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중반이었다. 신문 사회면에서 작은 기사 하나를 우연히 보았다. 서울 강남 어느 동네 주민들이 장애인 특수학교 설립을 반대한다는 내용이었다. 마침 우리 아이를 청각장애인 특수학교에서 일반학교로 전학시켰던 나는 큰 충격을 받았다. 저들은 특수학교를 집값이나 떨어뜨리는 혐오시설 대하듯 했다(20년이 지난 지금 조사를 해보니 집값은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았고, 오히려 더 올랐다).
‘한국을 떠나야겠다’고 생각하게 된 계기는 바로 그 사건이었다. 한 동네에서 특수학교가 밀려나면, 반대 현상은 돌림병처럼 퍼져 나가기 마련이다. 같은 일의 반복은 장애인에 대한 편견과 불평등이 점점 더 커진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즈음 뉴욕 출장길에 캐나다 토론토에 들렀다가 놀라운 장면을 목격했다. 버스 정류장에서 운전기사가 시각장애인의 손을 잡고 내리더니 길을 함께 건넜다. 더 놀라운 점은, 바쁜 출근길의 어느 누구도 항의하거나 불편한 표정을 짓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이곳에 와서 알게 된 것인데, 체념하는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항의해봐야 얻는 것은 없고 눈총만 받게 되니까).
그 장면은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는 문화를 집약해 보여주었다. 나는 캐나다에 와서 살아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와서 보니 과연 기대한 대로였다. 우리 아이 시경이를 집에서 가까운 공립 초등학교에 넣었다. 청각장애인이라는 사실을 알고 교육청 관계자가 학교로 나왔다. 교장·담임교사와 상의를 하고는 청각장애 프로그램이 있는 학교로 시경이를 바로 전학시켰다. 특수반이 있는 일반학교였다. 등·하교는 택시나 스쿨버스가 시켜주었다. 캐나다에서는 모든 일이 느리게 진행되는 편인데, 이 일을 처리하는 속도는 전광석화 같았다.
특수반에서 공부하던 아이는 한 학기가 지나자 수학은 일반 반(‘메인 스트림’이라고 불린다)으로 가서 공부하기 시작했다. 특수반 교사의 판단에 따라 메인 스트림에서 공부하는 과목을 하나씩 늘려갔다. 한국에서는 일반학교로 옮겼어도 수업을 제대로 따라가지 못했다. 아이는 학교에서 하루 종일 만화책만 봤다. 청각장애아를 어떻게 가르쳐야 할지 모르는 담임교사는 아이가 조용히 있으니 “잘 지낸다”라고만 했다.
캐나다 학교의 일반 반에서 공부하며 다른 아이들과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것이 무엇보다 좋았다. 그런데 가만 보니, 우리 아이한테만 좋은 게 아니었다. 다른 아이들도 장애인인 시경이를 통해 배우는 것이 많았다. 일반 아이들은 ‘불편한 사람’과 더불어 생활하면서 배려하는 법을 저절로 익힌다. 장애를 가진 사람을 자기와 똑같은 사람으로 받아들일 뿐만 아니라 사회적 약자를 도와주는 방법을 자연스레 알게 된다. 유치원에서부터 그렇게 배우다 보니, 성인이 되어서도 장애인을 특별하게 여기지 않는다. 그저 배려를 해주어야 하는 사람 정도로 생각할 뿐이다. 장애를 가진 아이도 마찬가지이다. 몸이 다소 불편하다는 것 외에는 사람 관계에서 만들어지는 불편함이나 불이익 같은 것은 아예 없다.
시경이는 특수반이 있는 일반 중·고등학교에 진학해서도 줄곧 그렇게 생활했다. 10학년(고등학교 1학년)이 되면서부터 모든 과목을 일반 반에서 공부하게 되었고, 원하는 대학에 진학했다. 학교는 장애를 가진 아이가 자기 능력에 맞게 나아갈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었다. 아이는 그 길을 따라갔다.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에 나가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어릴 적부터 공부를 해온 과정이 일반 학생과 다를 바가 하나도 없다. 학습 능력이 떨어지는 학생들에게 보충수업을 해주는 것과 똑같은 일이다.
이렇듯 캐나다에는 일반적으로 특수학교가 없는 것이나 다름없다(아주 예외적인 경우도 있기는 하다). 일반학교에 장애인 특수반을 두고, 그 반 학생들이 서서히 통합교육으로 나아가게 한다. 발달장애가 있다고 해도 보조교사를 붙여 보통 아이들과 같은 반에서 함께 공부하도록 한다. 통합교육을 지향하면서 그 안에서 작동되는 장애 학생 프로그램은 대단히 복합적이고 정교하다.
장애 학생 프로그램 복합적이고 정교해
토론토 옆 도시 해밀턴에 사는 내 친구 아들 태훈이는 발달장애(자폐)가 있다. 시경이와 다른 점은 12학년(고등학교 3학년)인 태훈이가 일반 과목 수업을 잘 따라가지 못한다는 것이다. 유치원 때부터 일반학교 특수 프로그램 속에서 성장해온 태훈이는, 지금은 ‘따로 또 같이’ 공부한다. 수학이나 과학 같은 진도를 따라가기 어려운 과목 시간에는, 다른 교실로 이동해 자기에게 필요한 수업을 따로 받는다. 이를테면 수화를 배우면서 소통 능력을 키우고 체육관에 가서 체력을 단련한다. 학년이 시작하기 전 교육청 관계자가 학교 선생님들과 함께 만든, ‘태훈이 맞춤 학습 프로그램’이다.
드라마 과목은 다른 학생들과 함께 공부한다. 태훈이가 특별히 좋아하는 과목이기도 하다. 연말이면 드라마 한 편을 무대에 올리는데, 태훈이에게도 작은 배역이 주어진다.
평소 수업시간에 곁에서 늘 도와주는 보조교사 말고도, 1~2주에 하루씩 태훈이를 특별히 챙겨주는 친구가 있다. ‘베스트 버디’ 프로그램을 통해 선발된 친구이다. 베스트 버디는, 보조교사가 지켜보는 가운데 태훈이와 하루 종일 시간을 함께 보낸다. 베스트 버디 덕분에 태훈이도 친구들과 더 친해질 수 있고, 친구들도 발달장애의 특성을 좀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다.
대학에 진학하지 못하는 태훈이는, 졸업 후에도 고등학교에 남아 3~4년 동안 직업훈련을 따로 받을 예정이다. 이때부터는 교육청 및 학교와 지역사회가 협력하며 유기적으로 움직인다. 학교에서는 태훈이의 능력과 성향에 맞는 직업훈련을 시켜주고, 지역사회는 거기에 맞는 일자리를 찾아준다. 이를테면 과일 가게에서 과일을 진열하는 일 같은 것 말이다. 나는 캐나다와 미국의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그 훈련을 받은 청년들이 일하는 모습을 여러 번 보았다.
캐나다에 특수학교가 따로 없는 이유는 간단하다. 장애인이 격리되어 사는 특별한 존재가 아니라 더불어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어릴 적부터 장애인 친구들과 어울리며 성장한 보통 사람들은 장애인에 대한 편견이 없는 것이 아니라, 편견이라는 것을 아예 모른다. 장애인이든 비장애인이든, 저마다 자기 능력과 취향에 맞게 공부를 하고 사회에 나가는 것은 똑같다. 불편한 아이들에게는 좀 더 특별하고 정교한 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하면서, 교육청과 학교, 지역사회가 그 아이들을 어엿한 사회의 한 일원으로 키워내는 것뿐이다. 학교에 영재 프로그램이 있듯, 장애인 프로그램이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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