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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러 청정국은 없다 스페인도 뚫렸다

‘테러 청정국가’로 관광 특수를 누리던 스페인에서 세 차례에 걸친 연속 테러가 발생했다. IS는 이 테러가 자신들이 한 일이라고 주장했다. 국가 전체가 비상사태를 맞았다.

김영미 국제문제 전문 편집위원 webmaster@sisain.co.kr 2017년 09월 11일 월요일 제52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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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남쪽으로 약 200㎞ 떨어진 알카나르는 피레네 산맥의 멋진 풍광과 바닷가가 어우러진 아름다운 도시이다. 지난 8월16일 관광객들에게도 잘 알려진 이 도시에 갑자기 비상이 걸렸다. 알카나르의 한 주택에서 거대한 폭발음이 들렸다. 이 폭발 사고로 1명 이상이 숨지고 여러 명이 다쳤다. 주민들은 처음에 폭발의 원인은커녕 영문조차 몰랐다. 경찰이 들이닥치고 잔해에서 TATP(트라이아세톤 트라이페록사이드), 즉 과산화수소 폭발 물질을 발견했다.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의 테러범이 흔히 사용하는 폭발물질이다. 부탄가스 100여 개, 수많은 못, IS 깃발이 발견되면서 주민들은 충격에 빠졌다. IS 테러범들이 폭탄을 제조할 때 쓰는 재료들이다. 스페인 경찰도 테러리스트들이 폭탄을 제조하다 부주의로 폭발 사고가 났다고 밝혔다. 이것은 더 큰 비보의 전조였다.

ⓒAP Photo
8월23일 차량 테러가 발생한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람블라스 거리에서 테러 희생자를 위한 추모 행사가 열렸다.
희생자를 기리는 꽃이 거리를 가득 채웠다.

이튿날인 8월17일 바르셀로나의 옛 시가지 람블라스 거리와 카탈루냐 광장을 잇는 지점에서 흰색 밴 차량이 군중을 덮쳤다. 이 차량 돌진 테러로 현재까지 14명이 숨지고 100여 명이 다쳤다. 람블라스 거리는 유명 관광지라 전 세계에서 온 관광객으로 붐비고 있었다. 테러 피해자들의 국적만 24개국에 달했다. 이 테러가 나고 몇 시간 뒤인 8월18일 새벽 바르셀로나에서 남쪽으로 120㎞ 떨어진 해안도시 캄브릴스에서 또 다른 차량 돌진 테러가 발생했다. 승용차를 탄 테러범이 인도를 덮쳐 1명이 숨지고 7명이 크게 다쳤다. 이 사건 용의자 5명은 가짜 자살 폭탄 조끼를 입은 채 현장에서 사살됐다. IS는 선전매체인 아마크 통신을 통해 이 테러가 자기들이 한 일이라고 주장했다.


스페인은 영국·프랑스에 비해 상대적으로 테러가 거의 일어나지 않던 국가였다. 가장 최근에 일어난 것이 13년 전인 2004년 3월 마드리드 기차역에서 191명이 죽고 1200여 명이 다친 알카에다의 동시다발 폭탄 테러였다. 그 이후에는 테러가 뜸했다. 유럽 국가들이 테러에 시달리면서 스페인은 상대적으로 ‘테러 청정국가’라고 비춰져 관광 특수를 누렸다. 심지어 관광객들이 너무 몰려 스페인 주민들이 더 이상 관광을 오지 말라는 캠페인을 벌일 정도였다. 그랬던 스페인이 테러범들에게 뚫렸다. 국가 전체가 비상사태를 맞았다. 관광객 숫자도 급락하고 있다.

이번 테러의 특징 중 하나는 모로코인들이 대거 연루되었다는 점이다. 테러 용의자 12명 가운데 유네스 아부야쿱 등 6명이 모로코인이다. 스페인 수사 당국은 바르셀로나와 캄브릴스 테러 배후에 모로코 출신 12명으로 구성된 테러조직이 있다고 밝혔다. 또 이들이 앞서 벌어진 알카나르 폭발 사건과 연관이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이들이 처음에는 폭탄 테러를 준비하다가 예기치 않게 폭발 사고가 일어나자 람블라스 거리에서 차량 돌진 테러로 급히 바꾸었으리라 본다.

아부야쿱 등 용의자 8명은 바르셀로나 북부 리폴 출신이다. 수사 당국은 스페인에서도 아름답기로 유명한 리폴이라는 도시가 모로코인 테러 조직의 거점인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특히 이곳의 모스크(이슬람 사원)를 주목한다. 보통 테러범들은 모스크를 통해 조직원을 포섭한다. 유럽에서는 소도시까지 모스크가 퍼져 있다. 모든 모스크가 다 이슬람 급진 세력이나 IS와 연관되어 있지는 않다. 하지만 테러범들에게 모스크는 ‘외로운 늑대’들을 만날 수 있는 최적의 장소다. 유럽에서 나고 자란 이민 2세가 사회에서 차별을 받고 내성적인 성격이면 외로운 늑대가 되기 쉽다. 이 외로운 늑대가 모스크에 나가기 시작하면 서서히 급진 세력들이 접근한다. 불과 몇 달밖에 안 되어도 이들은 확신범이 된다. 이번 사건의 주범으로 지목된 아부야쿱의 경우도 비슷하다. 아부야쿱은 이웃과 친구들 사이에서 아주 모범적인 스페인 청년이었다. 그는 네 살 때 부모를 따라 스페인으로 이주한 모로코 출신이다. 그는 리폴 모스크에서 만난 이슬람 성직자인 압델바키 에스 사티에 의해 이슬람 원리주의와 극단적 폭력 사상에 급속도로 물들었다. 아부야쿱은 불과 몇 달 사이에 1급 테러리스트가 되었다. 그는 유럽에서 테러범이 되는 이민 2세 출신 외로운 늑대들과 같은 경로를 밟았다.

테러 용의자 12명 가운데 6명이 모로코인


스페인에서 모로코인들이 대거 테러에 연루된 것은 지리적 영향도 한몫했다. 스페인은 북아프리카에 위치한 모로코와 가깝다. 지중해 지브롤터 해협을 사이에 두고 두 나라가 마주보고 있다. 이 루트를 통해 그동안 수많은 북아프리카 난민이 스페인으로 건너왔다. 그들 난민 중에 테러범을 키울 수 있는 ‘테러 선생’이 섞여서 들어왔을 가능성이 있다.

시리아와 이라크에서 IS는 미군의 막강한 공습을 받고 뿔뿔이 흩어졌다. IS의 최고 성지인 이라크 북부 도시 모술도 이라크군에 점령당했다. 이곳을 점령하고 있던 IS 핵심 세력들이 북아프리카 리비아·튀니지·모로코 등지로 흩어지며 다시 결집했다. 이른바 풍선 효과이다. 한때 시리아·이라크 등지에서 활동했던 모로코 출신 IS 전사들이 1600명에 달했고 이 중 300여 명이 유럽으로 귀국한 것으로 추산된다.

스페인뿐만 아니라 핀란드에서도 모로코 출신 청년이 테러를 벌였다. 8월18일 핀란드 남서부 도시 투르쿠 중심가에서는 한 남성이 흉기를 휘둘러 여성 2명이 숨지고 8명이 다쳤다. 부상자 중에는 영국인과 이탈리아인 등 외국인도 있었다. 긴급 출동한 경찰이 쏜 총에 맞아 체포된 용의자는 지난해 핀란드에 입국해 난민 지위를 신청한 모로코 청년이었다. 핀란드 당국은 사상 첫 테러 사건으로 규정하고 범인에게 테러 관련 살인 및 살인미수 혐의를 적용했다. IS와 연관이 있는지 추가 조사를 벌이고 있다. 테러가 뜸했던 스페인과 핀란드에서 테러가 발생했고, 테러범들이 모두 모로코인이라는 점을 따져보면, 각 정부 당국은 우발적이 아니라 세포조직을 통해 상당히 계획된 테러라고 추정한다.

8월24일 스페인 일간지 <엘파이스> 보도에 따르면 IS는 아랍어 억양이 섞인 스페인어를 쓰는 이들의 선전 영상을 내보냈다. “알라의 뜻으로 ‘알안달루스’는 다시 한번 칼리프(7세기 이슬람 신정일치 국가)의 영토가 될 것이다”라고 선전했다. ‘알 안달루스’는 과거 5세기 동안 이슬람 왕국이 스페인과 포르투갈 등 이베리아 반도를 지배하던 때 이슬람교도들이 이 지역을 일컫는 말이다. 영상에서 복면을 한 ‘아부라이스 알쿠르두비’라는 IS 조직원은 “이슬람국가로 이주할 수 없다면, 너희가 있는 곳에서 지하드(이슬람 성전)를 수행하라. 지하드는 국경이 없다”라고 주장했다.

최근 잇달아 일어난 테러는 전형적인 ‘로 테크(Low Tech) 테러이다.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도구인 차량이나 칼로 테러를 벌이는 것이다. 폭탄 같은 고난이도 제조 기술이 없어도 로 테크 테러는 언제든 불특정 다수를 향해 손쉽게 테러를 할 수 있다. 스페인과 핀란드 같은 국가에서까지 테러가 일어나면서 이제 테러 발생 지역도 넓어졌다. 유럽 수사 당국을 더욱 곤혹스럽게 만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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