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어난 체중, 높아진 혈압, 줄어든 숙면. 텔레비전 편성부로 부당 전보된 이후에 일어난 신상의 작은 변화들이다. 낮과 밤을 바꿔 출근하니 생체리듬이 일상의 그것과 달라졌기 때문이다. 자리를 비우는 일은 생리 현상을 해결할 때로 제한된다. 그럴 때도 착신 전환해놓은 전화는 챙겨야 한다. 속보 방송 등의 돌발 상황에 대비해야 하기 때문이다. 내가 지금 일하는 곳은 텔레비전 주조정실이다. MBC에서 나가는 모든 프로그램이 여기를 통해 송출된다. 맡은 일은 MD(Master Director), 즉 생방송의 제작 시간을 점검해 시보를 맞추고 프로그램 안내 흘림 자막을 내는 일이다. 20여 년 동안 마이크 앞에서 카메라를 바라보며 방송하다 온종일 방송을 모니터하는 일을 하고 있는 셈이다. 나는 어쩌다 여기에 있는 것일까. 신상의 큰 변화는 어떻게 일어난 것일까.

2012년 1월 공정방송을 위한 파업이 시작되었다. 파업 100일을 넘어서며 회사 측이 창사 이래 처음으로 대규모 대기발령을 냈다. 이 명단에 포함된 뒤 이른바 ‘징계 3종 세트’를 받았다. 대기발령, 정직 3개월, 교육발령 3개월에 또 3개월 연장. ‘대기만성(大器晩成)하라는 대기발령’ ‘정직(正直)한 아나운서에게 내린 정직(停職)’ ‘공정방송을 위한 폭넓은 교육 기회 제공’이라는 덕담인지 악담인지 모를 말을 피징계자끼리 헛웃음 지으며 주고받았다.
 

강재형 (MBC 아나운서)

‘신천교육대’로 불린 부당 교육 대상 96명 가운데 아나운서는 9명, 교육 연장 발령 연인원으로 따지면 16명이다. ‘신천교육대 동창’ 아나운서 중에 3명(김정근·최현정·김경화)은 퇴사했고, 4명은 여전히 부당 전보 상태이다. 하루는 신천교육대로 아나운서 후배들이 찾아왔다. 모처럼 정겹게 저녁을 먹은 이튿날 임원회의에서, ‘후배들 불러 밥 먹는다’며 ‘단속 강화 방안’을 논의했다는 얘기를 들었다. 회사가 직원을 사찰한다는 얘기는 소문으로 그치는 게 아니었다. 업무 배치는 직무보다 거주지를 따져 원거리로 발령했다는 풍문도 사실인 듯했다. 일산 거주자는 용인 세트장으로, 성남 거주자는 일산드림센터로 출근해야 했으니 말이다.

2013년 4월17일, 새내기의 첫 출근 때보다 더 설렜다. 446일 만의 아나운서국 복귀였기 때문일 것이다. ‘내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많았지만 할 일은 제한되었다. 배당된 업무는 〈아침종합뉴스〉를 비롯한 라디오 뉴스. 오랜만에 하는 뉴스가 쉽지 않았다. ‘감’이 떨어져서가 아니었다. 비문(非文)이 많고 잘 읽히지 않는 문장이 지뢰처럼 널려 있었다. 문장을 다듬고 호흡에 맞춰 기사를 손보는 일이 예전보다 부쩍 많아졌다. 어떤 기사는 무슨 내용인지 파악하기 힘들었다. 기본을 갖추지 못한 기사가 방송용 뉴스로 편집되어 출고된 것이다. ‘(문장) 이상한 기사가 많아졌다’는 내 푸념에 파업에 참여하지 않은 선배가 한숨을 내쉬며 공감했다. 내용을 파악하기 힘든 꼭지를 빼고 뉴스를 한 적이 여러 차례였다. 특정 기자가 쓴 기사에 ‘이상한 기사’가 유독 많았다. 파업 기간에 채용한 기자들이었다. 기사 하나 제대로 쓰지 못하는 기자가 주축이 되어 만드는 ‘MBC 뉴스’는 공정성 이전에 기본이 결여되어 있었다.

2013년 12월10일 늦은 오후에 ‘편성국 전보 발령’이 났다. 아나운서 국장은 일찌감치 자리를 비운 상태였다. 사전 통보? 일언반구도 없었다. 퇴근길 엘리베이터에서 우연히 마주친 편성국장에게 내가 할 일이 무엇인지 물었다. ‘강재형씨가 오는 걸 몰랐다’며 말문을 연 그는 혼잣말처럼 ‘MD를 해야…’라며 말꼬리를 흐렸다. 그렇게 편성 PD 노릇을 하게 된 며칠 뒤, 아나운서연합회가 시상하는 ‘2013 아나운서대상’을 받았다. 아나운서 동료들이 나를 추어올릴 때, 회사는 내게서 마이크를 빼앗아간 것이다. 몇 달 뒤, 아나운서연합회장을 지낸 신동진 아나운서가 MD 동료가 되었다. 그리고 얼마 뒤, 경인지사 등을 전전하던 김상호 아나운서가 MD로 왔다. 그는 지금도 DMB 주조정실에서 ‘이웃 MD’로 지내고 있다.

주조정실 전·현직 MD의 면면은 화려하다. 황우석 사태를 다룬 〈PD수첩〉의 한학수 PD, 해고무효 판결로 복직한 전 노조위원장 이근행 PD, 노조위원장이었던 조능희 PD, 〈기후의 반란〉을 비롯해 다큐멘터리 여럿을 연출한 김종우 PD, ‘시청률 23%’를 기록한 〈여왕의 꽃〉 감독 김민식 PD(요즘은 ‘김장겸은 물러가라’ 동영상으로 더 유명하다). 경영진은 스타급 PD들과 아나운서를 위리안치하기에 주조정실만 한 곳이 없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인적 교류가 거의 없는, 방송사 안의 또 다른 보안구역이기 때문이다.

김재철 전 사장 체제 이후 시작된 MBC의 경쟁력 추락은 ‘170일 파업’으로도 막을 수 없었다. 그 이후 지금까지 아나운서 12명이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둥지를 떠났다. 아나운서국 밖에서 그들의 ‘사직 소식’을 듣는 건 형언하기 어려운 아픔이었다. 누구는 주조정실까지 찾아와 눈물을 찍어냈고, ‘전화로 말씀드려 죄송하다’며 울먹이는 이도 있었다. A 아나운서는 ‘공포정치를 견디기 힘들었다’고 했고, B 아나운서는 ‘어제 사직서를 냈는데 오늘 아침 임원회의에서 수리됐다’며 허탈하게 웃었다. C 아나운서는 ‘회사를 그만둔 뒤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면서도 ‘여태 (특정인이 등장하는) 악몽을 꾼다’고 했다.

방송인의 본령을 지키려 분투하는 아나운서의 빈자리가 어떤 사람에게는 ‘기회의 땅’이 된다. ‘기회의 땅’에서 도드라진 사람이 프리랜서 김성주씨다. 2012년 런던올림픽 메인 캐스터를 발판으로 친정에 ‘안착’한 뒤 예능과 특집, 스포츠를 오가며 전성기를 누리고 있다. 이른바 ‘배신남매’의 한 명인 배현진 앵커는 2012년부터 지금까지 ‘최장기 앵커’를 하고 있다. 다른 한 명인 신동호 아나운서 국장은 아나운서협회를 탈퇴한 뒤 2013년부터 ‘최장기 국장’ 자리를 지키고 있다. 거기에 나는 ‘최장기 MD’ 기록을 더한다. 2013년 12월에 아나운서로는 첫 MD가 된 이후 4년째를 보내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이런 ‘최장기 기록’이 그칠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권력과 허명(虛名) 따위에 눈이 먼 사람이 판치는 세상은 오래가지 못하는 까닭이다.

 

기자명 강재형 (MBC 아나운서)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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