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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와 내가 임무 교대할 때”

이명박 전 대통령의 4대강 사업에 반대했던 최열 환경재단 이사장은 이후 검찰 수사를 받고 구속되었다. 최 이사장은 당시 국정원이 서울환경영화제 예산 배정을 막았다고 주장했다.

정희상 기자 minju518@sisain.co.kr 2017년 09월 26일 화요일 제52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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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정부 시절 4대강 사업의 최대 걸림돌은 국내 환경운동 세력이었다. 그 정점에 최열 환경재단 이사장이 있었다. 최 이사장은 1975년 6월 긴급조치 9호 위반으로 구속 수감되면서부터 공해 문제에 주목했다. 그는 1982년 국내에서 처음으로 전문 환경운동 단체 ‘한국공해문제연구소’를 열었다. 이후 온산병 사태, 낙동강 페놀 사건, 영월 동강댐 백지화투쟁 등 환경운동의 이정표를 세운 굵직한 사건 중심에 항상 그가 있었다. 이명박 정부가 추진한 4대강 사업을 반대하는 데에도 앞장섰다.

이명박 정부의 검찰은 2008년 9월 환경운동연합을 압수수색하며 대대적인 수사를 벌였다. 당시 검찰이 최 이사장에게 청구한 구속영장이 법원에서 두 차례 기각되자 표적수사 논란이 일었다.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받던 그는 2013년 2월15일 알선수재 등 혐의가 인정되어 징역 1년형이 확정되었다. 그해 2월19일 이명박 전 대통령 퇴임을 엿새 앞두고 그는 교도소 생활을 시작했다. 1년 뒤 출소하며 최열 이사장은 “이명박과 내가 임무 교대할 때가 반드시 온다”라고 말했다. 최열 환경재단 이사장을 만났다.

ⓒ시사IN 이명익
최열 환경재단 이사장(위)은 문재인 대통령의 탈핵 정책이 좀 더 치밀해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지금도 이명박 전 대통령과 ‘임무 교대’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내가 1년간 감옥살이를 하고 나오니 그는 자연인이었다. 옥중에서도 언젠가 ‘임무 교대’를 할 거라고 생각했다. 권력은 5년으로 유한하지만 환경운동은 영원하다. 법은 잘못됐을 때 바로잡아 개정하면 되지만 생태 환경은 한번 훼손하면 바로잡기 힘들다. 이명박 정부는 온갖 무리수를 써서 4대강 사업을 강행했고 내 예상대로 수질이 나빠졌다. 감옥에서 나와 낙동강, 금강 등 현장을 다 살펴보았다. 녹조 현상이 더 심해졌고, 큰빗이끼벌레 확산 등 생태계 변화가 나타났다. 대통령이 생태계를 마음대로 훼손하는 것을 보고도 우리가 분노하지 않는다면 이런 악순환이 반복될 수밖에 없다.

이 전 대통령은 4대강 사업 성과로 일자리 창출 등 경제 논리를 내세웠는데?

환경은 돈의 문제가 아니다. 환경은 가치 문제이다. 앞서 말한 대로 한번 파괴되면 아무리 돈을 많이 들여도 단시일 내 복구할 수 없다. 그런 면에서 환경을 지키기 위해 많은 사람이 노력했다. (4대강 사업은) MB식 이윤 추구 관점으로 처리할 일이 아니었다.

4대강 사업 이외에 이명박 정부의 환경 관련 실책을 꼽는다면?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대응이다. 앞으로 역사학자들은 2001년 미국 9·11 테러와 2011년 3·11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 전후로 시대를 구분할 것이다. 21세기에 일어난 역사적인 문명 대전환의 계기로 규정할 것이다. 특히 3·11 원전 사고는 세계적인 사건이고, 우리 옆 나라에서 일어났다. 하지만 당시 이명박 전 대통령은 이 사건을 두고, ‘우리가 원전 수출 선두주자로 나설 수 있다’는 식으로 몰아갔다. 이런 발상을 하는 사람이 대통령이 됐다는 게 얼마나 수치스러운가.

이명박 전 대통령을 서울시장 시절 돕기도 했는데?

후회스럽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서울시장 시절 청계고가를 없애고 하천을 복원하겠으니 환경운동가로서 도와달라고 했다. 시민단체 중 반대 의견도 있었다. 나는 자치단체장은 중앙정부와 달리 생활 정치를 하니까 도와주자고 생각했다. 부위원장을 맡았다. 일을 하다 보니까 토목공사 식으로 밀어붙이더라. 생태계 복원을 위해선 다양한 전문가 의견을 듣고 역사유물 보존 방안도 마련해야 하는데 그냥 막 나가더라. 아무리 만류해도 듣지 않아서 중간에 부위원장직을 그만두었다.

청계천 복원사업 이외 다른 분야에서 도운 일은 없는가?

교통난이 심하니 월요일부터 금요일 사이에 하루는 승용차를 가져오지 않는 ‘자동차 요일제’도 내가 제안했다. 이명박 당시 시장은 “좋습니다” 하더니 한 달 만에 바로 시행했다. 추진력 참 좋구나 생각했다. 또 그 무렵 자정께 종로에 나가면 귀가길 시민들이 택시 잡느라 애를 태웠다. 이명박 시장을 만나 “지하철 운행을 한 시간쯤 연장합시다”라고 제안하니까 또 “아! 좋습니다”라며 시행했다. 그때까지는 화끈해서 좋게 봤다. 그때 문국현씨와 몇 사람이 서울숲 조성 운동을 했는데 이명박 시장도 좋다고 해서 뚝섬에 서울숲이 조성됐다. 한 방송사에서 <열린 음악회>를 서울숲에서 녹화하는데, 이명박 시장이 나와 문국현씨를 불러서 서로 어깨동무하고 ‘에델바이스’를 같이 불렀다.

그 정도 사이였으면 대운하도 도와달라고 하지 않던가?

2007년 대선을 앞두고 10월에 부산영화제를 찾은 이명박 후보를 만났다. 대뜸 “최 대표, 대운하 좀 도와달라”고 하더라. 그래서 내가 “그거는 안 됩니다. 흐르는 물을 막아서 강물이 맑아진 적이 없고 삼면이 바다인데 운하를 왜 뚫습니까”라고 반대했다. 그랬더니 이 후보가 “그러면 다음에 사람을 보내겠다”라고 말한 뒤 떠났다.

ⓒ연합뉴스
2007년 이명박 당시 대선 후보(아래)는 최열 환경재단 이사장에게 대운하 사업을 도와달라고 부탁했다.

누구를 보냈나?

열흘쯤 지난 뒤 나중에 이명박 청와대 국정기획수석을 지낸 곽승준 교수가 찾아왔다. 곽 교수는 당시 환경운동연합 정책위원으로 새만금 사업도 반대했던 이다. 곽 교수에게 “대운하? 택도 없는 소리 말라고 해라”며 돌려보냈다.

대통령이 된 뒤 만난 적은?

대통령 되고 나서 딱 한 번 만났다. 2008년 람사르 총회가 창원에서 열렸는데 당시 나하고 박원순 변호사를 초청했다. 대통령이 들어오기에 내가 악수하며 일부러 손을 꽉 잡았다. “언제 한번 보자”라고 했더니 아무 말도 안 하고 가만히 있더라.

이명박 검찰 수사는 예상했나?

국정원 직원들이 사무실 주변에 자주 나타나고 후원 기업들을 조사한다는 이야기는 들었다. 처음에는 눈에 띄는 탄압이 없으니까 저 사람들이 무슨 정보를 모으려 하는구나 정도로 생각했다.

검찰이 두 차례나 청구한 구속영장이 기각됐는데?

처음에 횡령 혐의로 몰아가려다 증거가 잘 안 나오니까 두 번째는 알선수재 혐의를 걸었다. 잘 아는 기업인으로부터 전세금을 빌렸다가 갚은 적이 있는데, 검찰이 이것을 알선수재죄로 엮었다. 경기도에 친환경 사업단지를 추진하던 것과 관련해 김문수 당시 경기도지사를 만났는데 그걸 문제 삼았다. 알선수재 혐의는 1심에서 무죄판결을 받았지만 2심에서는 유죄가 났다. 대법원에서 신영철 대법관이 주심을 맡아 2심 그대로 확정되었다. 재심을 청구할 생각이다.

당시 검찰 수사를 ‘표적 수사’로 보는 이유는?

김성훈 전 농림부 장관이 이런 말을 해주었다. 그가 이명박 후보 시절 안국포럼에서 농업정책 자문을 했는데, 어느 날 이 후보가 불러서 “문국현씨 그 사람 요새 왜 그러냐”라고 했다. 대선 때 문국현씨도 후보로 나왔는데 텔레비전 토론에서 “대운하 하면 배가 산으로 올라간다”라며 이명박 후보를 신랄하게 공격했다. 그때 이 후보가 ‘문국현 배후’로 나를 지목해 “최열씨가 시켜서 그런 거죠?”라고 김성훈 전 장관에게 물었다고 하더라.

당시 서울중앙지검 김광준 특수3부장이 수사했다.

김광준 부장검사는 나중에 조희팔과 기업으로부터 내사·수사를 무마해달라는 청탁과 함께 10억원에 달하는 뇌물을 받은 사실이 드러났다. ‘검찰의 공적’으로 꼽혀 7년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다. 그가 나를 조사할 당시 ‘차명계좌’라는 용어를 쓰면서 끈질기게 추궁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자신이 상습적으로 뇌물을 차명계좌로 받고 있었다. 두 차례나 내 구속영장이 기각된 뒤 임채진 당시 검찰총장이 조용히 보자고 해서 만났다. 임 총장이 곤혹스러워하면서 “최열 대표가 수사받을 때 내가 수사받고 있는 심정이다”라고 말하더라. 검찰총장도 특수3부 수사 내용을 전혀 보고받지 못해서 곤혹스럽다고 했다. 그런 과정을 통해 청와대 민정수석실이 직접 하명한 사건이라고 짐작했다.

지난 정권의 국정원 공작이 드러나고 있는데 환경운동연합 활동과 관련해 국정원 개입은 없었나?

해마다 서울환경영화제를 하는데 서울시와 환경부에서 일부 예산을 지원받는다. 영화제를 하면 항상 나오던 지원금이 내가 재판받기 시작하자 안 나왔다. 오세훈 시장은 나더러 “들어온 돈이 어디 가겠냐. 드리겠다” 하더니 말뿐이었다. 그래서 서울시 공무원에게 확인했다. 그 공무원이 ‘국정원 직원이 자주 찾아와 시달리고 있다’고 하소연하더라. 환경부 예산도 국정원 때문에 못 받았다. 이명박 정부 때부터 국정원이 블랙리스트를 운용한 것이다.

수감 생활은 어땠나?


수감 당시 긴급조치 재심 청구 사건과 관련해 법정에 출석했다. 검사가 나와서 무죄 구형을 하더라. 판사가 “사과합니다”라고 하고. 박정희 유신 독재에 반대하다 징역 산 것을, 이명박 정부의 4대강 사업을 반대하다가 수감된 상태에서 무죄를 받고 사과를 받으니 만감이 교차했다. 수감 때 세계적인 상도 받았다. 브라질 환경운동가인 치고 멘데스는 아마존 열대우림 보존 활동을 하다 암살당했다. 세계적 환경운동 단체 시에라 클럽이 매년 ‘치고 멘데스 상’을 시상하는데 2013년에 나를 선정했다. “한국의 환경을 보호하기 위한 최열 대표의 헌신과 그가 4대강 사업 반대활동을 벌이다 이명박 정부로부터 탄압을 받은 고통을 인정한다”라며 선정 사유를 밝혔다. 그 사람들은 이른바 진보적 환경단체도 아니고 미국 백인 중산층이 중심인 환경전문가 단체인데 거기서 횡령한 범법자에게 상을 주겠나?

문재인 대통령과는 인연이 있나?

1982년 내가 한국공해문제연구소를 설립했을 때 부산지부에 당시 문재인 변호사를 이사로 모셨다. 문재인·노무현·김광일·이흥록 변호사, 송기인 신부 등이 부산지부 이사였다. 나는 문 대통령이 환경문제와 관련해 30년 전부터 고민을 했다고 본다. 취임 뒤 핵발전소, 가습기 살균제, 미세먼지 등 문제에 문 대통령이 적극 대응하는 것은 그런 고민의 산물이지 이벤트하듯 갑자기 나온 게 아니라고 본다.

신고리 5·6호기 공론화위원회 활동 등 문재인 정부의 환경정책을 어떻게 평가하나?


큰 방향은 잘 잡았다고 본다. 준비를 치밀하게 해서 추진해야 하는데 그런 부분은 조금 부족하지 않았나 싶다. 탈핵에 대해 국민이 확실히 이해할 수 있는 메시지를 줘야 하는데 국민들에게 충분히 전달이 안 되니까 핵발전소를 찬성하는 쪽이 훨씬 세게 나오는 것 같다. 보수 언론도 탈핵 정책을 공격하는데 그걸 단숨에 받아칠 수 없으면 그 이야기가 그럴듯하게 들린다. 구체적인 데이터를 가지고 반박해야 한다. 예를 들어 국민들이 가장 민감하게 여기는 전기요금 인상과 관련한 정확한 데이터를 준비해 제시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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