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말 일본 도쿄에 도착하자마자 한글 디자인 텀블러 하나를 들고 숙소를 나섰다. 나고야에 이 텀블러를 보내야 했다. 근처 우체국으로 향하던 중 택배 사무소를 발견했다. 이름은 탁큐빈(宅急便). 야마토 운수의 택배 서비스다. 나도 여기서 물건을 부칠 수 있을까. 호기심이 생겨 우체국으로 향했던 발길을 돌렸다.

“텀블러 하나 나고야로 보낼 수 있나요?” 직원이 가능하다며 송장을 줬다. 주소 등을 채우고 결제를 기다리는데 예상치 못한 질문이 날아왔다. “여기가 비어 있네요.” 다시 송장을 봤다. 상대방이 택배를 받을 시간을 지정할 수 있었다. 오전 중, 14~16시, 16~18시, 18~20시, 19~21시 등 항목도 다양했다. 밤 9시? 일본의 택배 노동자들은 야간에도 배달을 다녀야 한단 말인가. 놀란 내게 직원이 물었다. “어느 시간대로 체크할까요?” “그냥 아무 때나요.” 내가 당황해하는 사이 직원은 ‘지정 없음(指定無し)’에 표시를 했다.

ⓒ허은선 제공일본의 택배 노동자는 야간과 주말에도 배달을 한다.

“646엔(9월6일 환율 기준 약 6750원)입니다.” 2000~3000원대 택배 값에 익숙한 내게는 선뜻 적응되지 않는 가격이었다. 텀블러 약 330g, 포장까지 합해도 무게가 1㎏이 넘지 않는 택배 한 건의 운송비가 한국 돈 6700원이 넘었다. 도쿄에서 나고야까지 거리를 찾아보니 약 360㎞. 서울에서 부산까지의 거리보다 짧았다. 며칠 뒤, 또다시 탁큐빈을 찾았다. 도쿄에서 약 900㎞ 떨어진 사가(佐賀)에 머그컵 한 개를 보내는 데 1207엔(약 1만2600원)이 나왔다.

 

일본의 택배 시스템이 궁금해졌다. 도쿄에 거주하는 한국인 친구가 본인의 경험을 들려줬다. 생수 몇 병을 인터넷 주문했다가 받을 기회를 연달아 놓치는 바람에 약 일주일 뒤에야 받았다는 것이다. 한국에선 부재 시 아파트 관리사무소 등에 맡기는 것이 보통이지만 일본에는 ‘재배달’ 서비스가 있다. 그런데 말이 재배달이지 사실상 ‘재재배달’ ‘재재재배달’도 있어서 택배 노동자들이 어쩔 때는 밤 9시 이후에도 배달을 다니며 진을 뺀다고 한다. “보관비도 냈어? 네가 택배 회사의 공간을 일주일간 사용한 셈이잖아.” “안 냈어. 안 그래도 이런 재배달 서비스가 합당한지에 대한 논란이 벌어지고 있어.” 일본의 택배비엔 이 보관비도 포함되어 있는 것일까.

택배 노동자에 대한 처우도 궁금해졌다. 한 일본인 친구는 “12월 들어 3㎏이나 빠졌어요”라는 택배 노동자의 인터뷰로 시작하는 르포 기사를 찾아 보내줬다. 2016년 12월 보도된 이 기사에 따르면, 일본 택배 노동자들에겐 아마존이 부담스러운 존재라고 한다. “바빠진 것에 비해 돈이 더 벌린다는 느낌이 없다.” 배송 건수당 인센티브가 턱없이 낮기 때문이다. 나고야에 사는 일본인은 현지 지역방송 리포트를 보여줬다. 한 운수회사가 택배 트럭 운전사들에게 불법으로 장시간 야근을 시켜 노동국의 지도를 받았다는 내용이었다. 심지어 월 197시간 잔업을 한 이도 있다고 한다.

누리꾼들, ‘되도록 묶음 배송을 하자’

8월 말~9월 초 일본 체류 중 토요일, 심지어 일요일에도 배달을 다니는 택배 노동자들을 길목 곳곳에서 마주치며 놀랐다. 과연 휴일에도 택배를 받을 수 있어서 편하다고만 할 수 있을까. 다행히 일본 누리꾼들 사이에서 ‘되도록 묶음 배송을 하자’ 같은 의견이 나오고 있다고 한다. 나는 한국에서 뭘 할 수 있을까. 어쩌다 보니 일본에서 우리 아파트 단지를 담당하는 각 택배 회사 노동자들 얼굴을 떠올리며 홀로 심각해졌다.

기자명 허은선 (캐리어를끄는소녀 대표)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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