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은 속옷 가게에서 시작한다. 가게 점원 옆에 등을 돌린 채 서 있는 주인공 ‘김모미’의 전신이 보인다. 거울 속에는 그녀의 잘록한 허리와 풍만한 가슴이 비친다. 얼굴 윗부분은 의도적으로 가렸다. 주변 여성들이 “저거 수술한 거 아냐?”라고 쑥덕거리자, 발끈한 주인공이 휙 돌아 얼굴을 보여준다. “아니거든요!!!”라는 대사는 눈에 잘 띄지 않는다. 본능적으로 그림에 먼저 시선이 간다. 좁은 이마와 찢어진 눈, 튀어나온 광대뼈와 움푹 파인 볼에 샛노란 그림자가 들어갔다. 냉정하게도 낮은 콧대에만은 음영이 전혀 없다. 완벽한 몸매와 흉측한 얼굴. 웹툰 〈마스크걸〉은, 이 장르 독자들에게 몹시 낯선 외모를 가진 주인공의 이야기다.

웹툰 〈마스크걸〉의 ‘김모미’는 낮에는 회사원이지만 밤에는 마스크를 쓰고 인터넷 성인 방송을 한다.

〈마스크걸〉은 2015년 8월부터 네이버에 연재되고 있는 성인 웹툰이다. 청소년이 볼 수 없다는 결정적 약점을 안고도 총 조회수는 준수한 편이다. 특히 20~30대 여성들에게 전폭적인 지지를 받고 있다. 온라인상에 ‘인생 웹툰’이라고 소개하는 일부 마니아들 덕에 꾸준히 입소문도 타고 있다. 네이버 웹툰 중국 서비스에서도 인기가 폭발적이다. 월요일에 연재되는 웹툰 작품 20개 중 조회수 1위를 오랜 기간 지키고 있다.

작품은 설정부터 자극적이다. 주인공 김모미는 낮에는 평범한 회사원이지만 밤에는 인터넷 성인 방송을 한다. 못생긴 얼굴을 가리기 위해 방송을 켜기 전에는 늘 마스크를 쓴다. 시청자들은 몸매를 훤히 드러낸 ‘마스크걸’에게 환호한다. 얄궂게도 이들 가운데에는 김모미의 직장 동료 ‘주오남’도 있다. 현실의 주오남은 외모 콤플렉스에 시달리는 소극적인 회사원인데, 이 방송에서는 활달한 고등학생 시늉을 한다. 어느 날 주오남은 마스크걸의 정체가 같은 회사 김모미라는 사실을 알게 되고 그녀를 협박한다. 회사를 그만두게 된 김모미는 주오남을 칼로 찔러 죽이게 된다.

9월24일까지 94회 연재된 〈마스크걸〉은 크게 3부로 나뉜다. 주오남을 죽인 김모미가 얼굴 대부분을 성형한 뒤 잠적하는 부분까지가 1부다. 2부에서는 연예계에 진출하려는 김모미와 그녀에게 복수하려는 주오남의 어머니가 대립한다. 최근 시작된 3부에서 김모미는 교도소에 들어가고 그녀의 딸은 학교에서 갈등을 겪는다. 1부 초반과 지금은 작품 분위기가 판이하다. 곳곳에 보이던 해학적 요소는 사라지고 무거운 공기만 감돈다. 〈마스크걸〉의 글 작가 매미와 그림 작가 희세는 1부 후기에 “애초에 로맨틱 코미디로 기획했지만 흘러가면서 장르가 바뀌었다”라고 썼다.

〈마스크걸〉은 마주하고 싶지 않은 한국 사회의 병폐를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웹툰이다. ‘외모지상주의’라는 큰 전제에서 시작하지만 각론도 풍성하다. 인터넷 개인 방송에서 불거진 음란성, SNS의 신원 노출 위협, 병적인 모성애, 학내 따돌림까지 세밀하게 그렸다. 얼마 전 보도된 영화감독의 여배우 노출 강요 사건을 이 작품은 지난해에 다뤘다. 최근 입길에 오른, 인터넷 방송이 계기가 된 살인 사건도 〈마스크걸〉의 주요 소재 중 하나였다. 작품 속에 등장하는 냉정한 경찰서장과 ‘갑질’하는 재소자는 우병우 전 민정수석과 최순실씨의 얼굴로 묘사됐다.

사회문제를 꼬집었지만 일부 독자들은 ‘감정 이입이 안 된다’고 볼멘소리를 낸다. 정붙이기 힘든 캐릭터들 때문이다. 이 만화 댓글난에는 “등장인물 누구에게도 공감이 안 된다”라는 반응이 심심치 않게 나온다. ‘외모지상주의 사회의 피해자’라고 동정하기에는 주인공의 행태가 선을 한참 넘는다. 만취한 유부남 부장을 모텔로 데려가고, 잠든 그의 옷을 벗겨 사진을 찍어 협박한다. 자신에게 못생겼다고 말한 시청자를 죽인 뒤 사체를 토막 내어 야산에 버린다. 그렇다고 주인공의 적대자들을 응원하기도 어렵다. 협박당한 부장이 가련해질 때쯤 그는 김모미의 얼굴을 발로 걷어찬다. 주오남의 어머니가 죽은 아들의 복수를 꾀하는 것은 이해할 수 있지만, 그녀의 맹목적 집착과 폭력성은 감정 이입을 방해한다.

그 누구도 응원하기 어려워

〈마스크걸〉이 특별해지는 결정적 지점은 평범한 사람들의 이중성을 드러내는 대목에서다. 작품에는 ‘전형적인’ 인물이 거의 없다. 페미니스트를 자처하는 친구는 성형수술을 한 여성을 보고 “한국 여자 독하다”라며 비아냥댄다. 친구에게 동조하던 주인공은 집에 들어와 수술 날짜를 잡는다. 주인공에게 “얼굴도 못생긴 주제에!”라고 소리를 지른 직장 동료는 평생 외모 콤플렉스에 시달려온 인물이다. 바람직한 가치의 화신이나 롤모델은 없다. 피해자이자 가해자, 공모자인 군상만 즐비하다. 한 인터뷰에서 글 작가 매미는 “‘막장’이라는 평을 듣고 좀 놀랐다. 나는 매우 개연성 있고 현실적인 스토리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비합리적 충동에 이끌린 인물들을 낯설고 불편하게 여기는 독자는 여전히 많지만, 역으로 “이 웹툰이야말로 현실과 같다”라는 반응도 늘고 있다. 속옷 가게에서 시작한 작품은 배경을 교도소로 옮겼다. 김모미를 꼭 닮은 그녀의 딸은 친구들에게 손가락질받으며 비뚤어지는 중이다. 현실이 그렇듯, 대를 이어서까지 사회는 그다지 변하지 않았다.

기자명 이상원 기자 다른기사 보기 prodeo@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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