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이 여러 개였으면 좋겠다. 살림하는 몸, 애 키우는 몸, 일하는 몸, 노는 몸….” 지인의 글에서 한숨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나는 몸이 한 개여도 좋으니 살림이나 육아는 다른 데 맡기고 나를 위해서만 스케줄을 짤 수 있으면 좋겠어.” 다른 지인이 거든다. 그렇게 역할에 갇힌 몸들의 아우성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세탁기와 식기세척기에 이어 빨래 건조기까지, 여성을 가사 노동으로부터 해방할 도구들이 개발된 시대에도 이런 아우성은 유효하다. 온전히 가사 노동을 맡아줄 로봇을 만들 수 있는 날이 올까? 이런 바람을 실현한 사람이 나타났다. 뜻밖에도 남성이다.

‘6세에 미적분을 풀고, 초등학교 때 대학 과정을 이수한’ 천재 컴퓨터 공학박사 최고봉씨. 아이를 낳자마자 아내가 죽자 모든 활동을 그만두고 홀로 아이를 키운다. 그러다 양육을 전담할 로봇 ‘보그맘’ 만들기 프로젝트를 가동한다. ‘공대 손예진’으로 불리던 아내의 얼굴을 그대로 복원하되 몸매는 그보다 조금 더 ‘빵빵하게’ 설계한다. 몸매가 잘 드러나며 보기에는 예쁘지만 불편한 옷을 입고도 가사·양육 노동을 척척 해내고, 셰프급으로 요리도 할 수 있다. 설계자가 입력한 대로 움직이되, 어떤 순간에는 스스로 판단할 능력도 갖추었다.

ⓒ정켈 그림

실화가 아니라 드라마 이야기다. MBC 예능 드라마 〈보그맘〉은 엄마로서 가사·육아 노동을 완벽하게 소화하며 여성으로서 남들 보기에 좋은 외모도 갖춘 새로운 존재, 사이보그를 탄생시킨다. 이 드라마가 불편한 이유는 보그맘이 탄생한 것 자체에 있다. 개발자인 최고봉씨는 자신의 연구를 방해하는 살림과 육아를 전담할 다른 몸이 필요했고, 그 존재는 ‘당연하게도’ 여성으로 정해진다. ‘전통적으로’ 수행해온 여성의 임무이기 때문이다. 이런 발상은 여성에 관한 왜곡된 고정관념으로 이어진다.

보그맘의 주요 임무 중 하나는 아이를 유치원에 등·하원시키는 일이다. 아이가 다니는 ‘버킹검 유치원’은 상위 그룹 자녀들이 다니는 곳이다. 이곳의 엄마들은 아이들의 영어 이름을 따서 ‘코코맘’ ‘조지맘’ 등으로 서로를 부른다. 작은 유치원에도 서열이 있어서 상위 그룹만이 가입할 수 있는 ‘엘레강스’라는 사조직이 존재한다. 그 조직 구성원은 세 명. 1인자인 도도혜는 시댁이 부자이며, 외모 때문에 남성들에게 모욕당한 아픈 과거가 있다. 한 명은 유명 대학 교수 부인이며 ‘보그 ××체’ 같은 영어를 남발하지만 ‘그리너리(greenery)’가 초록색 화초를 의미한다는 사실조차 모른다. 다른 한 명은 과거 걸그룹 멤버이자 삼류 에로 배우 출신 파워블로거다. 이들은 주체가 아니라 ‘○○맘’이라는 역할로 존재하며 예외 없이 사치스럽고, 무식하고, 극성스럽다.  

여성은 가부장체계가 설정한 역할로만 존재하지 않는다

보그맘이 자신을 만든 최고봉씨가 설정한 역할로만 존재하듯 〈보그맘〉에서 여성들은 남성들의 희망을 실현하거나 편견을 재현하는 방식으로만 존재한다. 게다가 ‘강철 멘탈 사이보그맘의 허세 치맛바람 때려잡기’라고 밝힌 드라마 소개 글에서 읽을 수 있듯 그 여성들은 ‘때려잡아야 할’ 대상이며 추하거나 과장된 외모는 희화화된다. 그들의 딸과 아들들도 왜곡된 남자다움과 여자다움을 학습하여 재현한다.

이 드라마는 ‘예능 드라마’를 표방하고 있다. 즉 웃자고 만들었다는 뜻일 테다. 나는 궁금하다. 이 드라마는 누구를 웃게 할까? 이걸 만든 제작진에게 여성이란 어떤 존재일까? 우리 사회에서 여성은 ‘○○녀’나 ‘○○맘’으로만 존재하며 사이보그처럼 통제할 수 있든지, 인간이되 모자라야 속이 시원한 걸까? 이런 기본적인 인간 이해와 존중조차 결여된 드라마를 우리는 무려 2017년에 만나고 있다.

기자명 오수경 (자유기고가)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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