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 초등학교 교사가 온라인상에서 페미니즘 교육의 필요성을 이야기했다는 이유로 도를 넘은 비방과 공격에 시달렸다. 페미니스트 교사를 학교 밖으로 내보내라는 요구도 거세다. 교사란 무릇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모든 주장은 정치적이다. 사회를 함께 만들어 나갈 구성원을 교육하는 기관으로서 학교 역시 언제나 그러했다. 정치적이지 말라는 목소리야말로 가장 정치적이다. ‘열렬히 행동함’만이 정치적인 게 아니다. 비정치성을 강조하는 태도가 결국 무엇이었는지, 이명박·박근혜 정권에서 우리는 오랫동안 경험했다.

정치적이지 않은 결정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정치적이지 않을 것을 강조하는 대신에 무엇을 가르치도록 결정할지 끊임없이 고민해야만 한다. 사회 구성원이 될 학생들에게 무엇을 전수할 것인지, 어떤 가치를 함양하게 할 것인지, 그러기 위해서 무엇을 어떻게 가르칠 것인지 적극적으로 탐색하고 선택해야 한다.

더 배우고 더 자유로워지라고 응원하던 그들

ⓒ정켈 그림

나는 학교에서 식민지였던 역사를 배우고 민주주의를 배우고 그것을 가능케 했던 이들의 이름을 배웠다. 학교가 아니었다면 배울 수 없었던 가치였다. 내게 학교는 성숙한 인간으로 거듭날 수 있는 공간이었던 동시에 폭력이 지배하던 공간이기도 했다. 그곳에는 때리고, 만지고, 성적인 농담을 건네는 선생님과 학생들이 있었다. 내가 졸업한 지 벌써 한참이 지났지만, 학교라는 공간은 나아지지 않았다. 오히려 더 심한 폭력과 혐오가 지배하고 있다. 며칠 사이의 일만 살펴봐도 그렇다. 한 학교에서는 몇백명을 추행했고 또 다른 학교에서는 몰래카메라를 설치했다. 언어와 신체와 디지털 미디어를 이용한 성폭력이 끊임없이 일어난다. 학교는 안전한 공간이 아니다. 폭력에 맞서는 일은 정말로 시급한 과제다. 

페미니스트 교사는 지금 갑자기 등장한 것이 아니다. 폭력과 억압의 문화를 강요하는 선생님도 만났지만 그로부터 지켜준 선생님도 드물게 만났다. 여자라서 못 한다고 생각하지 말고, 즐겁게 배우고, 부당한 일에 목소리 높이라고 북돋아주는 그들 덕에 학교를 답답하고 폭력적이라고 느끼는 동시에 괜찮은 면도 있는 곳이라고 추억할 수 있었다.

여학생인 내게 정해진 성 역할을 따르라고 하지 않고, 더 먼 곳으로 가라 하고 더 배우고 더 자유로워지라고 말하던 이들은 스스로 그렇게 말하지는 않았지만 돌아보면 모두 페미니스트 교사였다. 학교는 그들과 같은 존재가 더 많이 필요했다. 그런 사람들을 학교에서 내보내라니. 그들을 없앤 학교에는 과연 무엇이 남는가. 그 긴 교육과정 동안 누가 우리를 더 나은 존재라고 여길 수 있게 해줄 것인가. 누가 우리에게 스스로 더 나아질 기회를 줄 것인가. 요즘 들어 날로 거세지는 혐오와 폭력에 맞설 수 있는 힘은 오직 그들에게만 있다. 학교를 지키기 위해 용감히 나선 이들을 지켜줘야 한다. 교육부와 정부는 침묵을 멈춰야 한다.

페미니즘은 진작 정규 교육과정에 도입되었어야 했다. 그랬다면 학교는 안전하고 자유롭기만 한 공간일 수 있었다. 후회는 나의 학창시절을 회고할 때로 끝나야만 한다. 지금이라도 바로잡아야 한다. 늦은 감은 있지만 곧 그렇게 될 것이다. 페미니스트 교사라는 이름으로 모습을 드러낸 이들의 등장이 또 다른 이들의 등장을 부르고 있다. 보수적이고 폐쇄적인 학교라는 공간에서 목소리를 내고 행동하기로 결정한 이들의 용기를 지지하고 경의를 표한다.

기자명 이민경 (작가)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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