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빌딩가 사무실에 있는 텔레비전 화면이 흔들렸다. 텔레비전이 고장 난 건 아니었다. 전파가 빌딩에 반사돼 발생하는 고스트 현상이었다. 어느 날 한 페인트 회사의 과학자가 ‘페라이트’라는 산화철을 주요 성분으로 하는 세라믹이 들어간 도료를 개발했다. 페라이트에는 자력이 있다. 페라이트가 포함된 도료를 빌딩 벽면에 바르면 전파를 흡수한다. 이 도료를 발랐더니 텔레비전 화면이 더 이상 흔들리지 않았다. 이 획기적인 도료는 10년 뒤 엉뚱한 데 쓰였다. 레이더에 잡히는 않는 전투기, 미군 스텔스기 도료로 사용된 것이다(마스카와 도시히데 〈과학자는 전쟁에서 무엇을 했나〉, 2017).

과학은 인류에게 많은 선물을 안겼고 동시에 재앙도 안겼다. 과학이 안긴 가장 큰 재앙은 핵폭탄이다. 일본에 투하된 핵폭탄을 만든 ‘맨해튼 프로젝트’에는 아인슈타인을 비롯한 당대의 과학자들이 관여했다. 과학자들은 마지막 순간에 핵폭탄 사용을 반대했다. 정책 결정론자들이 바라는 그들의 역할은 ‘개발’에 국한되었다. 핵폭탄이 투하되었다는 소식을 접한 아인슈타인은 “도대체 왜 이런 일이!”라며 탄식했다. 그는 “핵폭탄으로 일본에 상처를 주었다”라며 사죄의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냉전 시기, 과학자들의 동원이 이어졌다. 베트남 전쟁 당시 미군은 병사들에게 ‘베트콩’을 몇 명이나 사살했는지 보고하도록 했다. 병사들이 부풀려 보고하면서 숫자가 정확하지 않았다. 미군은 사살한 베트콩의 왼쪽 귀를 잘라 가져오게 했다. 이 아이디어를 낸 이가 바로 미국 국방부가 비밀리에 운영한 프로그램인 ‘제이슨’에 참여한 한 과학자였다. 제이슨은 어떻게 하면 미군의 희생을 줄이고 베트남 사람들을 죽일 수 있을까를 연구한 제2의 맨해튼 프로젝트였다.

북한이 6차 핵실험을 했다. 성주에서는 장경순 할머니가 꺼이꺼이 우는 가운데 사드가 배치되었다. 북핵과 사드를 가능하게 한 과학자들의 책무를 생각한다. 그들은 물론 자신의 개발을 재앙이 아닌 선물로 여기겠지만.

체제가 다른 사회를 비판할 때 그나마 말이 통하려면 그 사회가 지향하는 기준을 잣대로 삼아야 한다. ‘국가는 로동자, 농민, 군인, 근로인테리를 비롯한 근로인민의 리익을 옹호하며 인권을 존중하고 보호한다(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헌법 제8조).’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대한민국 헌법 제10조).’ 유명무실할지라도 양쪽 다 헌법에 이렇게 규정되어 있다. 과연 북핵과 사드가 남북 사회 구성원들의 인권과 존엄을 보장하는 데 도움이 될까?

이번 호 커버스토리로 북핵을 둘러싼 한국·일본·중국·미국의 셈법을 담았다. 특히 오랜 기간 북한 사회를 탐구해온 남문희 기자의 기사는 다른 언론에서는 접할 수 없는 시각이다. 일독을 권한다.

기자명 고제규 편집국장 다른기사 보기 unjusa@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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