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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자’들에게만 ‘경제’를 맡겨둘 것인가?

경제학의 문 열어 민주주의 되살리다.

안철흥 기자(1999~2008 재직) webmaster@sisain.co.kr 2017년 10월 27일 금요일 제52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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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브 코언은 경제학을 배우겠다고 결심했던 순간을 기억한다. 잉글랜드 북동쪽 더럼 주에 위치한 그녀의 고향은 한때 광산업 중심지였지만 경제 불황과 알코올 중독이 차례로 마을을 휩쓸고 지나간 뒤, 지금은 영국에서 가장 가난한 지역 중 하나로 전락했다. “경제정책 하나로 그토록 많은 사람들의 삶이 영향을 받는다는 게 인상적이었다”라고 그녀는 회상했다. 하지만 2학년을 마치기도 전에 매브의 열망은 사그라졌다.

“열정은 현실 경제와는 상관없는 추상적인 개념들과 맞닥뜨리면서 억제될 수밖에 없었어요. 왜 이렇게 현실과 분리시켜 경제학을 배우는지 모두들 궁금해하지만, 시험 점수를 얻기 위해서는 이런 평행 우주에서 사는 법도 배워야 했죠.”

위웬은 대학에서 정치학과 철학, 경제학을 전공했다. 철학 시간에 교수가 말했다. “이 방 안의 가구들이 보이죠? 여러분 마음속에도 가구들이 있을 겁니다. 이제부터 그것들을 하나하나 꺼내 새롭게 쌓아봅시다.” 철학 수업 시간은 ‘안다는 것은 무엇인가?’ ‘윤리의 근원은 무엇인가?’ ‘정부를 가진다는 것과 국가에서 교육을 제공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같은 질문들로 가득 찼다. 근본적인 질문에 둘러싸여 고군분투했던 철학 수업에 비하면 경제학 수업에서는 질문할 거리가 거의 없었다.

“우리는 마치 준비된 방에 들어간 것처럼 모든 것을 받아들여야 했어요. 물론 ‘방이 어색해, 가구 배치를 다시 해야 하는 거 아냐’라고 생각할 수 있죠. 하지만 교수는 ‘방의 처음 모습을 기억하지? 우린 어떻게든 그 모습을 지켜야 해’라고 말하는 것 같았어요. 경제학에서는 행동하는 것과 생각하는 것의 의미가 전혀 달랐죠. 지금 생각하면 초조했던 느낌밖에 기억나지 않아요. 도대체 뭐가 중요했을까요?”

맨체스터 대학 경제학과에 다니는 매브와 위웬은 포스트크래시 경제학회 회원이다. 2012년 맨체스터 대학 경제학과 학생들과 대학원생들은 새로운 대안 경제학과 경제학 교육의 개혁을 주장하며 포스트크래시 경제학회를 설립했다. ‘크래시(crash)’는 2008년 금융위기에 전혀 대처하지 못하고 무력했던 주류 경제학의 와해를 뜻한다. 이제는 와해 이후의 대안 경제학을 준비해야 한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AFP PHOTO
미국 투자은행 리먼브라더스는 서브프라임모기지 부실 사태로 인해 2011년 9월15일 파산 신청을 했다.

사실 금융위기 직전까지 주류 경제학자들은 극도로 오만했다. 당시 벤 버냉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은 “낮은 인플레이션과 고성장의 대(大)안정기가 도래했다”라고 말했고, 위기 조짐이 보이기 시작했음에도 올리비에 블랑샤르 IMF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거시경제학의 상황은 좋다”라고 공표했다.

“자아도취적인 집단 사고가 가능했던 이유는 신고전학파의 사고방식이 국가기관을 비롯한 이 사회의 전문가들을 지배하고 있었기 때문이다”라고 포스트크래시 경제학회 공동 설립자이자 경제학 개혁운동 단체 ‘리싱킹 경제학’ 이사를 맡고 있는 조 얼은 말한다. 그와 맨체스터 대학 경제학과 박사과정 학생 카할 모런, 셰필드 대학 연구원 제크 워드 퍼킨스가 공동저술한 <이코노크라시:경제학을 전문가들에게 일임하는 것의 위험성>은 신고전학파 경제학의 무능력과 이런 주류 경제학이 더 이상 ‘유일한 경제학’으로 남아서는 안 된다는 폭로로부터 시작한다.

‘이코노크라시’는 경제학을 뜻하는 이코노믹스와 그리스어로 권력과 통치를 뜻하는 크라시의 합성어이다. 저자들에 따르면 이코노크라시는 “정치 목표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에 따라 정해지며, 전문가의 관리를 요하는 별도의 논리 체계가 존재한다고 믿는 사회”이다. 현대사회의 본질은 민주주의(데모크라시)가 아니라 ‘이코노크라시’라는 것이다.

책에는 저자들이 현대사회를 이코노크라시로 규정하는 다양한 근거가 제시된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경제정책의 신뢰를 얻지 못하는 정당이 영국 선거에서 승리한 전례는 거의 없었다. 그 결과 1950년 이전까지 모든 선거 구호에서 단 두 차례만 찾을 수 있었던 ‘경제’라는 단어가 2015년 총선 때는 보수당 선거 공약 속에서만 59차례나 발견됐다. 통계청은 분기마다 재화와 서비스의 화폐가치를 측정하여 국내총생산 추정치를 발표하며, 정치권은 이를 활용해 여론을 만든다. 경제가 국가 운영의 중심 잣대가 되면서, 다양한 삶의 영역이 경제에 얼마나 기여하느냐는 시각에서 존재를 증명해야 한다.

첫 목표는 대학의 경제학 커리큘럼 개혁

현대사회는 어려운 경제 언어를 습득한 사람만 발언권을 가진 사회로 변질되었다. 경제 토론과 의사 결정에 시민이 낄 여지는 거의 없다. 현실이 이렇기 때문에 이코노크라시는 정치 전통인 자유민주주의와 양립할 수 없다고 저자들은 말한다.

“예술사학자나 고생물학자가 실수하는 것과 경제학자의 실수는 다르다. 경제학은 사람들의 삶에 바로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경제 전문가들이 복잡한 경제를 다루기에는 자신의 지식에 한계가 있으며 경제 문제는 민주적인 토론의 적절한 주제라는 점을 인정하는 세상을 꿈꾼다.”

<이코노크라시>의 저자들은 자신들의 목표가 ‘경제학의 문을 열고 민주주의를 되살리는 것’임을 책에 분명히 적었다. 이들의 첫 목표는 대학의 경제학 커리큘럼 개혁이다.

ⓒ‘리싱킹 경제학’ 홈페이지 갈무리
2016년 영국 런던 정치경제대학에서 열린 <이코노크라시> 출판기념회에서 공동저자 제크 워드 퍼킨스가 강연하고 있다.
오른쪽 단상에 공동저자인 조 얼, 카할 모런이 앉아 있다.

저자들은 책을 쓰기 위해 러셀 그룹(영국 명문 대학 리그)에 속한 7대 대학 174개 전공과목의 수업 안내서와 시험문제를 전수조사했다. 경제학 교과목과 시험문제 대부분이 추상적이고 수학적인 경제 모형 다루기에 할애되고 있었다. 비판적 사고나 다원주의는 입지조차 위태로워 보였다. 카할 모런은 언론 대담에서 이를 언급하며 “경제학이 우리 사회에서 지닌 위상을 고려할 때 이는 매우 우려스러운 일이다”라고 말했다.

현대사회 분석과 신고전학파 경제학 비판, 대학의 경제학 교육과정 분석, 대안 경제학 소개 등을 두루 담고 있는 <이코노크라시>는 저자들이 전 세계 경제학도들을 향해 외치는 224쪽짜리 두툼한 ‘매니페스토’처럼 읽힌다.

ⓒ리싱킹 경제학의 홈페이지 갈무리
리싱킹 경제학의 홈페이지. 유럽을 중심으로 세계 60여 개 대학에서 경제학 교육개혁 운동이 전개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코노크라시>가 발표된 지난해 연말, 이들과 뜻을 같이한 대학생 학회는 맨체스터 대학의 포스트크래시 경제학회, 케임브리지 대학의 경제다원주의학회 등 14개에 불과했다. 하지만 1년도 채 지나지 않은 현재 이들이 벌이는 운동에 영국 내 21개 대학을 비롯해 전 세계 60여 개 대학의 경제학과 학생들이 동참하고 있다. 


안철흥
원 <시사저널> 정치팀과 문화팀 기자로 일했다. 새정치국민회의 시절 여당 출입을 시작해서 새천년민주당 노무현 후보가 대통령이 되는 걸 지켜본 뒤 정치팀을 떠났다. 문화팀에서는 학술·문학·건축·영화 등 주로 ‘올드’한 장르를 맡았다. 정치팀 시절 데스크는 서명숙이었고, 문화팀 시절 데스크는 이문재였다.
첫 문화 기사를 마감하자 이문재 데스크가 불렀다. “네가 글을 잘 쓴다고 생각하느냐?” “아뇨.” “알았다.” 프로필을 적으려니 갑자기 그때 문답이 떠올랐다.
참, <시사저널> 파업 때 노조위원장이었다. 그래서 지금도 구글에 내 이름을 입력하면 머리띠 두른 모습이 줄줄이 튀어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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