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후의 삶을 살다 보면 최소 한 번 정도는 ‘덕질’하던 이를 마음속에서 접는다. 그가 그럴듯한 후속 앨범을 내놓지 못하거나, 실망스러운 연기를 보여주는 배우로 전락하거나, 이상한 종교에 빠지는 경우다. 그도 아니면 그냥 단순한 변심으로 이별을 고하기도 한다. 이유가 무엇이든 마음이 식어서 끝낸 팬 생활이라면 아쉬워하는 경우가 별로 없다. 그 사람은 제 갈 길을 갈 거고 나는 새로운 누군가를 찾아 열광하게 될 테니까.

그렇게 잊어버린 스타가 갑자기 유명을 달리 했다는 소식이 들려오는 순간이 있다. 현재 좋아하고 있거나 좋아하는 마음을 간직하고 있던 사람이라면, 아마 그 소식에 가장 먼저 슬픔을 느끼게 될 거다. 애정이 식어 예전에 그를 마음속에서 지웠던 이라면 어떨까?

패트릭 스웨이지는 어느 날 갑자기 스타가 된 배우는 아니다. 1952년 8월18일 텍사스 휴스턴에서 태어난 패트릭 스웨이지는 1979년 〈스케이트타운(Skatetown)〉으로 데뷔했지만, 영화는 흥행에 실패했고 한참을 무명 배우로 머물렀다. 1985년이 되어서야 〈남과 북(South and North)〉이라는 드라마의 주연을 맡았고, 1987년 〈더티 댄싱(Dirty Dancing)〉으로 스타덤에 올랐다. 데뷔한 지 8년 만이었다.

ⓒ이우일 그림

그의 가장 인상적인 장면을 꼽아보라면 아마도 춤추는 모습을 얘기할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그가 자신의 가장 큰 장기인 춤을 보여준 영화는 〈더티 댄싱〉이 거의 유일했다. 그래서였을까, 패트릭 스웨이지는 〈사랑과 영혼(Ghost)〉(1990)으로 큰 성공을 거두고 나서 〈폭풍 속으로〈Point Break)〉(1991)에서 이미지 변신을 시도했지만, 그의 연기는 화제가 되지 못했다. 꾸준히 연기 활동을 했음에도, 결국 그는 2004년 〈더티 댄싱:하바나 나이트(Dirty Dancing:Havana Nights)〉를 마지막으로 그저 그런 배우로 주저앉았다. 무명 생활이 길었던 데는 이유가 있었을 거라는 세간의 말과 함께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잊혀갔다.

오랜 시간이 지난 후 다시 들려온 패트릭 스웨이지의 새 소식은 〈비스트(Beast)〉라는 신작 드라마를 준비한다는 희망찬 얘기였지만, 동시에 췌장암에 걸렸다는 뉴스도 전해졌다. 지나간 청춘스타, 즉 시골의 낡은 극장에서 힘차게 춤추던 젊은이를 기억하던 이들에게, 몸무게가 10여kg이나 빠져 병색이 완연한 그의 모습은 큰 충격을 주었다. 이야기의 결말이 ‘병마를 이겨냈다’라는 해피엔딩이라면 좋았겠으나, 열성적인 활동 재개가 무색하게 2009년 9월14일 패트릭 스웨이지는 고인이 되었다. 췌장암 진단을 받은 지 8개월 만이었다.

누군가를 덕질 중이라면, 최선을 다해 사랑하라

한때 좋아했던 스타를 갑자기 떠나보낸 이들이 한결같이 느끼는 감정이 있다. ‘후회.’ 내 기대와 다른 길로 가는 행보 때문에 애정이 식어서 팬을 그만둔다. 그러고 나면 절연한 가족처럼 무심해진다. 간간이 보이는 그의 소식을 새겨는 둬도, 팬으로 되돌아가지 않는다. ‘다시 보지 않겠다’와 ‘다시는 볼 수 없다’는 분명히 다르다. 스스로 마음을 접었지만, 그 사람과 끝까지 함께할 수 없었다는 사실에 후회하는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사람은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른다’라고 겁을 주는 건 아니다. 그저 한 가지 말하자면, 패트릭 스웨이지의 새로운 모습은 이제 더 이상 어디에서도 볼 수 없다. 〈더티 댄싱〉에서 춤을 추고, 〈사랑과 영혼〉에서 연인에게 ‘사랑한다’라고 말하는 예전의 모습들을 보며 추억을 곱씹을 뿐이다. 당신이 누군가를 덕질 중이라면 최선을 다해 사랑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패트릭 스웨이지의 노래처럼, 좋아하는 이는 바람처럼 다가오지만 언제든 바람처럼 가버릴 수도 있다. 그가 다시 내게 다가올 순간을 상상해본 적도 있지만 무슨 의미가 있으랴. 이제는 그가 저 하늘의 바람처럼 편안히 잠들길 바랄 뿐이다. 내 후회와 함께 말이다.

기자명 중림로 새우젓 (팀명)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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