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배우가 드라마 촬영 중 겪은 황당한 시추에이션을 이야기했다. 대본이 늦게 나와 쪽대본으로 촬영을 하는데, 스튜디오 녹화를 먼저 하고 야외 촬영은 다음 날이었단다. 세트 장면을 찍으면서 국수를 몇 광주리나 바리바리 삶고 있는데 왜 삶는지 이유를 몰라 딸 역할을 하는 배우에게 리허설 중에 슬쩍 물어봤단다. “내가 왜 이렇게 국수를 많이 삶고 있는 걸까?” 극중의 딸도 영문을 몰라 눈만 동그랗게 뜨고 있었다고 한다. 다음 날 야외에서 그 앞 장면을 찍는데, 자신의 대사가 이랬단다. “경사가 났으니 잔치를 벌여야겠구나!” 쪽대본인데 촬영 순서가 바뀌어 다음 장면을 먼저 찍었으니 이해가 갈 리가 있나.
흔히 이야기 전개가 상식적으로 납득이 가지 않으면 ‘막장 드라마’라고 하는데, 2010년 김재철 사장 취임 후 MBC 상황이 꼭 그랬다.
도통 이해가 가지 않았다. 라디오 청취율 1위 시사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김미화씨를 내쫓고, 〈PD 수첩〉을 잘 만들고 있던 PD들을 내쫓고, 뉴스 앵커와 진행자를 내쫓았다. ‘이건 아니지 않나?’ 하고 보도국 기자들이 투표로 제작 거부를 결의하자, 회사는 그 즉시 기자협회장을 해고했다. ‘이건 너무하지 않나?’ 하고 파업을 시작하자, 회사는 노동조합 집행부를 해고했다. 평조합원인 최승호 PD, 박성제 기자까지 잘랐다. 나중에 백종문 당시 미래전략본부장이 ‘증거 없이 그냥 해고했다’고 말한 녹취록이 나왔는데도 그는 뻔뻔스럽게 버티고 심지어 부사장으로 영전했다. ‘뭐 이런 막장이 다 있어!’
2012년 김재철 당시 사장의 치부가 하나둘 드러났다. 수억원대 법인카드를 함부로 사용하고, 여성 무용가를 부적절하게 지원한 사실도 드러났다. 이쯤 되면 김재철 사장을 자를 법도 한데, MBC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검찰은 당시 나를 포함한 노동조합 집행부에게 구속영장을 청구하고, 징역형을 구형했다. 파업을 끝내고 복귀하자 사측은 부당 전보와 부당 징계를 남발했다. 2012년 대선 직전 이진숙 당시 기획홍보본부장이 정수장학회를 찾아가 MBC 지분 매각을 시도했다(MBC는 방송문화진흥회가 70%, 정수장학회가 30% 지분을 갖고 있다). 국민의 재산인 공영방송을 사유화하려는 불순한 의도가 만천하에 드러났는데도 누구 하나 책임지는 사람이 없었다. 그 지경이 되니까 좀 무서워졌다. 막장 드라마의 특징 중 하나가 장르의 모호성이다. 단순한 저질 코미디인 줄 알았는데, 스릴러가 되었다가, 막판에는 호러물이 되었다. 시청자의 예상을 뛰어넘는 이런 전개, 도대체 누가 각본을 쓴 걸까?
얼마 전 이명박 정부 시절 국정원이 작성한 MBC 장악 문건이 나왔다. 그걸 보고 최승호 감독은 “영화 〈공범자들〉의 시나리오가 이제 나왔다”라고 말했다. 국정원 문건을 보면, MBC 장악은 총 3단계로 진행됐다. 김재철 사장 취임에 이어 2010년 3월 말까지 인적 쇄신과 편파 프로그램 퇴출이 1단계 목표였다. 2단계는 ‘노조 무력화’였다. 노조의 파업을 ‘불법행위’로 규정해 법적 대응을 확대하라고 했고, 이근행 노조위원장을 업무방해 혐의로 사법처리하라고 했다. 마지막 3단계는 2011년 이후 예정된 소유구조 개편 논의였는데, 국정원은 “문화방송 구성원 스스로 민영화를 선택하도록 함으로써, ‘다공영 일민영’ 체제를 ‘일공영 다민영’ 체제로 전환해 시장원리를 확립할 것”을 계획했다.
둥글게 살고 싶었으나 가시 많은 생선이 되어
김재철이라는 수준 이하의 사장이 오고, 그가 MBC의 경쟁력을 망가뜨리고, MBC의 민영화를 시도한 것도 다 국정원의 대본에 나오는 전개였다. 2012년 170일간 파업을 하고, 그 후 5년 세월을 보내면서 나는 누군가가 쓴 막장 연속극에 강제로 출연하게 된 주인공처럼 살았다. 지난 5년간 해고 및 징계, 손해배상 청구, 어용노조 결성이라는 사용자 측의 노조 파괴 공작 3종 세트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노동조합(전국언론노조 MBC본부)을 지켜왔다. 노조를 탈퇴하면 현업에 복귀하고, 승진이 뒤따르고, 보직이 주어지는 걸 알면서도, 다들 스케이트장과 드라마 세트장의 변방을 떠돌며 버텨왔다. 우리는 왜 그렇게 힘들게 살았던 걸까?
MBC 총파업 3일차 되던 지난 9월6일, 안산노동대학에 강연을 갔다. 돌아오는 전철 안에서 노동대학 자료집에 실린 하종강 선생의 글을 보았다.
어릴 때, 청어나 밴댕이 등 잔가시가 많은 생선 반찬이 올라올 때마다 어머니께서 하셨던 말씀이 있습니다.
“이 작은 생선에 왜 이렇게 잔가시가 많은 줄 알아? 자기보다 더 큰 물고기가 잡아먹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야. 가시가 많으면 먹다가 목에 걸릴 테니까….”
저는 궁금해서 어머니에게 물어봤습니다.
“그렇지만 가시가 많다는 것을 아는 것은 이미 먹힌 다음이잖아요?”
어머니께서 설명하셨습니다.
“그렇지만, 그다음부터는 같은 종류의 작은 고기를 먹지는 않잖아. 자기는 죽지만 다른 동료들을 구할 수 있잖아.”
2017년 10월10일은 MBC 단일 노조가 설립된 지 21년이 되는 날이다. 박성제·정영하·강지웅·박성호 등 해고자들이 집회장을 찾았다. 후배들이 회상하는 선배들은 모두 둥글둥글 원만한 사람이었는데, 어쩌다 생선가시 같은 삶을 살고 있다. 미국 서부에 영화 〈공범자들〉 상영회를 간 최승호 PD와 집에서 투병 중인 이용마 기자는 집회에 오지 못해 영상 메시지를 보내왔다. 화면을 보니 이용마 기자가 왜 못 왔는지는 알 것 같다. 한 달 전 만났을 때보다 훨씬 더 여윈 모습이다. “지금이 MBC를 정상화하기 위한 골든타임입니다.” 그가 어렵게 말을 잇는다. “이제 시간이 많이 남지 않았습니다.” 시간이 많지 않다는 그의 이야기에 모두가 숙연해진다.
파업도 벌써 한 달째, 싸움이 장기로 접어들면 모두가 힘들다. 그럼에도 우리는 계속 싸우고 있다. 둥글게 살고 싶었던 이들이 어쩌다 보니 가시 많은 생선이 되어 살고 있다. 보여주기 위해서다.
막장 연속극의 끝은 항상 해피엔딩이다. 욕하면서도 보는 이유는 그 끝이 권선징악이기 때문이다. 그 엔딩을 바라고 악당들의 패악질을 견딘다. 이유 없이 해고당하고, 유배당하고, 병을 얻었던 이들이 이제 다시 웃으며 방송으로 복귀할 날을 기다린다. 그것이 ‘이명박근혜’의 방송 장악이라는 막장 드라마에 가장 합당한 엔딩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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