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폰을 놓지 않는다, 혹은 놓지 못한다. 포털과 뉴스피드를 ‘새로 고침’ 하고 이른바 ‘받은 글’을 늦지 않게 읽는다. ‘톡’의 프로필을 바꾸고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사진과 함께 몇 글자 적어본다. 사실 알고 있다. 이 중 많은 것들을 굳이 할 필요 없다는 점을. 지루한 삶에서 찾는 소소한 재미, 뒤처지면 안 된다는 강박 사이에서 모두들 살아가고 있다.

그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운 사람이 있다. 아주 나이가 많지도, 어리지도 않다. 자연을 벗 삼아 사는 기인도 아니다. 1980년 10월14일에 태어난 올해 37세, 대도시 영국 런던에 거주하는 남성. 생김새를 보면 어쩐지 정령은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드는 존재. “불안한 정서와 헝클어진 머리칼(troubled air and tousled hair)”이라는 묘사가 완벽하게 어울리는 아름다운 청년, 배우 벤 위쇼 이야기다.

지금·여기와 동떨어진 것 같은 외양 및 분위기는 그가 영화와 연극, 안방극장에서 맡아왔던 상처받고 불운하고 고뇌하는 이전 시대의 캐릭터들, 그 자체다.

ⓒ이우일 그림
고뇌하는 청춘의 시조 격인 덴마크 왕자 햄릿(연극 〈햄릿〉), 폭정과 실정을 거듭하다 비참한 죽음을 맞은 리처드 2세(드라마 〈텅 빈 왕관〉), 17세기 미국 매사추세츠 마녀사냥에 휘말린 존 프록터(연극 〈더 크루서블〉), 18세기 프랑스 파리의 천재이자 살인자 그르누이(영화 〈향수〉)와 또 한 명의 우울한 천재 존 키츠(영화 〈브라이트 스타〉), 냉전시대 영국의 시사 프로그램을 다룬 텔레비전 드라마 〈더 아워〉의 기자 프레디 라이언, 연인의 죽음을 홀로 추적하는 〈런던 스파이〉의 대니 홀트 등을 실제인 양 연기해냈다.

역할뿐만이 아니다. 스스로를 러다이트(Luddite:기계 반대자. 19세기 초 영국에서 산업혁명이 초래할 실업 위험에 반대해 기계를 파괴하는 등 폭동을 일으킨 직공 집단)라고 농담처럼 이야기하는 그는 텔레비전과 개인용 컴퓨터를 보유하고 있지 않다. 이메일 확인용으로 쓰는 태블릿 PC만 하나 가지고 있다. 대신 영화와 음악, 시와 소설을 좋아하고, 헌책방에 가서 무작정 책을 고르거나 고양이 돌보는 일에 열정을 쏟는다.

이전 시대의 축을 살아가는 듯한 그는 뜻밖에도 과거 일에는 관심이 없다. 전작은 물론 이미 연기한 캐릭터를 돌아보지 않는다. 위쇼의 시선은 미래를 향한다. 어떠한 목표를 정하고 그것을 뛰어넘는 성취, 예를 들어 돈과 명성, 수상 경력 따위를 갱신하는 새로움이 아니다. 전과는 다른 울림을 주는 어떤 것, 그 울림을 향해 앞으로 나아간다. 독립 영화와 오프브로드웨이를 마다하지 않는 이유다. 새로움을 모를 것 같고 자기 세계 안으로만 침잠할 것 같은 외모의 이 예술가는 실은 가장 새로운 방식으로 세상을 살아간다.

‘불안한 정서와 헝클어진 머리칼’의 아름다운 청년

“전 어느 정도의 자신감과 어마어마한 불안감을 가지고 있어요. 누구나처럼.” 자신의 도전에 대해 그는 대수롭지 않게 말한다. 그는 괴짜도, 사회성이 떨어지는 사람도 아니고, 자신의 일과 예술을 사랑하며, 길에서 우연히 만난 팬들과 멈추어 서서 서로의 이야기를 잠시 나누는 데에 인색하지 않은 상냥한 사람이다. 조카가 영화를 볼 때 삼촌 목소리를 들으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에 애니메이션 영화 〈패딩턴〉의 꼬마곰 패딩턴으로 목소리 출연을 하는 다정함도 지녔다.

숨 막히는 현실에 지쳐 앞을 볼 수 없고 과거도 무의미하다고 느낄 때, 곰곰이 나만의 시간 속으로 빠져 들어가 내가 진정으로 즐거워하는 일과 얻고 싶은 미래에 대해 생각해보면 어떨까. 개와 고양이 혹은 화분을 돌보는 것도 좋고, 서점을 정처 없이 거닐다 마음에 드는 책 한 권을 집어 드는 것도 좋다. 그러고는 편한 지인들과 혹은 혼자만의 깊은 대화를 나눠보자. 벤 위쇼처럼. 내일을 살아야 할 우리에게 필요한 건 금세 왔다가 사라지는 새로운 정보보다는 언제나 스스로를 새로이 이끌어낼 수 있는 나 자신만의 생각이니까.

기자명 중림로 새우젓 (팀명)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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