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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선, 재벌 저격 다음 행보는?

박성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후보자가 낙마하면서 박영선 의원이 다시 거론되고 있다. 박 의원의 내년 서울시장 선거 도전 여부도 관심을 모은다. 그의 의향을 들어보았다.

이숙이 기자 sook@sisain.co.kr 2017년 10월 02일 월요일 제52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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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상패가 정말 많네요.” 박영선 의원 방에 들어서자마자 후배 기자가 탄성을 질렀다. 의정 활동을 시작한 2004년부터 각종 단체에서 받은 상패, 감사패가 탁자 서너 개를 빼곡하게 채운 것도 모자라 바닥을 빙 둘러 놓이기 시작했다. 지난해 우상호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준 ‘국정감사 우수의원상’ 상패가 눈에 들어왔다. 원내대표단이 상까지 줄 정도로 4선 중진 의원이 국정감사를 열심히 했다는 얘기다.

ⓒ시사IN 신선영
박영선 의원은 문재인 대통령에게 원칙주의자이면서도 상대의 딱딱함을 녹이는 ‘선한 힘’이 있다며 그 힘을 발휘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방 가운데를 차지한 작고 둥근 회의 탁자 위에는 BBK 의혹과 관련한 자료가 놓여 있었다. 박 의원은 요즘 2007년 대선 때 제기한 뒤 ‘너무 지치고 지겨워’ 한동안 입에 올리지 않았던 이명박 전 대통령과 BBK 문제를 다시 언급하기 시작했다. 9월14일 대정부 질문에서 “BBK 가짜 편지 사건을 재수사해달라”고 박상기 법무부 장관에게 요구했다. 2007년 당시 한나라당은 ‘김경준 기획입국설’을 담은 편지를 공개한 바 있는데, 나중에 이 편지가 조작된 것으로 밝혀졌다. 박 의원은 검찰에도 사과를 요구했다. “BBK(은폐)와 관련해 남아 있는 검사들이 아직 있는데, 그들을 내치기보다 그들이 솔직하게 사과해줬으면 좋겠다” “정봉주 전 의원은 완벽한 희생양인데 특별사면이라도 해줘야 한다” 등이 박 의원의 주장이다. 박 의원은 국내외 리더 14명에 대해 쓴 <누가 지도자인가>라는 책을 펴낸 바 있다. 이 책에서 그는 이명박 전 대통령에 대해 “신은 진실을 알지만 때를 기다린다. 진실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라고 썼다. 그때가 점점 다가오고 있다는 게 박 의원의 ‘감’이다.

박 의원이 새삼 꽂힌 게 BBK 의혹이라면, 정치권 안팎에서 그에게 궁금해하는 건 문재인 정부에서 앞으로 어떤 역할을 할 것인가이다. 그동안 법무부 장관,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후보자 등 하마평에 여러 번 올랐다. 박성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후보자가 낙마하면서 다시 ‘박영선 입각 여부’가 주목을 받고 있다. 그는 내년 서울시장 후보로도 꾸준히 거론된다. 9월18일 진행된 <시사IN>과의 인터뷰에서 박 의원은 입각과 서울시장 출마 등에 대한 생각을 진솔하게 털어놓았다. 박원순 서울시장과의 로마 대화는 처음 알려지는 내용이다. 인터뷰 내용을 몇 가지 키워드로 정리했다.



문재인 대통령과의 애증 밖에서 보기에 문재인 대통령과 박영선 의원은 묘한 관계다. 2012년 대선 때 박 의원은 문재인 캠프에서 활동했다. 안철수 후보와의 단일화 협상팀장(룰 담당), 중앙선대위 공동위원장을 맡아 문 후보 당선을 위해 뛰었다. 지난 대선에서는 안희정 후보를 도우며 문 후보 측과 각을 세우더니 본선 선대위 구성을 앞두고 박 의원의 탈당 여부가 주요 뉴스로 떠오르기도 했다. 막판 극적으로 합류해 전국 유세에 동참했지만, 문재인 지지층에서는 적잖은 비판이 나왔다. 왜 그랬을까? 박 의원은 “2012년에 너무 고생을 했기 때문에 좀 더 많은 사람을 포용했으면 하는 바람, 적어도 제가 서 있는 그 라인들까지는 안아주기를 바란다는 메시지를 전한 것이다”라고 말했다. ‘2012년의 고생’이란 아마도 당 안팎에서 끊임없이 제기된 ‘친문 패권’ 얘기로 들렸다. 실제로 2012년 문재인 후보가 ‘당’이 아닌 ‘캠프 측근’ 중심으로 대선을 치렀고, 그것이 낙선의 주된 이유였다는 비판이 여기저기서 나왔다.

문 대통령 취임 직후인 5월 말 박 의원은 에콰도르를 특사로 다녀왔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추도식 등이 겹쳐 특사 수락을 머뭇거리자 임종석 비서실장이 “대통령이 굉장히 애착을 가진 나라니 다녀오시는 게 좋겠다”라고 설득했다. 에콰도르는 문 대통령이 노무현 정부 때 특사로 다녀온 곳이라 애정이 남다르다고 한다. 얼마 전 여당 의원들을 청와대로 초청했을 때도 문 대통령은 박 의원과 개별 사진을 찍으며 “에콰도르 다녀온 얘기 한번 들어야 하는데…”라고 말했다.

박 의원은 요즘 대통령을 만나면 하고 싶은 얘기를 하나둘 메모 중이다. 우선은 에콰도르와 중남미 얘기다. 에콰도르는 케임브리지 대학 장하준 교수를 경제 멘토로 삼고 한국이 그동안 잘해온 정책들만 골라서 추진 중이다. 우리나라를 본떠 혁신도시도 만들어놓았는데 아직 하드웨어만 있고 소프트웨어는 없는 상태다. 앞으로 각종 소프트웨어를 받아들이고 싶어 하는데, 중국이 ‘우리가 자금 문제를 해결해줄 테니 우리 걸 받아들여라’며 제안하고 있다고 한다. “이럴 때 우리 대통령이 방문하면 상당한 경제효과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라는 게 박 의원의 생각이다.

박 의원이 대통령에게 하고픈 또 다른 얘기는 야당의 마음을 움직이기 위한 포용력에 관한 것이다. “얼마 전 로마에 가서 새삼 느낀 게 있다. 로마가 제국이 될 수 있었던 건 결국 상대를 포용하는 정책을 폈기 때문이라는 점이다. 문 대통령도 마음속으로는 그렇게 하고 싶을 텐데 야당들이 받아들일 자세가 안 되어 있어서 안타까울 것이다. 그래도 그걸 딛고 넘어서 큰형님처럼 좀 더 포용해야 한다. 그 말을 할 타이밍이 오고 있는 것 같다.”

박 의원은 문 대통령의 ‘선한 힘’을 강조했다. 원칙주의자이면서도 상대의 딱딱함을 녹이는 선한 힘, 만델라와 같은 지도자에게 느껴지는 따스함이 있는데, 그 힘을 아직 발휘하지 못하고 있어서 안타깝다는 것이다. 머지않아 문 대통령이 야당 의원들과 1대1로 통화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 그 뒤에는 아마도 박 의원의 고언이 작용하지 않을까 싶다.



서울시장에 대한 생각 201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 때 박 의원은 박원순 무소속 후보, 최규엽 민주노동당 후보와 단일화 경선을 치러 6.58%포인트 차이로 박원순 후보에게 단일 후보 자리를 내주었다. 당시 민주당, 민노당, 시민사회 등이 모두 참여한 3만명의 선거인단(국민참여경선 현장 투표단) 투표에서 박 의원이 이겼지만 일반 시민 여론조사에서 밀렸다. 이런 경쟁력 때문에 정치권 안팎에서는 차기 서울시장 후보로 박 의원 이름이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박 의원도 서울시장에 대한 관심을 숨기지 않았다. BBK 의혹과 함께 ‘내년 지방선거에서 서울시장을 어떻게 하느냐’가 요즘 제일 고민이 많은 대목이라고 했다. 행간을 그대로 전하기 위해 박 의원과의 일문일답을 싣는다.

왜 서울시장에 관심을 갖는 건가?

전공이 도시지리학이다(웃음). 21세기는 국가 경쟁력보다 도시 경쟁력이 더 중요한데, 런던·도쿄·로마 등 세계 도시들과 비교했을 때 서울에 새로운 에너지가 필요한 시점인 건 분명해 보인다. 박원순 시장이 6년간 시정을 잘하셨는데, 지금은 대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다. 박 시장의 생활밀착형 도시 재생이 나쁜 건 아니지만 서울을 세계인에게 매력적인 도시로 만들 만큼 큰 흐름을 바꾸지는 못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내가 나가고 아니고를 떠나 박 시장이 더 하는 게 맞는지 새 사람이 하는 게 맞는지 고심 중이다.

박 시장은 3선 도전 쪽으로 기운 듯하다.

이번에 로마에 같이 갔을 때 차 한잔하자고 하더니 ‘나올 거냐’ ‘안 나올 거냐’ 묻지도 않고 페어플레이 하자고 하더라. 그런 걸로 봐서 더 하고 싶은 생각이 강하신 것 같은데, 솔직히 얘기했다. ‘다음 번 목표가 대선이면 지금 서울시장 한 번 더 하는 게 플러스인지 마이너스인지 잘 모르겠다. 그런데 3선 시장으로 끝내겠다면 도전해볼 가치가 있다’라고. 본인이 대선을 꿈꾸면서 서울시장을 또 한 번 하겠다고 하면 서울시정이라는 관점으로 봤을 때는 정책을 터닝하지는 않을 듯하다.

로마의 여성 시장을 만났던데, 어떤 얘기를 나눴나?

내 귀를 가장 때렸던 건 곧 개통하는 로마 지하철 3호선 얘기다. 콜로세움 앞으로 지하철이 지나가는데 공사하면서 유적이 많이 발굴되어 건설에 12년이나 걸렸다고 한다. 그걸 다 모아서 로마의 지하철역을 다 박물관으로 만들었다고 하던데, 그러면 이게 또 하나의 랜드마크가 되어 세계 시민들을 끌어들이겠구나 싶더라. 당장 나부터 호기심이 생기고.

ⓒ박영선 의원 페이스북 갈무리
9월7일 박영선 의원(맨 왼쪽)이 로마로 떠나기 전 박원순 서울시장 등과 함께 기념촬영을 했다.


삼성 저격수 박 의원은 ‘저격수’라는 단어를 싫어한다. 대신 ‘재벌 개혁론자’로 불러달라고 했다. 하지만 재벌, 특히 삼성이 박 의원에게 느끼는 두려움은 ‘저격수’ 그 이상이다. 국회에 처음 들어온 2004년부터 박 의원은 금산분리법 개정에 천착했다. 금산분리법은 금융자본과 산업자본을 분리하자는 것이고, 금융자본이 산업자본의 주식을 취득할 경우 5% 이상 보유하는 것을 금지하자는 게 핵심이다. 삼성의 경우 삼성생명이 삼성전자의 지분을 5% 이상 보유한 게 문제였다. 금융자본이 고객의 돈으로 산업자본(제조업)을 지배하는 걸 엄격히 통제해야 대한민국 경제가 건강하게 유지될 수 있다는 게 박 의원의 소신이었다. 이 법을 둘러싼 박 의원과 삼성의 줄다리기는 시작부터 팽팽했다. 박 의원이 문재인 대통령을 처음 만난 것도 초선 2년차이던 2005년 “이 법에 대한 노무현 정부 관료들의 수상한 흐름(로비 의혹)을 조사해달라”며 당시 민정수석이던 문 대통령을 무작정 찾아가면서였다.

박 의원이 이처럼 재벌 개혁에 ‘꽂힌’ 건 경제부 기자를 오래 하면서 재벌들의 중소기업 착취와 특혜 안주 같은 적폐를 적나라하게 지켜봤기 때문이다. “로스앤젤레스 특파원 때 보니 미국에서는 금융 대출부터 시작해 대부분의 특혜가 대기업이 아닌 중소기업이나 벤처 쪽으로 먼저 가더라. 빌 게이츠니, 스티브 잡스니 하는 창업자들이 자기 아이디어 가지고 은행지점장을 설득해 대출받아 성공한 뒤 자기는 그 부의 5%만 가지고 95%는 사회에 환원하는 선순환이 이뤄진다. 자기 돈이 아니라 국민이 모아준 은행 돈으로 성공했으니까. 그런데 우리는 30대 재벌기업이 구름층처럼 떡하니 버티고 앉아 모든 특혜를 빨아들이고 가족에게 세습을 하니 젊은이들이 희망을 가질 수 없다. 그 생태계를 바꿔보겠다는 건데 재벌들의 로비력이 워낙 세서 성과가 썩 좋지는 않다.”

최근에는 ‘인적 분할을 통한 세습’을 막는 법을 발의해놨는데, 통과 가능성은 미지수다. 초기 박 의원에게도 재벌들의 로비가 쇄도했지만 지금은 아예 끊겼다. 재벌 개혁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던 중 박 의원이 흥미로운 말을 했다. “주변에서 법무부 장관 후보자라고 얘기를 많이 했는데 그건 제가 할 일이 아닌 거 같다. 그런데 중소벤처기업 장관은 실리콘밸리 취재도 많이 하고 중소기업이라는 을의 입장과 벤처가 가야 할 방향 등에 대한 저 나름의 철학도 있고 해서 하면 보람은 있을 것 같다.” 그동안 중소기업계에서는 장관급으로 격상된 중소벤처기업부에 힘 있는 장관이 왔으면 좋겠다며 박영선·윤호중 의원 등을 호명하곤 했다. 초대 장관은 ‘현장 전문가’였으면 좋겠다는 대통령의 뜻에 따라 정치인들은 일찌감치 배제됐는데, 우여곡절 끝에 지명된 박성진 후보자가 낙마하면서 논의는 원점으로 돌아간 상태다.



첫 비법조인 출신 여성 법사위원장 1983년부터 2004년까지 MBC 기자를 하다 2004년 열린우리당 비례대표로 국회에 입성해 내리 4선을 한 박 의원은 ‘첫 번째’라는 타이틀을 많이 가지고 있다. MBC에서 첫 여성 특파원과 경제부장을 했고, 정치권에 들어와서는 첫 여성 정책위의장, 첫 여성 원내대표 등을 기록했다. 그중에서도 박 의원이 가장 하고 싶었고 자부심을 갖는 건 첫 여성 법사위원장이다. 게다가 박 의원은 법을 전공하지도, 사법고시에 합격하지도 않은 비법조인 출신이다.

박 의원이 처음 법사위와 인연을 맺은 건 역시나 BBK 의혹 때문이었다. 검사들이 이 문제를 허술하게 수사하길래, 직접 법사위에 들어가 관련 사실들을 파헤쳐보고 싶었다. 전문가가 아니면 낯선 용어들 때문에라도 주눅이 드는데 박 의원에게는 믿는 구석이 있었다. 로스앤젤레스 특파원 시절 전 세계적으로 유명했던 OJ 심슨 재판을 중계 방송하듯 리포트한 게 도움이 되었다. 그때 미국법과 전문 용어들을 집중해서 공부했다. 국제변호사인 남편이 관련 판례를 찾아주며 도움을 주었다.

ⓒ연합뉴스
2007년 12월7일 박영선 의원이 기자 시절 BBK 사무실에서 이명박 후보와 만났던 내용을 설명하고 있다.

비법조인 눈으로 보니 기존 법 조항 중에 관행적으로 넘겨오던 이상한 것들이 더 잘 보였다. ‘경찰은 검사의 명령에 복종해야 한다’는 검찰청법 조문이 대표적이다. ‘명령, 복종이라니, 이게 어느 시대 법이냐?’ 싶어 옆에 있던 법조 출신 의원에게 이상하지 않으냐고 물어보니 ‘뭐가 문제냐’는 표정이었다.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 되어 법안심사 소위에서 이건 고쳐야 하는 것 아니냐며 문제를 제기했더니 상대방들이 반대 논리를 내놓지 못했다. 그렇게 해서 명령과 복종이란 단어가 빠졌고, 이것이 경찰에 수사 개시권을 주는, 검경 수사권 조정의 시발점이 되었다. 법은 상식이고, 오히려 법조인이 아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박 의원이 법사위원장을 하고 싶었던 것도, 법조인이 아닌 시각에서 법과 법 사이의 행간을 읽어주는 역할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법조계에서는 변호사가 갑이고, 변리사나 세무사 등은 다 을이라 변호사에게 꼼짝을 못한다. 그런데 법사위원장을 할 때는 을 쪽 사람들이 굉장히 좋아했다. 내가 늘 을 편을 들어주고 그들을 위한 법을 많이 통과시켰으니까(웃음).”



청문회 스타 박영선 의원은 청문회 스타다. 이명박 정부 시절 경남도지사 출신인 김태호 국무총리 후보자를 낙마시키는 등 국회 청문회마다 ‘한 방’을 터뜨리곤 했다. 하이라이트는 지난해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국정조사 청문회였다. 2차 청문회 당시 제보받은 동영상을 근거로 ‘최순실을 모른다’라고 딱 잡아떼던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을 몰아붙여 ‘자백’을 받아냈다. 이어지는 3차 청문회에서는 측근들에게 증거인멸을 지시하는 최순실씨 육성이 담긴 통화 내용을 공개했다. 유가족 동의 없이 진행한 세월호 특별법 여야 협상과 차별금지법 반대 발언 등 연거푸 터진 악재로 급격하게 추락했던 박영선의 존재감이 다시금 조명되는 순간이었다.

ⓒ시사IN 이명익
지난해 12월14일 박 의원이 증거인멸을 지시하는 최순실씨의 통화 내용을 공개했다.
박 의원은 자신의 청문회 비법이 기자 생활을 오래 한 데서 오는 ‘직감’이라고 말했다. 쏟아지는 제보 안에서 얘기가 되는 것과 안 되는 것을 구분하고, 이거다 싶은 것을 끈질기게 파헤치다 보면 십중팔구 의혹의 실체에 접근하게 된다고 한다. 제보 내용을 ‘엿 바꿔먹지 않고(제보받은 내용을 해당 기업이나 권력자에게 알려 미리 입막음하도록 하는 행위를 일컫는 언론계 표현)’ 효과적으로 전달한다는 평이 나면서 ‘딥 스로트(Deep Throat:내부고발자)’가 박 의원을 찾아온다. 최순실 녹음파일을 갖고 박영선 의원을 찾아갔던 제보자들도 “한 번도 만나본 적이 없지만 박영선 의원이라면 제보자를 보호하고 진실을 제대로 밝혀줄 수 있을 것 같아서 찾아갔다”라고 밝혔다.

아직도 현역 기자처럼 의정 활동을 하는 그는, 한창 진행 중인 공영방송 정상화 투쟁에 대한 소감이 남다르다. “MBC 출신 의원들이 응원을 하고 싶어 가겠다 했더니 오지 말라고 하더라. 정치인들이 몰려오는 게 괜히 오해만 사고 도움이 안 된다고 판단하는 것 같다. 그래서 못 가고 성명만 냈다. 더 이상의 희생 없이 빨리 정상화됐으면 하는데… 걱정된다.”



세월호 특별법 그리고 눈물
정치인이 되고 10년 동안 승승장구하던 박 의원이 가장 큰 시련을 겪은 때가 2014년 여름, 세월호 특별법 협상 국면에서다. 당시 박 의원은 진상조사위원회를 하루라도 빨리 띄워 활동하는게 낫다고 보아다. 야당과 유가족 추천 위원 몫이 여당보다 3명 더 많게 협상을 진행해 진상을 밝히는데 도움이 된다고 보았다. 하지만 유가족과 시민사회단체는 수사권과 기소권을 가진 특검을 더 선호했다. 협상 중간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표였던 박 의원이 유족들에게 통보도 제대로 하지 않고 갑작스레 특별법 합의를 하면서 유가족과 지지자들의 항의가 빗발쳤다. 이 일로 박 의원은 결국 원내대표에서 물러났고 이후 설화와 악재가 겹치면서 2년 가까이 비난의 아이콘이 되어야 했다.

세월호 얘기가 나오자 박 의원은 “소통을 제대로 못한 게 얼마나 치명적인지를 뼈저리게 느낀 계기였다”라고 털어놓았다. “지금도 원래 협상했던 안이 통과됐다면 세월호 증거인멸 시간을 줄일 수 있어서 더 많은 것을 빨리 알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유가족과 직접 대화하지 않은 제 실수였고 후회가 많이 된다. 누군가 대신 전달해주기로 했고, 저는 이 이야기가 잘 전달됐다고 생각해 사인을 했는데, 유가족이 끝까지 반대하는 걸 알았다면 그렇게까지 사인할 이유가 뭐가 있었겠나.”

“일이 안 되려고 그랬는지…”라며 말끝을 흐리는 박 의원의 표정에서 깊은 회한이 묻어났다. 인터뷰 내내 씩씩하고 논리 정연하게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던 박 의원의 모습이 아니었다. 내친김에 원래 눈물이 많은지 물었다. 거센 공격에 부닥치면 간혹 공적인 자리에서 눈물을 쏟아내, 이 또한 누리꾼의 입길에 오르내리곤 했다. 그의 답은 이랬다. “사실 BBK 사건 때문에 너무 고생을 해서 가슴에 억울함이 많이 쌓였다. 남편이 직장에서 쫓겨나 해외에 나가 있었고, 아이도 데리고 가서 나만 혼자 남아 있었다. 뭔가 막 쌓여 툭 하고 부딪치면 눈물부터 마구 쏟아지곤 했는데, 이제는 안 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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