근해 낮 12시 디지털 마감 체제에 대비한다. 출근도, 마감도 디지털 수요에 맞춰 앞당긴 셈이다.

프린트 미디어 시절에는 할 수 없었던 실험도 구현한다. ‘엔터프라이즈 스토리’라고 불리는 기획 연재이다. 이를 기획하는 회의가 매주 수요일 오전 11시30분에 열린다. 에디터, 취재기자, 사진기자, 그래픽 디자이너들이 모여 아이디어를 나눈다. 앞으로 디지털 지면 디자인을 고려해 비주얼 저널리스트, 데이터 저널리스트를 추가 고용할 예정이다.

각 취재 부서에는 프로그래머가 최소 두 명씩 있다. 이들은 디지털 도구를 신속하게 다뤄 취재기자에게 데이터를 제공하고 분석한다. 기자들에게 디지털 데이터를 다루는 기본 교육도 실시한다. 모든 기자는 어떤 기사가 트래픽이 가장 많이 발생하는지, 디지털 독자들이 기사를 평균적으로 몇 분간 읽었는지 한눈에 알 수 있다. 편집자들은 양자택일 테스트를 통해 디지털에서 어떤 제목이 더 효과적인지 확인해 제목을 단다.

최근 〈필라델피아 인콰이어러〉가 투자를 집중하는 부문은 바로 탐사보도다. 〈필라델피아 인콰이어러〉는 지난 두 달간 7명이었던 탐사보도팀 인원을 11명으로 늘렸다. 탐사보도팀은 에디터, 취재기자, 데이터 분석가로 이루어져 있다. 탐사보도팀 안에서 다시 세 팀으로 나눠 기자들을 배치했다. 첫 번째 팀은 몇 개월씩 걸리는 긴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두 번째 팀은 며칠이나 몇 주에 걸친 비교적 짧은 프로젝트를 맡는다. 세 번째 팀은 데이터 분석을 주로 한다. 탐사보도팀장인 짐 네프는 〈시사IN〉과 인터뷰하면서 “〈필라델피아 인콰이어러〉는 미국에서 가장 큰 탐사보도팀을 가진 신문 중 하나다”라고 말했다. 그는 “독자들의 탐사보도에 대한 수요가 꾸준하고 높기 때문에 탐사보도의 미래는 밝다”라고 말했다(위 상자 기사 참조). 최근 이 신문은 지역 내 납 오염에 관한 탐사보도를 이어가고 있다. 가브리엘 에스코바 편집국장은 “필라델피아는 19세기부터 20세기 초까지 미국에서 제일 잘나가는 산업도시였다. 이 때문에 필라델피아 곳곳의 흙과 페인트에 납이 많이 섞여 있다. 납 오염이 어린이들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해 집중 보도하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더 이상 필라델피아의 뉴스 소비자들은 한국 뉴스를 보러 〈필라델피아 인콰이어러〉를 사지 않는다. 직접 인터넷에서 한국의 뉴스를 찾아본다. 그래서 우리는 지역 문제에 대한 탐사보도를 하는 게 강점이라는 걸 깨달았다”라고 덧붙였다.

기자명 신한슬 기자 다른기사 보기 hs51@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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