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25일 오전 11시부터 서울시교육청 내 학교보건진흥원 강당에 인파가 몰렸다. 80여 석의 공간에 500여 명이 들어찼다. 오후 3시 이곳에서 ‘제2차 유아교육발전 기본계획수립 정책 연구’ 현장 세미나가 열릴 예정이었다. 연구 책임자인 김용일 한국해양대 교수는 준비된 발표 원고를 읽지도 못했다. 한국유치원총연합회 소속 사립 유치원 원장들이 가로막았기 때문이다. 지난 7월21일 대전에서 열린 현장 세미나 때처럼 이날 서울 세미나도 결국 취소됐다. 사립 유치원 원장들은 “유치원 죽이는 유아교육발전 5개년 계획 전면 중단하라!” 등의 구호를 외치며 오후 6시까지 강당을 점거했다.

ⓒ연합뉴스한국유치원총연합회 회원들이 7월25일 서울시교육청에서 열릴 예정이던 ‘제2차 유아교육발전 기본계획수립 정책 연구’ 세미나 장소를 점거했다.

지난 7월13일 경기도 수원시 경기도교육청 앞에서도 ‘사립 유치원 권익 확보를 위한 결의대회’가 열렸다. 머리에 빨간 띠를 두른 사립 유치원 관계자 1300여 명은 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쳤다. “사유재산 인정하라! 부당감사 중단하라!” 집회 단상 위에는 각 지역 지부에서 모은 유치원 인가장과 휴업결정서 뭉텅이가 박스째 전시돼 있었다. 자신들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면 집단 휴원과 인가장 반납도 불사하겠다는 표현이었다. 사립 유치원 운영자들은 왜 이렇게 화가 났을까?

우리나라 유치원의 절반이 사립이다. 지난해 기준 전체 유치원 수는 8987개. 그 가운데 국립·단설·병설을 포함한 국공립 유치원이 4696개이고, 사립 유치원은 4291개다. 원아 수로 비교하면 사립 비중이 76%에 이른다. 전체 유치원 재원생 70만4138명 가운데 국공립 유치원에 다니는 아이는 겨우 17만349명이다. 나머지 53만3789명이 사립 유치원에 다닌다(2016 〈교육통계연보〉, 위 그래프 참조). 현행 제도상 만 3세부터 초등학교 취학 전까지의 아이들도 공교육 대상에 들어가 있지만(유아교육법 제3조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는 보호자와 더불어 유아를 건전하게 교육할 책임을 진다’), 실제로는 우리나라 유아교육의 대부분이 국가 시설이 아닌 사립 시설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연합뉴스전두환(가운데 서 있는 이) 정권 시절 사립 유치원 수가 급증했다.
군부대 내 유치원 개원식 모습.

사립 유치원 수는 1980년대 전두환 정부 시절 급증했다. 전두환 정부는 1981년 수립한 유아교육진흥종합계획에서 유치원 취학률을 38%까지 높이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그 수치를 채우기 위한 방법이 바로 ‘사립 유치원 증설’이었다. 전국의 많은 사설 학원과 무인가 유치원에 정식 유치원 인가증을 내줬다. 시설 규정도 대폭 완화하고 유치원비 제한도 없앴다. 무자격 원장이나 교사가 유치원을 운영할 수도 있게끔 한시적으로 규제를 풀어주기도 했다. 쉽게 말해 “경영을 원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운영할 수 있도록(1981년 10월27일 국회 문교공보위원회에서 문교부 답변)” 문을 열어놓은 것이다. 1980년 861개였던 사립 유치원 수가 1987년 3233개로 4배 가까이 급증했다.

‘유치원 사업’에 뛰어든 대부분은 개인이었다. 지난해 기준으로 학교·재단·사회복지 단체·군부대 등이 설립한 유치원은 전체 사립 유치원 4291곳 가운데 552곳에 불과하다. 나머지 3739곳은 개인이 설립한 사립 유치원이다(위 그래프 참조). 학교법인이 아니면 설립과 운영이 제한된 사립 초·중·고·대학교(사립학교법 제3조)와 달리, 사립 유치원은 법인 전환 과정 없이도 설립과 운영이 자유롭다.

현행 사립학교법에서 권리와 의무의 주체는 주로 ‘법인’에 국한돼 있다. 개인이 설립한 사립 유치원도 법규상 사립학교에 포함된다(사립학교법 제2조 1항). 하지만 부족한 감사 인력 등으로 현실적으로 교육청의 관리 감독에서 벗어나 있다. 예를 들면 아무도 이들 유치원의 회계장부를 제대로 들여다보지 않았다. 교사 임용과 보수도 원장이 정하기 나름이었다. 정부와 교육청도 개인 자영업처럼 운영되는 사립 유치원들의 이윤 추구 활동을 사실상 묵인해왔다.

갈등은 이런 사립 유치원에 나랏돈이 대거 들어가면서부터 시작됐다. 이전에도 각종 지원금 제도는 있었지만 정부가 무상보육 정책을 시작한 2012년부터 사립 유치원에 대한 국고 지원금 규모가 커졌다. 원아 1인당 29만원씩(올해 기준, 방과후과정비 포함) 지급되는 3~5세 누리과정 유아 학비는 매달 꼬박꼬박 사립 유치원 통장으로 입금된다. 사립 유치원은 교원 인건비로도 1인당 월 최소 40만원씩(서울시 기준)을 보조받는다. 단기 대체 강사비·교재·교구비·신용카드 수수료 지원금 등의 명목으로도 사립 유치원에 교육 예산이 투입된다. 지난해 교육부 집계에 따르면 2016년도 사립 유치원에 지원된 국가 예산은 총 2조330억여 원에 이른다. 전체 사립 유치원 4291개로 나누면 지난 한 해 사립 유치원 한 곳당 받은 나랏돈은 4억7000만원이 넘는다.

이 돈을 사립 유치원들은 어떻게 썼을까? 사립 유치원을 관리 감독해야 할 교육청에서도 사실 잘 모른다. 서울시교육청의 한 관계자는 “규정상 사립 유치원도 다른 사립학교처럼 ‘사학기관 재무회계 규칙’을 준수하고 교육청이 그것을 감독하게 되어 있다. 하지만 부족한 감사 인력으로 사립 초·중·고교 감사에도 허덕이기 때문에 사립 유치원에는 사실상 손을 잘 못 댄다”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감사를 나간다 해도 “기초적인 증빙서류 자체가 없다. 문서가 보존돼 있지 않은 사립 유치원이 대다수다. 회계 부정이 발생하면 보통 행정직원이 없는 사립 유치원에서는 원장이 책임을 져야 하는데, 임용권자인 원장이 스스로 ‘셀프 징계’를 하게끔 돼 있는 구조다”라고 덧붙였다.

제도의 허점으로 생긴 사각지대 안에서 일부 사립 유치원 운영자들이 ‘좋은 시절’을 보냈다. 강원도의 한 유치원 원장은 누리과정 지원금으로 아들의 오피스텔 구입 계약금을 냈고, 충청북도의 한 유치원 원장은 남편을 소방시설 관리자로 채용해 월 270만원의 급여를 챙겨줬다. 서울의 한 유치원 통장에서는 매달 원장 집 관리비와 가스요금 등이 빠져나갔다. 부산에서 사립 유치원을 6개 운영하는 일가족은 유치원 예산에서 빼낸 돈으로 비자금 118억원을 조성했다. 최근 몇 년 사이 해당 지역 시도 교육청이 감사를 통해 밝혀낸 사례 가운데 극히 일부가 이 정도이다.

최근 경기도교육청이 사립 유치원 감사에 적극 나섰다. 경기도교육청은 2015년 10월부터 시민감사관을 포함한 감사팀 두 개를 꾸려 2년 가까이 사립 유치원 특정감사를 실시해왔다(오른쪽 상자 기사 참조). 지난 8월까지 부당 지출된 41억여 원을 보전 조치하고 원장 등 14명을 검찰에 고발했다. 유치원 돈으로 자기 집의 종합부동산세를 내거나 해외여행을 다녀오는 정도는 양반이었다. 어떤 곳은 원장 자녀의 애견용품, 성인용품 구입도 유치원 예산으로 집행했다. 설립자와 원장은 매달 1000만원이 넘는 급여를 받으면서 아이들 급식 재료비에는 한 끼당 1000원을 쓴 유치원도 있었다. 친인척을 교직원으로 허위 등록해 인건비 지원금을 타내고, 원장이 사설 학원장을 겸직하면서 유치원 지원금을 학원에 빼돌리며, 특별활동과 교재비 착복을 위해 ‘페이퍼컴퍼니’를 만드는 등 각양각색의 불법행위가 적발됐다. 전체 1000개가 넘는 경기도 내 사립 유치원 가운데 70여 곳만 들여다본 결과가 이렇다.

ⓒ연합뉴스7월13일 경기도 수원시 장안구 경기도교육청 앞에서 경기도사립유치원연합회 회원들이 집회를 열었다.
경기도교육청의 특정감사에 사립 유치원들은 크게 반발했다. 경기도교육청 앞에서 연일 특정감사 반대 시위를 벌이고 직권남용·협박 등의 혐의로 이재정 경기도교육감과 감사관 등 3명을 검찰에 고발했다. 이들 논리에 따르면 ‘사립 유치원은 공적 자원이기 이전에 개인이 사비를 들여 설립하고 유지해온 사유재산이다. 사유재산을 통해 이득을 취하는 것은 소유자의 당연한 권리이다. 사유재산의 회계장부를 들추고 일일이 지적하는 교육청의 특정감사는 명백한 부당 감사요, 불법 감사이다’.

국공립 유치원 확대에 뿔내는 사립 유치원

이들은 관습에서 정당성을 찾는다. 경기도사립유치원연합회는 지난 6월1일 국민인수위원회에 ‘사립 유치원 감사를 2년 유예라도 해달라’는 내용의 진정서를 제출하면서 이렇게 주장했다. “사립 유치원 운영자의 다소 잘못된 운영 관행이 심어진 데에는 국가의 책임이 더 크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솔직히 ‘교육 사업을 하면 돈 번다’는 사고는 우리가 만든 이야기가 아닌 국가가 조장한 데에서 비롯된 이야기입니다. 비상식의 군사정권 시절의 일이었다고 이제 와서 국가가 나 몰라라 하는 것은 국가가 국민을 대하는 자세가 아닙니다.”

‘좋은 시절’은 지나갔다. 사립 유치원 운영자들 앞에 위기가 하나 더해졌다. 문재인 정부의 국공립 유치원 취학률 확대 정책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현재 24%인 국공립 유치원 취학률을 2020년 40%까지 늘리겠다고 약속했다. 지난 7월25일 사립 유치원 운영자들이 개최를 방해한 ‘제2차 유아교육발전 기본계획수립 정책 연구’ 세미나에서 바로 이 정책을 실현하기 위한 방안들이 논의될 예정이었다. 단설 유치원 신설과 병설 유치원 학급 증설 및 지원 강화, 공공형 사립 유치원 등 사립 유치원 운영 모델 다양화 방안 등이 정책 연구 초안에 담겨 있었다.

사립 유치원 운영자들은 국공립 유치원 확대 정책을 ‘불난 집에 부채질하기’로 받아들인다. “저출산으로 아동 수가 줄어드는 상황에서 국공립 유치원을 확대하는 것은 곧 사립 유치원 죽이기다(7월25일 한국유치원총연합회 성명).” 사립 유치원 운영자들로 구성된 한국유치원총연합회는 가뜩이나 점점 심해지는 사립 유치원 경영난을 호소하며 지난 몇 년간 정부에 지원 강화를 요구해왔다. “저출산으로 원아 모집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립 유치원을 지원하는 길이야말로 유아 공교육 실현이며, 유아 무상교육과 평등교육 취지에 맞게 사립 유치원도 공립 유치원과 똑같이 지원해달라.” 하지만 문재인 정부는 투명성이 보장되지 않은 사립 유치원에 무작정 지원을 늘리는 대신 국공립 시설을 확대하기로 방향을 잡았다. 기대를 배반당한 사립 유치원들은 정부의 유아교육 정책에 반대 목소리를 내고 있는 것이다.

‘지원은 하되 간섭은 말라’는 사립 유치원 운영자들의 바람과 지금 정부가 추진해나가는 ‘유아교육의 공교육화’의 길은 멀리 떨어져 있다. 접점을 찾을 수 있을까? 사립 유치원의 자율성과 유아 공교육 기관으로서의 공공성을 동시에 확보할 수 있는 여러 대안이 논의 중이기는 하다. 올해 서울시교육청이 도입한 ‘공영형 사립 유치원’도 그 대안 모델 가운데 하나이다.

하지만 지난해 연구 목적으로 사립 유치원 단체 관계자들을 다수 만나 면담한 최은영 육아정책연구소 연구위원은 “둘 사이 접점을 찾기까지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릴 것 같다”라고 말했다. 최 연구위원은 “사립 유치원들이 갑자기 투명성과 책무성을 요구받는 과정에서 변화에 대한 두려움이 워낙 크다. 조직력이 강한 사립 유치원 단체를 통해 소통하고 설득해나갈 필요가 있지만 단시간에 합의를 이끌어내기는 어려워 보인다”라고 말했다. 

기자명 변진경 기자 다른기사 보기 alm242@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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