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걀 먹으려고?” 동네 친구랑 장을 보다가 내가 달걀을 담았더니 친구가 묻는다. ‘살충제 달걀’ 사건이 터진 다음 날이었다.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매한가지인데 운명에 맡길래, 그랬다. 정말이지 나는 각오가 되어 있다.
이번이 처음이 아니지 않은가. 라면을 공업용 기름으로 튀겼다고 해서 난리가 난 ‘라면 우지 파동’은 기억도 가물하다. 내 아이 죽이는 과자의 공포를 아십니까, 설탕 중독이 건강을 해친다, 우유 알고 먹어라, 밀가루를 안 먹으니 살이 빠지고 아기 피부가 됐다더라, 닭 키우는 거 보면 치킨 못 먹는다 등등 온갖 경고성 메시지는 끊임없이 유포됐다. 한 시간짜리 다큐멘터리나 단행본 분량으로 제시되는 ‘위기의 밥상’ 실상을 듣고 나면 심란했지만 유해 식품을 뺀 안전 식단을 꾸려갈 시간도 돈도 여력도 안 되니까 잠자코 먹었다.
그 와중에 의문과 울화가 일었다. 사람 몸에 그토록 해로운 걸 왜 시중에서 팔지? 누구 먹으라고? 음식 문화는 본디 계급성과 밀접하다. 서울 목동에 살 때 유기농 매장이 단지 근처에 세 군데나 있었는데 오후에 가면 물건이 없었다. 있는 집 자식들은 양질의 음식을 먹지만 정보, 자금, 시간이 부족한 계층은 정크푸드를 택하게 된다. 수입 농산물로 만든 값싼 음식을 파는 편의점과 패스트푸드점으로 흘러가도록 사회시스템의 선택 경로가 만들어졌다. 이 세상은 가진 자들이 차린 밥상, 없는 자들을 죽지 않을 만큼 먹여서 살려주고 죽기 직전까지 뽑아먹는 거대한 식탁 같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나는 누구와 무얼 어떻게 먹고 살아야 할까. 매 끼니 유기농 식사가 가능한 부자도 아니고, 농사짓고 닭 키워 자급하는 농민도 아니고, 삼각김밥과 라면으로 끼니 때우는 저소득층도 아닌 어정쩡한 내게 먹을거리는 삶으로 풀어야 할 정치적 과제로 다가오곤 한다. 유기농을 이용해도,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아무거나 먹어도 마음 한구석이 켕겼다. 대충 먹고 눈감았다. 알면 괴로우니까 생태 관련 책은 피하고, 〈잡식 가족의 딜레마〉 〈옥자〉 같은 영화는 안 보고 버텼다. 그러다가 〈자연에서 읽다〉를 읽고 말았다.
“암탉 한 마리당 A4 용지의 절반이 채 안 되는 공간이 주어집니다. 이런 배터리 닭장을 8단까지 쌓아 건물 한 동에 10만 마리까지 수용하는 과밀한 사육장도 우리나라에 많습니다. 약물 없인 버티기 어려운 과밀 환경 속에서 암탉들은 인공의 빛 아래 산란촉진제와 항생제 등을 투여 받으며 한 몸뚱이가 부서지도록 알을 뽑아내지요(129쪽).”
저자는 십수년간 책을 만든 편집자 출신으로 시골로 거처를 옮겨 안빈낙도의 삶을 산다. 풀, 새, 나무, 자연밥상 이야기가 멋들어지게 펼쳐지는데, 독서 내공이 빚은 수려한 문장력과 영혼을 정화하는 고고한 인용문에 매혹되어 책장이 막 넘어간다. 어쩔 수 없이 알아버린, 살충제 달걀의 예고편이 되어버린 산란계 이야기는 “닭뿐 아니라 소와 돼지, 젖소 등의 동물에게서 사람들이 어떻게 달걀과 고기와 젖을 ‘뽑아내는지’ 그 실상(131쪽)”을 차분히 들려준다.
이제부터 고기는 ‘고통의 고기’
그리고 무능한 도시주의자이자 애매한 육식주의자이며 마음만 생태주의자인 내 마음을 아는 듯 실행 매뉴얼을 내놓는다.
“‘고통의 고기’를 대량 소비하는 육식의 습관을 조금씩이라도 바꿔나가는 일, 동물에게 극심한 고통을 가하는 공장식 사육 방식에 대해 문제의식을 갖는 일, 달걀 하나를 사더라도 좀 더 건강한 환경에서 생산된 달걀을 선택함으로써 닭들의 사육 환경을 개선시키는 일(133쪽)”이 사소해 보이지만 지금 할 수 있는 작은 일이고 ‘꼭 필요한 연민’이라는 것이다.
나는 저것이 왜 사소한가 한참 생각했다. 습관 바꾸는 건 생명에 위협을 느껴야 가능하고, 문제의식을 가지고 환경을 개선하는 건 직업이어야 될까 말까다. 그래서 난 내 식대로 변화의 단서를 챙겼다. 이제부터 고기는 ‘고통의 고기’다. 고통의 삼겹살, 고통의 장조림, 고통의 달걀이라고 말하면 그냥 고기일 때보다는 덜 먹을 거 같다. 이건 섣부른 연민이 아닌 꼭 필요한 연민, 식단의 개선이 아닌 세상의 개선을 위한 사소한 몸부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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