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을 위한 미중관계사주재우 지음, 경인문화사 펴냄

“다른 나라에게 우리의 사정을 전하기 위해서는 그들의 사고방식에 우리의 입장을 제대로 투영해야 한다.”한국전쟁부터 사드 배치 갈등까지, 미국과 중국의 첨예한 외교 갈등 역사를 다룬 종합연구서다. 미·중 두 국가의 역사를 우리와의 일대일 관계에서 이해하기보다는, 양국 간 이해 충돌이 어떻게 전개되었으며, 그 충돌이 한반도에 어떻게 영향을 미쳤는지 입체적으로 보여준다. 중국 전문가인 저자는 두 국가의 역사적 선택이 철저히 자국 이익이라는 합리적 판단에 근거했다고 설명한다. 여기에 시대적 변수가 결합해 같은 상황에서도 서로 다른 최적의 값이 도출된다. 가령 한국전쟁 당시는 한반도의 통일이 양국 모두에 이득이었지만, 현 시점에선 두 나라 모두 한반도 분단이 더 큰 이익이다.다소 딱딱한 연구서이지만, 다양한 사례와 분석을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얼굴들한국비정규노동센터 기획, 이상엽 사진, 후마니타스 펴냄

“아마 그가 지금도 살아 있다면 여덟 번째 분류로 비정규직 노동자 섹션을 만들었을지도 모르겠다.”

아우구스트 잔더(1876~1964)는 모두 4만여 장의 초상 사진을 찍었다. 잔더는 인물 사진을 사회적 풍경 안으로 끌어들인 최초의 작가다. 나치 집권기에 원판째 압수되거나 불태워지기도 했던 그의 사진들은 ‘고결한 독일인’과 거리가 먼 ‘진실의 모습’들이었다. 그는 1927년 〈20세기의 사람들〉 전시에서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진실의 모습을 간직할 수 있어야 한다. 이 진실이 우리에게 유리하건 그렇지 않건 관계없이 말이다.” 저자는 잔더의 작업을 깃발 삼아 한국의 비정규직 노동자를 찍었다. 일하는 사람 세 명 중 한 명은 비정규직인 나라(2016년 기준), 그러나 ‘유령’이거나 ‘투명인간’처럼 느껴지는 그들을 지난 3년간 카메라 앞에 주인공으로 세웠다.

건강 격차마이클 마멋 지음, 김승진 옮김, 동녘 펴냄

“정치 시스템은 아동 빈곤을 얼마만큼 허용할지 ‘선택’할 수 있다.”

어쩌면 당신도 나처럼 병원 문을 나설 때마다 ‘괜히 왔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스트레스를 줄이고 충분히 잠을 자라는 말을 그대로 지킬 수 있는 현대인이 몇 명이나 될까. 이를테면 우울증으로 병원에 온 여성에게 담배를 끊으라는 말은 과연 ‘해법’인가.저자는 사람들을 건강하게 살도록 돕고 싶어서 의사가 됐다. 이내 의사가 할 수 있는 일이 일시적이고 제한적이라는 것 역시 알게 됐다. 결국 불의하고 불평등한 사회를 바꾸지 않으면 건강을 지킬 수 없다는 가설을 증명해온 여정이 이 책에 담겨 있다. 사람들의 삶이 더 나아질 수 있음을 보여주는 수많은 증거를 수집했다. 그는 네루다의 말을 인용한다. “함께 봉기하자, 비참함을 조직하는 사회에 맞서서.”

누가 농민의 몫을 빼앗아 가는가르 바지크 지음, 김진환·한수정 옮김, 따비 펴냄

“먹거리 사슬의 권력을 언급하는 것은 오랫동안 금기시되었습니다.”

올 한 해 우리 사회는 끊임없이 이 질문에 직면해왔다. 조류 인플루엔자, 살충제 달걀 파동 이슈가 터질 때마다 궁극적으로 던지는 질문은 한 가지였다. 왜 이런 열악한 생산 구조가 바뀌지 않는가. 답은 질문으로 되돌아간다. 누군가가 농민의 몫을 빼앗고 있기 때문이다.커피 생산자는 세계적으로 수천만명에 달하지만 커피콩 거래 업체는 몇 군데에 불과하다. 한국 양계산업 역시 소수 기업들이 수많은 양계 농가를 ‘소작농’으로 두고 있다. 진짜 ‘이윤’이 발생하는 유통과 판매 과정은 기업이 장악하는 구조다. 책은 ‘농업 공급 사슬의 권력 집중과 불공정 거래 관행 연구’라는 부제를 달고 있다. 실제로 ‘농업판 자본론’이라 불러도 될 만큼 학술적으로 농업경제 구조를 파헤친다.

니체는 틀렸다박홍규 지음, 푸른들녘 펴냄

“초인이 아니라 ‘인간’이 되어야 한다.”허무주의라는 질병을 치유하는 ‘긍정의 철학자’ 니체는 한국에서 인기가 높다. 1990년대 이후 국내 진보 성향의 학계에서도 ‘절대적 진리’ 및 도덕에 대한 맹신을 사납게 해체하는 니체의 전복성을 높이 평가하며 새로운 해석과 해설을 거듭해왔다. 저자 박홍규 교수는 니체에 대한 이런 긍정적 평가에 정면으로 도전한다. 예컨대 니체의 상대주의적 관점은 시스템에 도전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인간이 마땅히 따라야 할” “최소한의 도덕과 진리”를 파괴하는 기조로 지배자를 옹호하고 반(反)민주주의와 차별, 폭력 등을 정당화한다는 이야기다.니체의 삶과 저작, 당대의 독일 사회와 사상적 분위기까지 동원한 저자의 논지는 거침없이 ‘지배적 니체 해석’을 공격한다는 점에서 묘하게 니체적이기도 하다.

동남아의 이슬람화 2김형준 외 지음, 도서출판 눌민 펴냄

“인도네시아에서는 억압하는 주체로, 필리핀과 미얀마에서는 억압을 받는 대상으로 산다.”

말레이시아의 수도 쿠알라룸푸르의 번화가 부킷빈탕에서 문화 충격을 받은 적이 있다. 기독교 문화권 사람들에 비해 엄격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이슬람 문화권 사람들이 화려한 밤 문화를 향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드록 카페’가 있을 법한 자리에 요란한 ‘레바논 카페’가 있던 쿠알라룸푸르의 밤은 뜨거웠다. 중동의 이슬람권 사람들이 휴가를 오는 곳인데, 상대적으로 규율이 느슨해서 이런 일탈이 가능하다고 했다.이 책은 동남아에서 이슬람 문화권이 어떻게 확장되는지 보여준다. 필리핀의 민다나오와 미얀마의 아라칸(로힝야족 거주지) 등 분쟁 지역은 모두 이슬람 신자들의 거주 지역이다. 이슬람은 동남아의 변화를 읽는 중요한 키워드다.

기자명 시사IN 편집국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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