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6일, 소성리로 가는 길은 유달리 길었다. 이날 오후 국방부는 9월7일 사드 발사대 4기를 경북 성주 롯데골프장에 추가 배치한다고 발표했다. 경찰은 경북 성주 소성리 인근 진입도로를 막고 민간 차량 통제에 들어갔다. 소성리로 가는 913번 국도에서 만난 한 김천 시민은 “차로 못 가게 하니 걸어가려고 한다. 여기서 두 시간 정도 걸린다. 근무 중 사드 배치 뉴스를 봤는데 마음이 너무 아팠다. 내일은 연차를 냈다”라고 말했다. 소성리 마을회관에서 3㎞ 떨어진 용소길 어귀부터는 취재진 차량도 진입이 금지되었다. 가로등도 없는 시골길, 경찰이 흔드는 야광봉 불빛에 의지해 50여 분을 걸었다. 방패, 헬멧, 소화기 등을 내놓고 휴식을 취하는 경찰 병력이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 70여 가구가 사는 소성리에 경찰 병력 8000명이 투입되었다. 밤 11시, 성주 주민과 시민단체 회원 400여 명이 롯데골프장으로 올라가는 길목인 소성리 마을회관 앞 도로를 메웠다. 소성리 할머니 10여 명도 연좌시위대 속에 자리를 잡았다. 사드 반대 집회 때마다 앞장서 소성리의 얼굴이 된 도금연 할머니(80)는 쌀쌀해진 날씨 탓에 보라색 파카를 걸쳤다. ‘사드 가고 평화 오라’ 문구가 새겨진 조끼를 입은 장경순 할머니(85)는 ‘사드 배치 반대한다’라고 쓰인 피켓을 꼭 끌어안았다. 농성자들이 세워놓은 트럭과 승용차가 바리케이드처럼 도로를 막았다. 농성 대오 앞뒤로 무장한 경찰 병력이 대기했다.

 

ⓒ시사IN 이명익9월7일 사드(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 발사대 4기 추가 배치를 위해 경찰이 사드 배치 반대 집회 참가자들을 해산시키고 있다.

성주읍 주민 이민수씨(38)가 마을회관 마당 한쪽에서 담배를 태웠다. 이씨는 지난해 7월15일 성주를 방문한 황교안 당시 국무총리가 탄 차량에 사고를 당했다. 그날 황 총리는 사드 배치를 설득하러 성주를 찾았다가 성난 주민에게 둘러싸여 도망치듯 떠났다. 황 총리를 태운 승용차가 면담을 요구하기 위해 기다리던 이씨의 차를 들이받고 달아났다. 차에는 이씨의 아내와 세 자녀가 타고 있었다. 외상은 없었지만 가족은 트라우마에 시달렸다. 경찰은 공무집행 방해 혐의로 이씨를 수사했다. 압수수색도 당했다. 억울한 마음에 시작했던 사드 반대 투쟁은 일상이 되었다. 사드 투쟁으로 직장 생활이 어려워진 이씨는 이제 참외 농사를 짓는다. 박근혜 정부가 사드 배치를 결정한 과정은 수수께끼로 남아 있지만, 그 결정이 성주 주민들의 삶에 남긴 흔적은 뚜렷했다.

자정을 기해 해산 작전이 시작되었다. 경찰 병력은 앞뒤에서 연좌시위대를 조여왔다. 경찰에 밀린 시민들 사이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소성리 할머니들은 ‘위험하니 마을회관으로 들어가라’는 권유를 뿌리쳤다. 할머니들은 웅크리고 앉아 사드가 들어오는 광경을 지켜봤다.

 

ⓒ시사IN 이명익9월6일 사드 발사대 추가 배치를 앞두고 마을 주민들이 사드 배치 반대 집회를 하고 있다.

이날 밤, 의료진을 찾는 다급한 외침이 수백 번 반복되었다. 경찰이 임시 진료소로 이용하던 천막까지 들이닥치자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소속 의사로 현장에 나와 있던 노태맹 성주효요양병원 원장이 의료 도구를 마을회관으로 황급히 옮겼다. 노 원장이 돌본 응급환자는 30여 명에 이르렀다. 그중 4명은 구급차에 실려 응급실로 향했다. 소성리 상황실은 부상자 50명이 발생했다고 집계했다.

새벽 3시가 지나자 진압 강도가 더 거세졌다. 경찰 병력은 농성자들을 한 사람씩 끄집어냈다. 원불교 성직자와 천주교 신부, 개신교 목사가 연좌농성을 하는 상황을 고려해 경찰은 ‘종교케어팀’을 따로 운영했다. 종교의식에 사용되는 제구를 챙기는 걸로 배려는 끝이었다. 한복을 입은 원불교 여성 교무(원불교 성직자)들이 무장경찰 손에 끌려 나갔다. 시위대 차량에서 다급한 목소리의 방송이 이어졌다. “이것이 문재인 정부가 말하는 절차적 정당성입니까!” 

임순분(64) 소성리 부녀회장은 연좌시위대에 마지막까지 남았다. 사드가 들어서는 롯데골프장 인근에는 먼저 간 남편의 묘와 감나무 밭이 있다. 지난봄 임씨는 골프장으로 올라가는 길목을 막은 경찰과 매일같이 실랑이를 벌였다. 경찰이 통제구역에 속한 땅 주인에게 발급하는 출입증을 요구할 때마다 임 부녀회장은 “내 땅에 들어가는데 출입증이 왜 필요합니꺼”라며 거부했다. 사드 발사대 2기와 X밴드 레이더가 배치되던 지난 4월26일에 임씨는 입 부위를 경찰에 가격당하고 실신했다. 그사이 정권은 바뀌었지만, 9월7일 밤 경찰은 또다시 임씨 코앞까지 들이닥쳤다.

새벽 5시30분 경찰은 농성자 400여 명을 마을회관 마당 쪽으로 몰아넣는 데 성공했다. 농성자들이 세워놓은 차량까지 레커차로 들려나가자 진압 작전은 완료되었다. 

 

ⓒ시사IN 이명익사드 관련 장비를 실은 미군 차량이 소성리 마을회관 앞을 지나는 모습.

9월7일 아침 8시 사드 발사대를 실은 미군 트럭이 소성리 마을회관 앞 도로에 진입했다. 소성리 할머니들이 일제히 발을 구르며 울음을 터뜨렸다. “막아주세요, 막아주세요.” “아이고, 원통하고 분해서 어찌할꼬.” 마을회관 마당에 빼곡히 찬 농성자들 사이에서 눈물과 탄식과 고함이 뒤섞였다. 바닥에 주저앉아 눈물을 훔치던 장경순 할머니가 경찰병력에게 달려들었다. 등이 곱은 장 할머니가 경찰 방패를 잡아 뜯었다. 그사이 공사 장비를 실은 미군 차량 20여 대가 줄줄이 롯데골프장으로 올라갔다.

‘평화나비 원정대’ 버스로 전국 돌며 투쟁 

오전 10시 마을회관 마당에서 기자회견이 열렸다. 농성 천막이 지난밤 철거돼 바닥만 남은 자리에 임순분 소성리 부녀회장이 올랐다. 약한 모습을 보이는 법이 없던 임씨가 마이크를 잡고 울먹였다. “정말로 긴 밤이었습니다. 참담한 밤이었습니다. 이제 소성리 주민들은 무엇을 해야 할까요. 등이 굽어서 휘어진 허리를 가지고 지팡이에 의지해서 매일 이 앞 도로를 지켰습니다. 혹시라도 젊은 사람들이 밭에 가서 오지 않으면 할머니들이 메웠습니다. 그렇게 이 자리를 지키고 지켜왔습니다. 사드 발사대 4기를 숨긴 사실에 문재인 대통령이 격노했을 때 환호성을 질렀습니다. 우리가 믿은 문재인 대통령이 일을 제대로 하는구나. 결과는 이같이 참담한 꼴입니다. ‘박근혜 사드는 나쁜 사드, 문재인 사드는 착한 사드’라고 합니다. 착한 사드의 결과가 이것입니까?”

 

ⓒ시사IN 이명익9월7일 사드 발사대 추가 배치가 끝난 뒤 소성리 마을 주민 장경순 할머니가 텃밭을 가꾸고 있다.

답을 찾지 못해도 삶은 계속된다. 밤을 꼬박 새우고 집에 돌아간 장경순 할머니는 어제 그랬듯 마당 텃밭을 돌봤다. 호박 넝쿨을 살피고 알맞게 자란 애호박 한 덩이를 땄다. 이날 밤 성주읍 평화나비 광장에서는 422번째 촛불집회가 열렸다. 사드배치반대 성주투쟁위원회는 ‘평화나비 원정대’ 버스를 공개했다. 빨간 관광버스에 파란 나비 스티커를 붙인 이 버스를 타고 전국을 돌며 사드 반대 투쟁을 계속해 나가겠다는 계획이다. 광장에 모인 주민들이 외친 구호는 이날도 똑같았다. “사드 가고 평화 오라.”

 

기자명 성주/글·김연희, 사진·이명익 기자 다른기사 보기 uni@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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