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 군부 독재의 서슬이 퍼렇던 1974년 〈동아일보〉 기자들은 ‘자유언론 실천 선언’을 통해 자유언론 수호 투쟁에 나섰다. 그때 해직된 안종필 기자는 1977년 긴급조치라는 유신의 폭압 조치에 제도권 언론이 침묵할 때, 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동아투위) 소식지에 ‘보도되지 않은 민주인권사건 일지’를 실었다. 그 사건으로 안종필 기자는 구속되었다. 10·26 사태로 유신 체제가 무너진 뒤인 1979년 12월 구속 집행정지로 풀려난 안종필 기자는 옥중에서 얻은 병으로 인해 1980년 마흔두 살의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1987년부터 동아투위와 재단법인 자유언론실천재단은 안종필 선생의 유지를 이어받고 기리기 위해 매년 ‘안종필 자유언론상’을 시상하고 있다. 2017년 자유언론상의 본상은 공정방송을 위해 파업을 하고 있는 전국언론노조 MBC본부와 KBS본부가 수상했다. 해직 기자 이용마와 내가 특별상을 공동수상했다. 아래는 10월24일 시상식을 위해 쓴 수상 소감이다.

ⓒ시사IN 신선영10월24일 제29회 안종필 자유언론상 시상식에서 해직 언론인 정영하 전 언론노조 MBC본부장(오른쪽)과 김민식 PD(가운데)가 수상하는 모습.

안종필 자유언론상 수상 소식을 전해 듣고 저는 무척 난감했습니다. 평생 코미디를 연출하는 PD로 살아온 제가 과연 이 상을 받을 자격이 있을까. 저는 스스로를 언론인이라 생각해본 적이 없습니다. 과연 진짜 언론인은 누구일까요? 그 고민을 해봅니다. 본상을 함께 수상하는 전국언론노조 MBC본부 (MBC 노동조합) 동지들을 생각합니다. 2012년 170일 파업의 패배 이후, 노동조합을 함께 지켜온 고마운 조합원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떠올려봅니다. 그중에서도 떠오르는 얼굴이 있습니다. 2012년 이후 MBC 노동조합이 고난의 길을 갈 때, 민주방송실천위원회(민실위) 간사로 일한 기자들입니다. 바로 김병헌·장준성·이호찬·남상호 기자입니다. MBC가 가장 처참하게 망가졌을 때, 그들은 MBC 뉴스의 내부 감시자로 살았습니다.

지난 2년, 저는 주조정실에 유배되어 MD로 근무했습니다. 근무 시간 중 가장 괴로운 때가 뉴스 시간이었습니다. 뉴스가 너무 웃겨서 코미디 PD인 저는 절망했습니다. 뉴스로 다뤄야 할 뉴스를 뉴스로 만들지 않으니, 뉴스 같지도 않은 뉴스가 그 시간을 채웠습니다. 코미디였습니다. 동물들이 주인공이었습니다. 유튜브 화제의 동영상은 몇 번씩 우려먹었습니다. 날씨와 건강, 생활에 유익한 뉴스라고 하는데, 볼수록 영혼은 피폐해지고, 어딘가 몸이 아파오는 그런 뉴스였습니다. 집에서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다면 콘센트를 잡아 뽑거나 리모컨을 던졌을 그런 뉴스였습니다. 그런 뉴스가 무사히 안전하게 송출되도록 하는 것이 MD로서 저의 직무였습니다. 어쩌면 이것이 MBC 내에서 최악의 극한 직업이 아닌가 생각했는데요. 어느 날 노동조합이 발간한 민실위 보고서를 보았습니다. 노동조합 민실위에서 MBC 뉴스를 모니터하고 정기적으로 보고서를 발간했습니다.

뉴스를 그냥 보는 것도 힘든데 보고서를 작성하기 위해 뉴스를 모니터하고, 리포트한 기자나 보도국 데스크에 전화를 돌려 취재 경위를 묻고 따지는 이들이 있었습니다. 모두가 MBC 뉴스를 외면하고 있을 때 그들은 두 눈 부릅뜨고 뉴스를 봤습니다. 그리고 보도국 기자들에게 당신들이 만드는 뉴스를 우리가 감시하고 있다고, 두 눈 똑바로 뜨고 지켜보고 있으니 제발 뉴스 좀 똑바로 만들라고 충고와 경고의 메시지를 민실위 보고서에 꾹꾹 눌러 담았습니다. 그렇게 만든 민실위 보고서는 보도국장의 손에 찢기거나, 쓰레기통에 버려졌습니다. 기자들에게 노조 민실위 간사와는 만나지도 통화하지도 말라는 엄명이 내려졌습니다. 보도국에서 근무하던 기자는 노동조합에 내려와 민실위 간사를 맡은 후 보도국으로 돌아가지 못했습니다. 구로에 있는 뉴미디어 포맷개발센터로 쫓겨나거나(김병헌), 정직 3개월 징계를 받거나(장준성), 시사제작국으로 발령이 났습니다(이호찬).

MBC 노동조합이 가장 힘들고 어려운 시절, 가장 괴롭고 핍박받는 일에 나서준 민실위 간사들을 생각합니다. 이들에게 고마움의 인사를 전합니다. 여러분을 생각하며, 저는 뉴스 강제 시청이라는 징벌을 달게 받았습니다.

그중 이호찬 기자가 지난겨울 광화문 촛불집회 무대에 올랐던 장면을 기억합니다. 박근혜 정부의 언론 장악을 고발하기 위해 발언에 나선 이호찬 기자는 시민들에게 온갖 야유를 받았습니다. MBC 기자라는 소개에 그는 ‘엠빙신 꺼져라’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당시 이호찬 간사는 야유를 한 몸에 받으면서도, 지난 2월에 진행되던 MBC 신임 사장 선임 과정에 시민들이 좀 더 관심을 기울여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시민들은 “MBC는 이제 안 본다. 우리는 JTBC 본다”라며 야유했습니다. 이호찬 기자가 민실위 간사로 일하며 회사로부터 어떤 핍박을 받았는지 잘 아는 저는 단상의 이호찬 기자를 보며 몰래 눈물을 흘렸습니다.

ⓒYouTube 갈무리이호찬 MBC 기자가 지난겨울 촛불집회 무대에 올라 박근혜 정부의 언론 장악을 비판했다.


권력에 장악된 언론과 싸워 이긴 촛불 시민

저는 겨울의 촛불 광장에서 배웠습니다. 지난 5년, MBC 노동조합으로서 최선은 MBC 뉴스를 감시하고 민실위 보고서를 내는 것이었습니다. 우리의 최선이 부족했다고 시민은 우리에게 가르쳐주셨습니다. 진짜 언론이 가야 할 길이 무엇인지 욕설로, 팔뚝질로, 고성으로 보여주셨습니다. 김장겸 사장의 MBC는 박근혜 정부를 비호하는 온갖 가짜 뉴스를 양산했지만 시청자들의 철저한 외면을 받았습니다. MBC 〈뉴스데스크〉 시청률이 3%대로 떨어지고, 시민들이 불신하는 언론 2위에 올랐습니다(1위는 〈조선일보〉). 저는 안에서 망가진 뉴스를 보며 속을 끓였지만, 정작 밖에서는 알아서 피하고 외면하고 욕하고 있었습니다. 지난 9년간 공영방송이 철저히 망가져갈 때 시민들은 팟캐스트를 듣고 띄우고 공유하면서, 언론의 대안을 스스로 만들어왔습니다. 촛불 시민은 권력에 장악된 언론과 싸워 이겼습니다. 촛불혁명이 아니었다면 해고자들은 MBC로 돌아오지 못했을 것입니다. 기자·PD·아나운서들은 스케이트장과 드라마 세트장을 떠돌다 또 해고되었을 것입니다. 여러분의 분노가 우리를 살렸습니다. 촛불 시민 여러분께, 이 자리를 빌려 다시 한번 감사 인사 올립니다. 여러분이 진짜 언론입니다. 존경합니다. 고맙습니다. 

 

기자명 김민식 (MBC PD)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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