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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이 곧 정의? 정의가 힘이 되어야!

김현석 (KBS 기자) webmaster@sisain.co.kr 2017년 09월 07일 목요일 제52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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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에 가족과 영화 <공범자들>을 보았다. 사실 내키지는 않았다. 경찰에게 얻어맞아 널브러져 있는 장면을 아내와 아들들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영화를 보는 내내 힘들었다. 아내와 아들 모두 힘들어하는 것 같았다. 지난 9년 동안 가족들도 정말 마음고생 많았다.
2008년 8월8일, 정연주 사장을 몰아내기 위해 경찰이 KBS에 진입한 그날 이후 나는 ‘집안의 문제아’가 되었다. 언제 사고 칠지 모르는 ‘철없는 아이’ 말이다. 앞니가 깨져 집에 오더니, 이번에는 갈비뼈가 부서졌다. 참 문약한 가장이었다. 게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회사에서 파면을 당했다. 난감한 순간이었다. “‘해직 기자’는 어감이라도 괜찮은데 ‘파면 기자’가 뭐냐?”라며 결국 아내는 울먹였다.

기자협회 제작 거부를 결의하던 총회 자리. 나는 적진에 홀로 남겨진 ‘라이언 일병’의 심정이었다. 누군가 구하러 와주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 그러나 마음 한편에서는 나를 구하기 위해 더 큰 희생이 생길 수 있다는 걱정. ‘마음이 무겁다’는 문장은 수사법이 아니었다. 정말 물리적으로 무거웠다. 그날 총회 자리에 있던 기자들의 표정은 결연했다. 김현석·성재호를 구하는 게 목적이 아니었다. ‘이 사태를 그대로 두면 누구나 같은 처지를 당할 수 있다. 그래서 꼭 막아야 한다’는 열기였다. 결국 제작 거부 하루 만에 회사 측은 완전히 굴복했다. 파면은 취소되고 정직 처분이 내려졌다.

ⓒ영화 <공범자들>·뉴스타파 제공
2008년 8월8일 정연주 사장 해임 이사회를 막으려는 김현석 기자를 사복 경찰들이 끌어내고 있다.
넉 달의 정직 기간. KBS 당시 노조는 임금 보전을 거부했다. 노조가 주도한 투쟁이 아니었다는 이유였다. 정직 기간이 끝나고 원래 부서인 팀으로 출근했다. 기획 프로그램을 만드는 부서였다. 나름 성실히 다녔다. 그래도 가족들은 늘 불안해했다. 어느 날 술을 많이 마셨다. 속절없이 무너져가는 KBS를 보며 술을 마시니 위장보다 가슴이 더 아팠다. 술에 취해 집에 들어오니 아내가 다가왔다. “무슨 일 있었어? 왜 이렇게 많이 마셨어?”라고 물었다. 철없는 아들들은 “아빠 또 잘린 거 아니야?”라며 참견해댔다. 아무 일 없었다고 해도 통 믿지 않는 분위기였다. 취해서 누워 있는데 아들놈들이 와서 큰소리쳤다. “아빠 회사 안 잘렸네. 검색해봐도 그런 기사 없어.” 언제 내가 잘려서 속상해 술 마셨다고 말한 것도 아닌데, 괜히 화내며 나가버렸다. 나, 문제아 맞다.

그러던 중 또 사고를 쳤다. 이명박 정권 들어 부당하게 해직된 사람들 문제를 다루겠다는 기획안을 올렸다. 12월31일 일제고사를 반대하다 해직된 전교조 교사 재판을 취재하고 회사로 돌아왔다. 그런데 오후에 갑자기 인사 명단에 내 이름이 올랐다. 다음 날인 1월1일부터 춘천으로 가라는 것이었다. 암담했다. 본부장이 잠깐 보자고 했다. 한때는 친했던 사람이다. “좀 조용히 있지. 왜 자꾸 문제를 만드냐?” 나오는데, 국장이 잠깐 보자고 했다. 정연주 전 사장 때 잘나갔고 이명박 정권 때도 잘나가던 사람이었다. 그가 내 손을 꼭 잡더니 말했다. “힘이 곧 정의인 거다. 무슨 말인지 이해할 때가 있을 거다.” 내가 저들에게서 들어본 말 가운데 가장 솔직했다. 혹시 주변에서 중언부언하며 이해 안 가는 말을 하는 사람이 있다면 의심해보는 게 좋다. 속마음은 바로 저거인 사람이 많다.

1년10개월간 춘천 생활을 마치고 다시 서울로 왔다. 또 사고를 치고 말았다.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KBS 새노조) 위원장을 하겠다고 나선 거다. 한때 ‘라이언 일병’이었던 사람으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거부할 수 없었다. 빚을 갚아야 했다. 위원장이 되자마자 파업이 시작됐다. 파업으로 이길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은 애초부터 별로 없었다. 너무나 부끄러워서 시작한 싸움이었다. 안 할 수 없어서 시작한 싸움이었다. 2012년 95일 동안 진행된 파업. 우리 조합원들은 정말 열정적으로 싸웠다. 그래도 우리는 결국 졌다. 조금만 더 잘 싸웠으면 하는 회한이 남는다. 위원장으로서는 특히 그렇다. 하지만 힘이 부족해서 진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싸워야 할 때 우리는 싸웠다. 회피하고 모른 척하지 않았다.

40대 초반에 시작한 싸움이었는데, 이제 50대 초반이 되었다. 그리고 다시 KBS는 제작 거부와 파업에 들어갔다. KBS 내 공범자, 아니 지난 9년 동안 KBS 뉴스를 망친 고대영 사장을 쫓아내기 위한 파업이다. 주변에 MBC는 왜 파업하는지 알겠는데, KBS는 잘 모르겠다는 사람이 많다. 물론 우리는 해직자도 없고, 아이스링크 관리하는 기자와 PD도 없다. 그러나 단 하루만이라도 KBS 9시 뉴스를 봐달라고 말하고 싶다. 수신료를 낼 가치가 있는 뉴스인지 말이다. 우리가 싸우는 모든 이유가 거기에 담겨 있다. 제대로 된 공영방송을 만들고 싶다. KBS를 국민 편으로 돌려놓고 싶다. 지난 대선 때 문재인 캠프 주변을 기웃거렸다는 그 국장에게 말해주고 싶다. “힘이 곧 정의가 아니라 정의가 힘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런 세상이 될 때까지 싸움을 멈출 수 없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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