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의 통념과 달리 한국 국회의원들은 일을 아주 열심히 한다. 올해 초부터 큰 관심을 모은 이른바 가짜 뉴스를 규제하기 위해 의원들이 제안한 각종 법안을 보면 그런 사실을 잘 알 수 있다. 아쉽지만 국회의원들이 열심히 하는 일들이 모두 의미 있거나 바람직한 것은 아니다. 이것도 이 법안들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지난 3월부터 현재까지 국회에서 가짜 뉴스와 관련한 법안이 발의된 것은 모두 아홉 차례다(오른쪽 표 참조). 개정 대상이 된 법률 기준으로 따지면 12건 이상이다. 내용은 대동소이하다. 가짜 뉴스를 만들고 유포하는 사람이나, 가짜 뉴스를 삭제하지 않는 인터넷 서비스 업체를 처벌하는 것이 단골 메뉴다.

가짜 뉴스는 세계적 현상이다. 2016년 미국 대통령 선거 국면에서 본격적으로 불거지긴 했지만, 인터넷이 있고 뉴스 매체가 있고 귀와 입을 가진 사람들이 있는 곳이면 어디나 등장하는 문제다. 하지만 법을 제정하여 벌금을 물리거나 감옥에 가두는 방식으로 가짜 뉴스를 막겠다고 나서는 나라는 매우 드물다. 한국 국회의원들이 유달리 일을 열심히 하는 것일까?

지난 6월 말, 싱가포르에서는 세계신문협회(WAN-IFRA) 아시아지부 주최로 특별 국제회의가 열렸다. 주제는 ‘미디어에서 진실과 신뢰’. 이틀을 꽉 채워 진행된 이 행사는 말하자면 가짜 뉴스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를 논의하기 위한 특별 회의였다. 그중 한 세션은 가짜 뉴스를 법과 제도의 측면에서 어떻게 다룰 것인가를 놓고 진행되었다. 나는 이 자리에서 한국 국회의원들이 줄줄이 발의하는 규제법들에 대해 소개했다. 이것은 뜻하지 않게 내가 나 자신의 ‘조국’을 욕보이거나 그 허물을 고자질하는 것 같은 분위기를 연출했다. 가짜 뉴스에 대한 처벌과 규제라는 기발한 개념을 접한 외국 참석자들이 아주 신기하다는 반응을 보이며 꼬치꼬치 질문을 해왔기 때문이다.

ⓒThe Straits Times 갈무리6월19~20일 싱가포르에서 열린 세계신문협회(WAN-IFRA) 아시아지부 국제회의의 주제는 ‘미디어에서 진실과 신뢰’였다.

나중에 그 세션 참석자들에게 이메일 몇 통을 받았다. 연구 자료로 쓰고 싶으니 해당 법안들과 관련한 내용을 더 자세히 알려달라고 했다. 불행히도, 혹은 다행히도 이들에게 전해줄 자료는 없었다. 가짜 뉴스를 처벌하는 아이디어는 국회의원들만의 것이지, 사회적 논란을 바탕으로 발생한 자료를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정치적이거나 경제적인 목적을 위해 거짓을 사실처럼 포장해서 유포하고 여론 시장을 왜곡하는 가짜 뉴스가 심각하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 국가기관이 나서서 진짜와 가짜를 가름하고 가짜라는 딱지를 붙여 형사처벌한다는 발상, 또 민간 기업인 인터넷 업체들로 하여금 그런 일을 하게 강제한다는 발상은 매우 위험하다. 정당한 메시지가 필요에 따라 유언비어나 허위 사실이라는 이름으로 단죄된 경우가 적지 않았으며, 설령 사실이 아닌 메시지라도 법으로 처벌하기 시작하면 전체적으로 국민의 기본권인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키는 결과가 되기 때문이다.

가짜 뉴스에 대응하는 좀 더 바람직한 자세는 세계신문협회 행사의 세션 구성에서 시사점을 얻을 수 있다. 세션은 첫 번째로 가짜 뉴스의 심각함을 논의한 뒤, 차례로 팩트 체크 강화 등 언론이 해야 할 일, 진실 정보가 유통될 환경을 구축하는 등 인터넷 기업들이 해야 할 일, 그리고 디지털 교육 등 학교와 시민사회가 해야 할 일을 논의하는 순서로 진행됐다.

가짜 뉴스의 실제 영향력 생각만큼 크지 않아

9월15일 세종대에서 열린 한국인터넷거버넌스포럼(KrIGF) 연례 콘퍼런스의 한 순서로 진행된 ‘디지털 허위 정보 대응 거버넌스’ 세션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패널로 참석한 구본권 〈한겨레〉 사람과디지털연구소 소장, 정은령 서울대 팩트체크센터 센터장, 민노씨 〈슬로우 뉴스〉 편집장 등은 가짜 뉴스에 대한 바람직한 대응 방식으로 팩트 체크의 강화, 디지털 교육 강화, 미디어의 신뢰 회복 등을 들었다. 법적 규제를 통해 가짜 뉴스에 대응하려는 발상에 대해 들어보기 위해 관련법을 발의한 국회의원실 담당자를 초청했으나, 그는 참석을 검토해보겠다고만 하고 아무런 연락을 주지 않았다.

의원들의 법안 발의안을 보면 모두 가짜 뉴스의 심각성을 그 취지로 제시하고 있지만, 구체적인 근거를 든 경우는 없다. 그저 심각하다고 강조할 뿐이다. 학계에서 가짜 뉴스의 실제 영향력이 생각만큼 크지 않다는 연구 결과들이 나오고 있다는 점은 아직 의원실에 전달되지 않은 것 같다. 게다가 한 민간 경제연구소가 아무런 근거 없이 주먹구구로 평가한 엄청난 가짜 뉴스 피해액을 입법의 근거로 삼은 것으로 추정되는 경우까지 있다.

일련의 입법안 중에서 가장 최근 것인 하태경 의원의 발의안은 시사적이다. 그 전의 발의안과 달리, 하 의원은 가짜 뉴스를 처벌하는 법안이 아니라 디지털 세상에서 옥석을 구분할 수 있는 안목을 길러주는 교육을 강화하자는 법안을 냈다. 하 의원이 처음부터 그런 생각을 가진 것은 아니다. 하 의원은 지난 2월 국회에서 가짜 뉴스를 어떻게 막을지 모색하는 토론회를 직접 주최했다. 이 자리에서 그는 유튜브상의 가짜 뉴스를 시연해 보이며 강력한 법적 제재가 필요할 수 있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토론회에 나온 패널들은 처벌이 답이 아니며 좀 더 문명적인 접근 방식을 택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 의원의 입법안은 이 같은 논의와 고민의 결과로 볼 수 있다. 

ⓒ연합뉴스3월17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박홍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가짜 뉴스 대책을 묻고 있다.

가짜 뉴스는 심각하다. 그런 현상을 촉발하고 번성하게 하는 토대가 있다. 토대를 놔두고 솟아나는 싹만 자르면 문제는 결코 해결되지 않는다. 정치적 메시지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 정치인들은 문제를 과장하여 받아들이고 손쉽고 빠른 길을 선택하고 싶어 한다. 하지만 각종 리스트라는 이름으로 반대되는 담론에 재갈을 물리는 일이 여전히 벌어지고 있는 사회에서, 이것은 약보다 독이 된다. 민주 사회에서 말문을 막으면서 이루어지는 여론이란 존재할 수 없다.


허광준
원 〈시사저널〉 공채 1기 선발 때 면접까지 갔다가 떨어지고 앙앙불락하여 1년 반 뒤 다시 시험을 쳐 2기로 입사했다. 기자로서 두각을 드러내진 못했으나, 대신 인생 4대 멘토 중 3명을 만나는 실속을 챙겼다. 미디어를 더 공부하겠다고 미국으로 건너가, 지겨울 정도로 오랜 세월 끝에 박사가 아닌 ‘박수(박사 수료)’가 되었다. 인터넷 자유를 주창하는 사단법인 오픈넷에서 1년4개월 근무했다. 현재는 ‘들풀미디어아카데미’에서 세상과 사람과 매체를 향한 짝사랑을 여전히 불태우고 있다

기자명 허광준 기자(1991~1998 재직)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관련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