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15일 북한의 미사일 발사에 대한 공조를 논의하기 위해 한·일 정상이 35분간 전화 통화를 했다. 이날 통화에서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문재인 대통령에게 “한국 정부의 국제기구를 통한 대북 인도적 지원 사업의 시기를 고려해달라”고 요청했다. 이에 문 대통령은 “유엔 세계식량계획(WFP)과 유니세프(UNICEF)가 북한의 영유아와 임산부에 대한 사업 지원을 요청해와 검토하게 된 것이다. 원칙적으로 영유아와 임산부를 지원하는 것은 정치적 상황과 무관하게 다루어야 할 사안이다”라고 설명했다.

이날 북한이 또다시 일본의 머리 위로 화성 12호를 발사해 예민해졌겠지만, 아베 총리의 발언은 ‘내정간섭’으로 비칠 수 있다. 게다가 아베 총리는 이 발언이 있기 불과 보름 전까지만 해도, 북한을 전격 방문해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정상회담을 갖고 일본인 납북자를 데려올 꿈을 꾼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같은 방북 기획은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와는 어긋난 화해의 발걸음이었다. 또 9월15일 문 대통령과 전화 통화에서 했던 강경 발언과도 엇박자가 나는 행보였다. 그가 전격 방북을 추진했던 것은 추락하는 지지율 때문으로 보인다. 이른바 사학 스캔들로 떨어진 지지율을 끌어올리기 위해 방북 카드를 꺼낸 것이다. 그런데 방북을 중단하기로 결정하고, 180° 태도를 바꾸어 대북 강경 제재를 주장하고 나선 것도 모두 지지율 때문으로 풀이된다.

무산된 아베 총리의 방북설을 추적했다. 9월17일은 북·일 평화선언 15주년 기념일이다. 지난 2002년 9월17일 당시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는 방북해 김정일 위원장과 만났다. 고이즈미와 김정일 회담 뒤 일본인 납북자 문제 해결 및 대북 경제지원, 국교 정상화 등을 다룬 ‘평양선언’을 발표했다. 15년 뒤 아베 총리는 그 기념일인 9월17일에 〈뉴욕타임스〉에 강경 대북정책을 요구하는 칼럼을 기고했다. “북한과는 더 이상 대화를 해서는 안 된다. 모든 옵션이 테이블 위에 올라 있다는 미국의 입장을 지지한다.” 트럼프식 강경 대북정책에 동조하는 목소리를 낸 것이다.

 

ⓒ평양 조선중앙통신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북한은 아베 일본 총리의 방북 제안에 납북 일본인 8명 중 7명의 송환 의사를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언론인 다하라 소이치로 제안에 방북 결심

이때부터 시계를 보름 전으로 돌려보자. 아베 총리의 태도는 전혀 달랐다. ‘아베 방북설’이 일본 정가에 퍼졌다. 즉, 그가 전격 방북해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정상회담을 통해 북핵 문제를 중재하고 일본인 납북자들을 데려올 ‘큰 그림’을 그리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이는 일본 언론인 다하라 소이치로의 제안에 따른 것이었다. 지난 8월2일자 일본 〈일간현대〉 보도에 따르면, 7월28일 다하라 씨가 아베 총리와 만났다. 그는 아베 총리에게 사학 스캔들 때문에 20%대로 추락한 지지율을 끌어올리려면 ‘정치 생명을 건 모험’을 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다하라의 솔깃한 제안에 아베 총리가 큰 관심을 보였다고 한다. 아베와 대화를 마친 뒤 다하라 씨는 자신의 제안 내용에 대해 “곧 알게 될 것”이라면서도 “총리는 이달 중 움직일 것이다. 상당히 진지한 관심을 보이고 있다”라며 자신감을 보였다. 아베 총리도 ‘애드벌룬’을 띄우는 발언을 했다. 그는 8월4일 BS아사히 방송 인터뷰에서 “귀중한 어드바이스(충고)를 들었다. 스케일이 큰 얘기다”라고 말했다. 다하라 씨가 제안한 모험이란 방북을 통해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만나는 것이라고 일본 정계는 해석했다. 이것이 아베 총리가 8월이나 9월 방북한다는 ‘아베 방북설’이 퍼지면서 일본 정계를 출렁이게 한 시발점이었다. 심지어 7월31일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통화를 두고 이런 해석이 덧붙여졌다. 7월31일 통화가 길어진 게 북한의 미사일 발사 때문이 아니라, 방북 계획을 트럼프 대통령한테 양해받는 과정에서 대화가 길어진 것 아니냐는 얘기였다.

아베 방북설의 진원지인 다하라 소이치로는 일본의 유명 저널리스트이다. 그는 자신의 구상을 먼저 야치 쇼타로 일본 국가안전보장국장에게 전했다고 한다. 그 뒤 7월20일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이 연락을 해와 만났다. 7월28일에는 아베 총리가 직접 만나고 싶다고 해 직접 얘기를 하게 됐다고 한다.

다하라 소이치로는 9월7일 국회에서 열린 자민당 의원들 대상 강연회에서 “6자 회담 부활을 목표로 아베 총리에게 북한을 방문하지 않겠느냐고 제안했다”라고 공개적으로 방북 제안설을 시인했다.

 

 

ⓒEPA아베 일본 총리가 ‘정치 생명을 건 모험’으로 시도했던 방북이 결국 무산되었다.

결론부터 말하면 아베 총리의 ‘정치 생명을 건 모험’은 빛을 보지 못했다. 어떻게 된 일일까? 다하라 씨 제안 이후 실제로 아베 총리 방북을 위한 북·일 간 막후 비밀 교섭이 진행되었다고 한다. 일본이 그동안 송환을 요구한 8명의 일본인 납북자 가운데 7명을 북한이 돌려보내겠다는 뜻을 밝혔다고 한다. 하지만 아베 총리가 방북을 포기해버려 중단됐다고 한다. 일본인 납북자의 상징인 요코다 메구미 씨가 송환 대상자에 포함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1977년 요코다 씨는 열세 살 때 실종됐다. 이후 북한에서 결혼해 딸을 낳았다. 지난 1970~1980년대에 북한은 공작원 양성을 목적으로 일본인을 납치했는데, 일본 사회에서 요코다 씨는 대표적인 희생자로 여겨진다. 일본은 요코다 씨의 송환을 매번 요구했지만, 북한은 이미 1994년에 자살했다고 주장해왔다. 북한은 2014년 3월 요코다 씨의 부모와 북한에 살던 그녀의 딸을 몽골의 수도 울란바토르에서 만나게 하기도 했다.

ⓒ연합뉴스납북되고 10여 년이 지난 뒤 북한에서 촬영한 요코다 메구미 씨의 사진.

이번에 일본이 송환을 요구한 8명 중 요코다 씨가 빠진 7명의 송환을 북한이 제안했다면 전향적인 태도 변화일 수 있다. 2014년 5월 일본인 납북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북·일 외무성 국장급 회담이 열렸다. 당시 북한은 일본 정부가 공인한 납북자뿐 아니라 자국 내 모든 일본인에 대한 포괄적 조사를 한 다음 생존이 확인된 사람은 귀국시키겠다고 했다. 이에 일본도 독자적으로 취한 대북 제재의 일부를 해제한다고 합의했다. 이 북·일 간 스톡홀름 회담에 따라 납북자 송환 회담의 최종 결론을 내리던 지난 2015년 9월 북한은 요코다 메구미 씨를 포함해 일본 측이 요구한 8명 전원이 사망했다고 밝혔다. 그런 북한이 요코다 씨는 빠졌지만 이번에 나머지 7명의 송환 의사를 밝혔다면 상당히 파격적인 제안이었다.

아베 총리가 납북자 문제 해결을 원했다면 북한의 이번 제안을 받는 게 순리다. 그러나 스스로 그 기회를 포기했다. 이유가 있었다고 한다. 아베 총리 쪽은 방북을 위해 북한과 비밀 교섭을 하는 한편 이와 별도로 여론 탐문 작업을 했다. 이 조사 때 요코다 씨를 뺀 채 송환 협상을 할 경우 지지율이 오히려 내려갈 수 있다는 결과가 나왔다고 한다. 지지율이 더 떨어진다는 결론에 도달하자 방북 카드를 서둘러 접어버린 것이다.

일본의 한 소식통에 따르면 아베 총리는 지난 8월23일 사사카와 재단 이사장인 사사카와 료헤이가 주관한 모임에서 고이즈미 전 총리에게 대북 특사를 제안했다. 고이즈미 전 총리는 승산이 없는 게임으로 보고 제안을 거부했다고 한다. 

 

ⓒAP Photo2002년 9월17일 평양을 방문한 고이즈미 일본 총리(오른쪽)가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과 악수하고 있다.

다하라 씨가 밝힌 북·일 간 막후 비밀 교섭의 결론이 내려진 시기는 그 이후일 가능성이 높다. 또한 북한이 ‘경술국치 107주년’을 상기시키며 일본의 머리 위로 화성 12호를 발사한 8월29일 전에 아베의 방북 거부 결정이 내려졌을 수 있다. 즉 8월23일에서 8월29일 북·일 간 큰 거래가 성사될 뻔하다가 지지율 하락을 두려워한 아베의 결정으로 무산됐다는 추정이 가능하다. 

거듭된 북한 미사일 실험에 아베 지지율 반등

북한은 9월15일 또다시 일본 상공을 지나는 화성 12호를 날려 보냈다. 거듭된 북한의 미사일 발사가 아이러니하게도 아베 총리에게는 ‘약’이 되었다. ‘북풍’을 타고 아베의 지지율이 회복되었기 때문이다. 〈마이니치 신문〉이 지난 7월22~23일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아베 총리의 지지율은 26%를 기록했다. 지지율 ‘마지노선’으로 불리는 30%가 무너지면서 아베 정권의 붕괴가 점쳐졌다. 이에 앞서 도쿄 도의원 선거에서 고이케 유리코 도쿄 도지사가 이끄는 도민퍼스트회에 아베 총리의 자민당이 완패하면서 아베의 지지 기반이 내부에서부터 무너질 것으로 보였다. 그런 아베 총리가 겨우 두 달 만에 지지율 50%대를 회복했다. 극우 성향의 〈산케이 신문〉과 후지뉴스네트워크(FNN)가 9월16~18일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 지지율 50.3%를 기록했다. 일본 언론도 지지율 반등에 북한 미사일이 결정적 구실을 했다고 본다. 지지율 상승의 여세를 몰아 아베 총리는 9월18일 중의원 해산 및 10월22일 조기 총선이라는 깜짝 카드를 꺼내들었다. 그리고 언제 그랬느냐는 듯 ‘북한 두들기기’의 선봉을 자임하고 나섰다.

 

 

 

기자명 남문희 기자 다른기사 보기 bulgot@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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