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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를 욕해달라’는 KBS 기자들의 호소

파업 중인 KBS 언론 노동자들이 ‘달라지겠습니다. 꾸짖어주세요’라면서 각계 인사를 찾아다니며 쓴소리를 듣고 있다. ‘죽어 있는 언론’이었던 시절을 반성하겠다는 의지다.

김빛이라 (KBS 기자) webmaster@sisain.co.kr 2017년 10월 11일 수요일 제2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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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라지겠습니다. 꾸짖어주세요.’ 파업 5주차에 접어든 KBS 언론 노동자들의 모습이다. 고대영 사장과 이인호 이사장을 향해 “물러나라” “퇴진하라!” 쉼 없이 외치면서도, 이것이 끝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다. 어떤 정권에도 휘둘리지 않는 공영방송을 만들어야 한다는 절박함은 곧 모두의 자기반성으로 이어지고 있다. 내부에서는 끊임없이 저항과 징계가 이어졌지만, 한편으로는 쓴소리에 귀를 막고 스스로 무기력함을 자처한 건 아니었을까? 제구실을 하지 못한 지난 시간을 회복하는 법을 찾기 위해 우리는 ‘쓴소리’를 찾아다니고 있다.

오랜만에 박재동 화백을 만났다. 한국 시사만평의 한 획을 그은 만화가. 촌철살인으로 유명한 그는, 사회 곳곳에서 약자들을 대신해 목소리를 내는 대표 문화예술인 중 한 명이다. 내가 사회생활을 갓 시작한 8년 전, 한 인터뷰 프로그램으로 인연이 된 박 화백은 그 후 취재 현장에서 우연히 마주칠 때마다 늘 힘을 주었다. “좋은 날 곧 오겠지.” 큰 키에 흰머리, ‘족집게 도사’를 연상시키는 그의 한마디는 마법사의 주문처럼 들리곤 했다. 이번엔 응원이 아니라 질책을 해달라며 찾아갔다. 달라진 뉴스를 만들기 위해 KBS 기자들이 직접 각계 인사들의 따가운 질책을 듣는 ‘비판 릴레이 인터뷰’를 하고 있다.

ⓒ김빛이라 제공
박재동 화백은 문화예술인들이 용기를 낼 때 KBS 언론 노동자들이 함께하지 않았다고 질타했다.

파업과 제작 거부, 그 이후를 준비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생각해보면 취재 현장에서 늘 질문을 쏟아내고 답변을 받아 적기 급급했던 때도 있었다. 그때와는 다른 마음가짐으로 인터뷰이들을 찾아가는 길, 기분이 묘했다.

“KBS 뉴스를 마지막으로 본 게 언제인지 기억하시나요?”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기억이 안 날 정도야. 대단히 미안한 이야기인데 벌써 오래됐지. 나한테는 ‘꼭 보지 않아도 되는 뉴스’가 됐다고나 할까.” 수십 년째 용기 있는 목소리를 내며 현장을 누비는 박 화백에게 최근 수년간의 KBS는 ‘죽어 있는 언론’이었다. “예전엔 누구든 자신의 생각을 당당하게 표현할 권리가 살아 있었죠. 그런데 이명박 정권 들어서면서 달라졌어요. 앞장서서 ‘불편한 이야기’를 하면 시쳇말로 ‘찍혔다’는 얘기가 돌았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화예술인들은 곳곳에서 약자들을 위해 용기를 냈죠. 그런데 언론 노동자들은 어땠습니까.”

맞다. KBS 뉴스는 ‘그곳’에 없었다. 세월호 참사, 사드 배치 논란 보도처럼 굵직한 이슈에서 한 걸음 물러서 있었다. 무력감 속에서 길을 찾으려는 이들에게 빛이 되지 못했다. 제대로 취재를 할 수 없도록 무너져가는 시스템에 부딪혀 역량을 발휘하지 못하는 사이 무력감에 빠진 이들이 늘어갔다. 표현의 자유가 극도로 위축된 상황을 꿰뚫어보고 지적해야 했지만 그 누구보다 몸을 사리는 뉴스를 만들고 있었다. 박재동 화백에 이어 인터뷰에 참여한 가수 전인권씨도 JTBC <뉴스룸> 손석희 앵커의 멘트로 기자들에게 일침을 가했다. “‘한 걸음 더 들어가겠습니다’ 정말 멋진 말 아닙니까. 진실을 밝혀주길 기대하는 국민들에게 KBS 뉴스가 채우지 못한 걸 만족시킨 겁니다. 우리는 뱉은 말 그대로 이행하는 언론만을 원합니다.”

“KBS 뉴스는 꼭 보지 않아도 되는 뉴스”


쓴소리를 듣고 돌아오는 길인데 왠지 모를 힘이 났다. ‘이 인터뷰는 꼭 해야 한다’며 시간을 내기로 했다는 배우 문소리씨 매니저의 문자도 때마침 도착했다. “양심의 소리가 되고 국민의 눈과 귀가 되려 했던 기자들이 좌절감을 겪고 무력해졌을 때, 얼마나 힘들었을까. 누구의 잘못일까. 이제 바닥에 왔으니 일어나세요.” 인터뷰 말미에 눈물까지 보인 그분들의 한마디를 기억할 것이다. 애정이 없으면 비난도, 비판도 존재할 수 없다는 걸 안다. 파업에 나선 KBS 구성원들을 향해 던지는 시민들의 쓴소리들이 감사한 이유다.

‘눈사람 기자’로 불리는 박대기 선배와 파업 집회 현장에서 만났다. 7년 전 겨울, 의도치 않은 방송 사고였지만 그렇게 많은 시청자들이 관심을 갖고 반응했던 이유가 무엇일지 곰곰이 생각해봤다고 한다. ‘밖에서 종일 일하는 아버지 생각이 나서 마음이 아팠다’는 댓글을 잊지 못한다고 했다. “우리가 앞으로 만들게 될 뉴스에 그런 공감을 담아내야 하지 않을까. 그날, 눈을 맞은 내 모습은 아주 드물게 벌어진 공감의 순간이 아니었을까.”

ⓒKBS 갈무리
함박눈을 맞으며 폭설 소식을 전했던 박대기 KBS 기자.

KBS와 MBC 양대 공영방송의 파업이 장기화되고 있지만 불편을 호소하는 이들이 생각보다 많지 않은 게 사실이다. “파업하고 있었어? 난 왜 몰랐지?” 지인들의 인사를 곱씹어본다. 5년 전 KBS와 MBC의 총파업 때와 또 달라진 모습이다. 신뢰도가 떨어졌다는 방증이기도 하고, 지상파 채널을 굳이 찾아보지 않아도 볼거리가 많아진 세상 때문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KBS와 MBC는 이대로 사라져도 좋은 걸까. 누군가는 그리 생각할지 몰라도, 사적 이익에서 자유로운 ‘엄정한 잣대’로 존재할 수 있다면, 이 또한 끝까지 국민들이 포기하지 않을 권리라 생각한다.

‘발신인 불명.’ 오늘도 어김없이 열린 낮 집회 현장에, 택배 상자 2개가 도착했다. 일일이 쓴 손 편지를 붙인 ‘초코파이’ 500여 개가 들어 있었다. ‘처음부터 지지하지도 않았고 관심을 두지도 않았지만, 지금까지 자리를 떠나지 않고 버틴 여러분을 지지하게 됐습니다.’ 멋진 언론으로 돌아와달라는 편지 말미엔 ‘뒤에서 응원하는 사람들’이라고만 적혀 있었다. 파업이 끝나고 다시 방송을 시작하는 날 꺼내 먹겠다며 과자를 고이 가져가 냉장고에 보관한 이들도 있었다. 응원받을 자격조차 없다고 생각했지만, 우리의 회복 움직임이 쌓이고 쌓여서 ‘다시 국민의 방송으로’ 제자리를 찾아가리라 믿는다.

ⓒ김빛이라 제공
다시 멋진 언론으로 돌아와달라며 한 시청자가 KBS에 보내준 초코파이.

공영방송의 회복은 세상을 바꿀 것이다. 각자가 몸담고 있던 프로그램, 매일 향하던 취재처와 스튜디오로 가고픈 마음은 간절하다. 하지만 귀를 닫고 눈을 감고서는 다시 그곳으로 향할 수 없다는 절박함은 더욱 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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