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해 여름〉
마리코 타마키 지음
질리안 타마키 그림
심혜경 옮김
이숲 펴냄

보통 휴가는 익숙한 일상을 벗어나 자유롭게 쉬는 것을 뜻하지만, ‘여름휴가’라고 하면 괜히 더 설렌다. 더구나 사춘기 소녀라면 어떨까. 부모가 계획한 휴가에 어쩔 수 없이 따라나서지만, 속으로는 일탈을 꿈꾸지 않을까. 그 일탈은 비밀스러울수록 좋다. 마치 피터팬과 웬디가 부모가 잠든 사이에 네버랜드를 다녀왔던 것처럼. 그렇게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자기만의 비밀을 하나씩 간직한 채 일상으로 돌아올 수 있다면, 그보다 근사한 휴가는 없을 것이다.

〈그해 여름〉은 매년 여름 같은 곳으로 휴가를 떠나는 로즈 가족에 관한 이야기다. 그곳에서 로즈는 매년 여름 할머니 집으로 놀러오는 또래 여자아이 윈디를 만난다. 이제 막 사춘기에 접어든 로즈와 윈디의 주된 관심사는 섹스, 큰 가슴, 미성년자 관람 불가 영화 따위다. 두 소녀는 주변 어른들에게 여전히 어린아이에 불과하다. 소녀들은 그에 반항이라도 하듯 매일같이 공포영화를 빌리러 근처 식료품점을 드나들지만, 안타깝게도 소녀들의 반항은 주변 어른들에게 조금도 주목받지 못한다. 사실 로즈는 식료품점에서 일하는 청년 던크를 짝사랑하고 있다. 로즈는 자신의 감정이 낯설기만 하고, 아무에게도 들키고 싶지 않다. 설상가상 던크의 여자 친구가 등장하면서 로즈는 자신의 감정을 혼자 감당하기 어려워진다.

또 다른 한편에서는 로즈의 부모인 에반과 앨리스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앨리스가 로즈의 동생을 유산한 이후 계속된 부부의 갈등은 오히려 휴가지에서 더욱 고조된다. 로즈는 그런 부모가 내심 원망스럽다. 로즈에게 아기라는 미지의 존재는 자기가 엄마의 사랑을 독차지할 수 없다는 위협이며 자신의 짝사랑을 환멸에 빠뜨리는 결정적 계기가 된다. 던크의 여자 친구가 덜컥 임신을 한 것이다. 로즈의 치기 어린 증오는 책임을 회피하려는 던크가 아니라, 절망에 빠진 던크의 여자 친구를 향한다.

〈그해 여름〉의 저자 마리코 타마키와 질리안 타마키는 대단한 사건이 아니라 주변부라 할 만한 이야기들을 통해 사춘기 소녀의 미묘한 심리를 섬세하게 묘사하고 있다. 단조롭기 짝이 없는 로즈의 일탈에 비해, 로즈를 둘러싼 갈등은 마치 로즈 가족이 여름마다 찾아가는 휴가지 아와고의 검은 바다처럼 깊고 어둡기만 하다. 이들은 과연 그해 여름을 무사히 보낼 수 있을까. 한바탕 소란을 겪은 후에야 아와고에는 다시금 평화가 찾아오는 것처럼 보이지만, 로즈의 마음은 한동안 계속 소용돌이칠 듯하다. 그 소용돌이 같은 혼란의 다른 이름은 ‘성장’일 테다.

소용돌이 같은 혼란의 다른 이름은 ‘성장’

로즈의 그해 여름은 기대했던 것보다 근사하지 않을 수 있다. 또 자기만의 비밀은 시간이 지나면 별 볼 일 없을지 모른다. 로즈와 윈디는 이듬해 여름에 다시 만나기로 약속했다. 아마도 두 소녀 모두 조금은 더 멋진 가슴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그새 성큼 자란 로즈와 윈디는 그해 여름보다 어색한 사이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아니, 어쩌면 로즈는 더 이상 부모를 따라나서고 싶지 않을지도 모르고, 윈디 역시 더 이상 아와고의 할머니 집을 찾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실망할 필요는 없다. 로즈와 윈디의 소녀 시대는 〈그해 여름〉 안에 박제되어 있지만, 책장을 덮고 난 후에도 이야기는 계속된다.

기자명 송아람 (만화가)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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