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 조남진9월8일 언론노조 MBC본부와 KBS본부는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합동 파업 출정식을 열었다.
출정식을 앞두고 리허설을 하고 있는 김민식 MBC PD의 모습.

백수가 과로사 한다더니. 파업하니 더 바쁘다. 영화 〈공범자들〉 ‘관객과의 만남’을 위해 부산·대구·대전 찍고 광주·제주까지 전국 ‘로드쇼’ 다니다 목이 잠겼다. “김장겸은 물러나라”, 너무 열심히 외쳤나 보다.

9월4일 월요일, MBC 총파업 1일차. 오전 10시에 전국언론노조 MBC본부(이하 언론노조 MBC본부) 서울지부 총파업 출정식이 열렸다. 상암 MBC 본사 1층 로비가 언론노조 MBC본부 조합원들로 가득 찼다. 해직된 선배들도 왔다. 영화 〈공범자들〉로 흥행 감독의 반열에 오른 최승호 선배의 모습에 후배들이 환호한다. 언론노조 MBC본부 노래패 ‘노래사랑’이 무대에 올랐다. 부문별 막내들이 주축인데, 파업 이후 5년간 신입 사원 공채를 하지 않아 아직도 막내다. “이제 늙고 병들었지만, 다시 마이크를 잡고 춤을 추겠다”라는 너스레에 마냥 웃지만은 못했다. 2012년 파업 당시 뮤직비디오를 찍었던 ‘MBC 프리덤’을 다시 부른다. 지난 5년간, 내 이름으로 된 드라마를 못 만들었으니, 2012년에 찍은 파업 영상이 나의 가장 최근 연출작이다. ‘집에나 가, 김재철! 집에 갈 땐, 지하철!’이던 가사가 바뀌었다. ‘이제 금방, 김장철, 집에나 가, 김장겸!’

ⓒ시사IN 이명익9월4일 서울 마포구 상암동 MBC 사옥 앞에서 열린 총파업 출정식에 참가한 언론노조 MBC본부 조합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오후 2시, 언론노조 MBC본부 전국지부 총파업 출정식이 열렸다. 상경 투쟁을 위해 전국에서 달려온 조합원들 앞에 섰다.

“제게 예지몽이 있어 만약 이 장면을 1년 전 꿈에서 봤다면, 전국 노조 조합원들이 총파업에 나서는 모습을 봤다면, 잠에서 깨어 이랬을 거예요. ‘뭐 이런 개꿈이 다 있어.’ 170일 파업의 패배 이후, 지난 5년간 회사 측의 끈질긴 탄압에도 불구하고 끝끝내 살아남아, 이 기적 같은 싸움에 나서주신 여러분, 정말 고맙습니다.”

나는 두 번 다시 파업을 못할 줄 알았다. 핵심 조합원들은 다 현업에서 쫓겨났다. 나만 해도 주조정실 MD다. MD는 파업 열외 인력이다. 파업을 하면 한창 드라마를 만들고 있는 후배들이 제일 피해를 보는데, 주조정실에 있는 내가 어떻게 파업을 하자고 나설 수 있을까. 아나운서도 마찬가지다. 쫓겨나 변방에 있는 선배 아나운서들이 현재 프로그램 출연 중인 어린 후배들에게 파업을 독려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뉴스데스크〉 기자 중 90%가 경력 기자와 비조합원이다. 기자와 PD들이 다 쫓겨나서 파업을 해도 방송 공백이 없다. 그렇기에 파업을 해도 효과가 없어서 엄두도 못 내었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이렇게 한자리에 모여 총파업을 결의하고 있다. 〈PD수첩〉이 멈췄고, 라디오 프로그램에는 음악만 나가고 있다. 이렇게 센 규모의 싸움이 일어날 줄 몰랐다. 난 아직도 현실이 믿기지 않는다.

오후 8시에는 ‘스브스 뉴스’를 녹화하러 SBS에 갔다. MBC PD인데, 정작 MBC에서 연출은 못하고 SBS에서 출연을 하고 있다. 카메라 앞에서 이야기할 때마다 매번 긴장되지만, 오늘도 김장겸 사장의 ‘업적’을 칭송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9월5일 화요일, 밤 10시에 〈공범자들〉 ‘관객과의 대화’를 하러 경기도 분당 메가박스에 갔다. 입사 동기인 신동진 아나운서가 관객과의 대화를 진행했는데, 마이크를 한번 잡으니 놓지를 않는다. 명색이 관객과의 대화인데 관객 질문은 받지 않고 마이크를 독점하고 있다. 마이크를 잡은 게 6년 만이라 마이크의 감촉이 너무 반갑다는 그의 말에 분위기가 숙연해졌다. 2012년 파업이 끝나고 아나운서국 친목 대회에서 피구를 했는데, 본부장이 던져준 공을 받아 상대 팀에 있던 배현진 아나운서를 맞혔단다. 객석에서 탄식이 터져 나왔다. 최승호 감독이 옆에서 머리를 흔들었다. “왜 그랬어!” “네가 그냥 맞았어야지.” 일주일 후 그는 주조정실 MD로 발령이 났다. 웃으면서 이야기하지만 당시 그는 얼마나 힘들었을까?

“우리는 모두 함께 투쟁하는 동등한 조합원”

지난 5년, 우리는 공포 영화 속 주인공처럼 살았다. 영화 〈나는 네가 지난여름에 한 일을 알고 있다〉의 주인공 같았다. ‘유배지’ 발령이 나고 저성과자 교육 명령이 떨어질 때마다 머릿속 기억을 뒤졌다. ‘내가 언제 누구에게 어떤 잘못을 한 걸까?’ 이번 파업, 꼭 이겨야 한다. 이들을 다시 방송 제작 현장으로 돌려보내야 한다. 이 영화의 마무리는 반드시 해피엔딩이어야 한다.

9월6일 수요일 아침, 2012년 노동조합 집행부 동료들과 함께, 집에서 요양하고 있는 이용마 기자를 찾아갔다. 많이 여위었지만 눈빛은 맑고 표정은 밝았다. 동기 용마에게는 늘 빚진 마음이다. 2012년 170일 파업을 마무리할 때, 안팎에서 비난이 쏟아졌다. 해고자들을 놔두고 어떻게 복귀한단 말이냐. 복귀했더니 회사는 우리를 유배지로 쫓아냈다. 해고된 그도, 변방을 떠도는 우리도, 볼 때마다 서로 미안하기만 했다. 

김연국 언론노조 MBC본부장은 이렇게 말했다. “9월4일 0시부로 우리는 모두 함께 투쟁하는 동등한 조합원”이라고. “경력 사원과 기존 공채 사원, 시니어와 주니어의 거리도, 유배자, 징계자, 그리고 해직자들에 대한 부채감도 그 시간부로 없는 것”이라고. 이번 싸움, 서로에게 미안하고 빚진 마음을 털어내는 멋진 싸움이 되기를, 마음의 상처를 씻어내는 힐링의 시간이 되기를 빈다.

2012년 170일 파업을 통해 절절히 느꼈다. 파업은 정말 괴롭고 힘들다. 40~50대 가장들이 월급을 포기하고, 생계를 포기하고 살아야 한다. 방송 만드는 낙으로 사는 기자·PD·방송인들이 보도와 제작에서 손을 놓고, 텔레비전 화면으로 시청자를 만나던 아나운서들이 거리에서 전단을 나누며 시민들을 만나는 시간이다. 지난 5년, 우리는 MBC 뉴스를 보며 늘 부끄러웠다. 이제 이 부끄러움을 끝내야 할 시간이다.

이 글은 오래 쓰고 싶지 않다. ‘파업 일기’ 연재 요청을 받았을 때, 담당 기자에게 한 말이다. “딱 한 회만 쓰고 싶은 글입니다.” 원고를 마감하는 지금 나의 소망은 파업 일기 첫 회가 곧 마지막 회가 되는 것이다. 김장겸 사장이 나가야 유배 중인 PD·기자·아나운서·방송인들이 제자리로 돌아가고 공영방송이 정상화된다.

기자명 김민식 (MBC PD)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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