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년 만의 이사를 앞둔 요즘, 그동안 쌓인 짐들을 처분하는 데 골몰하고 있다. 왜 이토록 쓸데없는 걸 많이 모았는지 기가 질릴 정도로 잡동사니 천지다. 미련 없이 버리면서 묘한 쾌감을 느끼는 한편, 어떤 물건은 분리수거장까지 들고 갔다가 차마 버리지 못하고 다시 갖고 오곤 한다. 버리는 순간, 물건에 서린 추억마저 함께 떠나버릴 것 같아 두려워서인지도 모르겠다.

윌리엄 데이비스 킹 지음
김갑연 옮김
책세상 펴냄

그러는 와중에 자연스레 떠올린 책이 〈아무것도 아닌 것들에 대하여〉다. 과거 회상과 수집에 관한 고찰을 오가는 이 독특한 에세이는 아내와의 이혼으로 이사를 하게 된 마흔세 살의 저자가 차고를 채운 어마어마한 짐 더미에 경악하는 장면에서 출발한다. 보잘것없고 쓸모없는 물건들을 그러모으기 시작한 어린 시절부터 이어온 파란만장한 수집 역사를 되짚어나가며 어쩌다 수집에 몰두하게 되었는지 끈질기게 성찰해나간다.


저자는 왜 ‘아무것도 아닌 것’들을 모으는 데 집착하게 되었을까? 유년 시절, 장애를 지닌 누나 신디의 영향으로 암울한 집안 분위기 속에서 소외감을 느낀 그는 ‘아무것도 아닌 것’이나마 모으고 거기에 질서를 부여하여 자신이 군주처럼 군림할 왕국을 이룸으로써 상처받은 마음을 달랠 수 있었다. 이렇게 시작된 수집벽은 계속되어, 통조림이나 세제 통 등 온갖 종류의 라벨 1만8000개, 시리얼 상자 1579개, 신용 사기 편지 141통 등으로 이루어진 방대하고도 기이한 컬렉션을 구축하기에 이른 것이다. 이혼 과정에서 어린 두 딸에게 상처를 주었다는 죄의식에 시달린 저자는 당시 딸들이 흘리던 눈물과 연결 지어 ‘생수 브랜드 라벨 컬렉션’을 소개하며 절묘한 구성력의 글쓰기를 선보인다.

미니멀 라이프라는 대세를 가차 없이 거스르는 이 솔직하고 사랑스러운
괴짜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다 보면 수집이 죽음의 공포에 맞서는 하나의 수단일 수 있다는 저자의 말에 깊이 공감하게 될지도 모른다.

기자명 이단네 (책세상 편집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