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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경원 “힘 비축해 우파 통합할 것”

나경원 의원은 내년에 자유한국당 서울시장 후보로 출마할까? 바른정당에는 왜 안 갔을까? 당 대표 경선에 안 나간 이유는? 지나온 정치 이력을 들여다보고 앞으로의 행보를 물었다.

이숙이 기자 sook@sisain.co.kr 2017년 09월 12일 화요일 제52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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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정기국회를 앞두고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이 전열을 재정비하고 있다. 박근혜 탄핵과 최순실 국정 농단에 책임이 있는 세력을 솎아낸 뒤 문재인 정부에 각을 분명히 세움으로써, 10% 언저리에 머물러 있는 당 지지도를 끌어올리고 내년 지방선거도 대비하겠다는 의도다.

ⓒ시사IN 조남진
나경원 의원은 2015년 2월 사상 첫 여성 외교통일위원장을 맡았다. 나 의원은 정부 주도로 이뤄지는 국제 외교의 장에서 의원 외교의 역할을 강화했다.

이처럼 재기를 꿈꾸는 자유한국당에서 주목해야 할 ‘센 언니’는 누구일까? 정치적 무게감이나 영향력으로 보면 나경원 의원이 압도적이다. 4선 의원에 헌정 사상 최초로 여성 외교통일위원장을 지내기도 한 나 의원은 내년 지방선거의 서울시장 후보군에 올라 있다. 황교안 전 국무총리가 페이스북 정치를 시작하며 자유한국당 서울시장 후보로 거론되지만, 나 의원은 서울시장 후보로 직접 뛴 경력이 있어서 타천 후보로 꾸준히 거론된다. 지난 8월1일 KBS 2TV <냄비받침>에 출연한 나 의원은 “내년 서울시장에 도전할 것이냐”라는 질문에 “정치인은 가능성이 1%라도 있다면 ‘절대 아니다’라고 말하면 안 된다”라고 말해 여지를 남겼다.

정치권에 입문한 후 내내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던 나 의원 처지에서 보면 요즘이 아마도 가장 잠잠한 시기일 듯하다. 국회 저출산고령화대책특위 위원장 말고는 특별히 맡고 있는 당직이나 국회직 없이 ‘포용과 도전’이라는 의원들 공부모임(이하 포도 모임)만 이끌고 있다. ‘포도 모임’은 20대 국회가 구성되고 석 달 후인 지난해 8월 ‘당내 계파 갈등을 해소하고 보수 개혁을 통한 포용적 보수를 지향하자’는 취지로 당시 새누리당 의원 10여 명과 함께 만든 모임이다. 창립 초반에는 주로 ‘보수의 길’에 대한 주제로 강의를 듣고 토론하는 시간들을 가졌다면 요즘은 문재인 정부의 안보·교육·경제 정책 등 분야별 핵심 어젠다를 분석하고 비판하며 대안을 모색하고 있다.

가을 정기국회와 내년도 지방선거를 앞두고 서서히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나 의원을 만나 앞으로 어떤 행보를 보일 것인지 물었다. 정치권에 입문한 이후 걸어온 길에 대해서도 되짚어봤다.



서울시장 나갈까? 나경원 의원과 서울시장 선거는 이래저래 인연이 깊다. 2006년 오세훈 당시 한나라당 후보가 서울시장에 도전했을 때 나 의원은 캠프 대변인을 맡아 당선을 도왔다. 초선 2년차였다. 2010년에는 서울시장 재선에 도전하는 오세훈 시장을 상대로 원희룡·김충환 의원과 당내 경선에 나섰다가 패했다. 오세훈 서울시장 재선 캠프의 대변인은 조윤선 의원이 맡았다. 그런데 1년 뒤인 2011년 8월 오세훈 시장이 서울시 무상급식 주민투표 무산을 이유로 자진 사퇴하면서 나 의원이 10·26 서울시장 재·보궐 선거 후보로 나섰다. 당시 야권에서는 안철수 예비후보와의 단일화에 성공한 박원순 후보가 무소속으로 나섰는데, 나 의원은 46.2%를 얻어 53.4%를 얻은 박원순 후보에게 7.2%포인트 차이로 패했다.

ⓒ국회사진기자단
2011년 10월10일 SBS 사옥에서 열린 서울시장 후보 초청 TV 토론회에서 한나라당 나경원 후보(왼쪽)와 무소속 박원순 후보가 악수를 하고 있다.

안철수 돌풍과 이례적인 단일화(지지율 50%를 기록하던 안철수 후보가 당시 지지율 5%이던 박원순 후보에게 양보), 친박 진영의 나경원 지원 여부 등으로 전국의 관심이 집중됐던 이 선거에서 패배함으로써 나 의원은 적잖은 내상을 입었다. 특히 <시사IN>이 단독 보도한 ‘1억 피부과 이용 의혹’의 파장이 컸다. 원세훈 전 국정원장은 재임 당시 이 보도를 예로 들며 “후보(나경원)가 여성 표는 10% 이기고 있었거든, 그런데 결과는 7%인가 졌더라고. 진 게 1억 피부숍이에요, 딴 게 아니고. 내 이야기는 혹세무민하려는 게 아니고 혹세무민된 것을 정상화하라는 얘기야. 그거를 활동하고 활동 상황을 보고해요”(2011년 11월18일 원장님 지시·강조 말씀 녹취록)라며 국정원의 정치 개입을 독려하기도 했다.

나 의원은 낙선의 여파로 2012년 총선 불출마까지 선언했다. 33개월을 원외로 지내던 그녀에게 서울시장 자리가 또다시 변수로 작용했다. 정몽준 의원이 2014년 서울시장에 도전하면서 의원직을 사퇴했고, 그 지역구(동작을) 재보선에서 나 의원이 당선되며 19대 국회에 늦깎이 입성하게 된 것이다.

이처럼 ‘인연’이 남다른 서울시장인 만큼 내년에 다시 도전하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 나 의원은 일단 부정적인 답을 내놓았다. “2011년에는 사실 질 것이 뻔한 선거인데도 나갔다. 당시 밥 잘 안 사는 홍준표 대표가 밥 사주면서 간곡하게 나가달라고 부탁한 것도 있지만(웃음), 재선의 패기에 불타던 그때는 지더라도 우리 생각을 많이 알려야 한다는 사명감이 앞섰다. 지금은 출마가 내 생각을 알리는 최상의 방법인지에 대해 주저함이 있다. 이기고 지고를 떠나 내가 가진 자산을 다 써야 할 시기가 있을 텐데, 그게 지금은 아닌 것 같다.”

하지만 ‘정치는 생물’이라고 10개월 후의 상황은 누구도 예단할 수 없다. 나 의원이 “1%의 가능성이라도 있다면 ‘절대’라는 표현을 쓰면 안 된다”고 했던 것처럼.



바른정당으로 왜 안 갔나?
지난 연말 김무성·유승민·이혜훈·주호영 등 새누리당 의원 30여 명이 박근혜 대통령 탄핵 불복과 여전한 친박 득세 등에 반발해 집단 탈당을 선언했을 때 나경원 의원은 막판 잔류를 선언했다. 탈당파 쪽에서는 “정강 정책을 만드는 과정에서 유승민 의원 측과 마찰을 빚었다” “원내대표로 추대되리라 기대했는데 틀어지면서 합류를 안 하기로 한 것 아니냐” 등의 발언이 나왔고, 나 의원에게는 ‘나꾸라지’ ‘기회주의자’ 따위 비난이 빗발쳤다. 얼마 후 나 의원이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을 지지한다는 뜻을 밝혔다가 반 전 총장의 출마 포기로 머쓱한 상황이 되자 “소신 없이 여기저기 줄서기에 바쁘다”라는 비난은 더 거세졌다. 두 달 후 탈당파 일부가 복당하면서 “결국 승리자는 (움직이지 않은) 나경원”이라는 평가도 나왔지만, 한때 행보를 같이하기로 한 동료들이 바른정당에 남아 있는 한 나 의원의 마음은 무거울 수밖에 없다. 나 의원은 당시 상황을 이렇게 설명했다.

“제일 좋은 건 새누리당 안에서 탄핵 책임 세력이 물러나고 재창당하는 것이었다. 친박 세력의 여전한 득세로 불가능하니 다 같이 나가서 모범적인 우파 정당을 만들어보자고 의기투합했다. 최소한 50명까지는 모으는 게 좋겠다는 의견들이었고, 또 ‘신당=유승민 당’인 것처럼 비치는 건 당세 확장에 한계가 있으니 당의 이념과 가치 등에 관한 골자는 내가 만들어보겠다 해서 김무성 전 대표 등이 동의했다. 그런데 다들 마음이 급하더라. 유승민 의원은 회의장 문을 나가면서 언론에 ‘신당의 가치는 내가 주도하겠다’라며 안보는 오른쪽, 경제는 왼쪽이라고 못 박아버렸고, 각자 지역구 사정이 있으니 탈당 발표는 일주일 후에 하기로 했는데, 문 열자마자 대변인 격인 황영철 의원이 ‘탈당을 선언합니다’ 해버리더라. 내가 흠칫 놀라 옆으로 의자를 빼면서 사진에 안 찍히려고 했는데, 예민한 기자들은 알아챘을 거다.”



홍준표 체제에서의 역할은?
지난 7월 치러진 자유한국당 대표 경선을 앞두고 한때 나경원 출마설이 돌았다. 하지만 나 의원은 미련 없이 접었다. ‘당선 가능성이 없는데 왜 나가느냐?’는 것이었다. “당 안에는 여전히 태극기 부대와 같은 성향을 가진 분이 상당수이고, (박근혜) 탄핵에 찬성하고 주도한 것을 곱지 않게 보는 시선이 많다. 홍준표 대표가 드디어 ‘박근혜 전 대통령 출당’을 얘기해서 이제 좀 방향이 바뀌는가 싶은데, 당분간은 힘을 좀 비축하면서 우파 통합을 위한 길을 닦는 데 집중하려고 한다.”

<시사IN>과 인터뷰하기 직전 자유한국당 최고중진회의에 참석했던 나 의원은 ‘당의 질서’를 여러 번 강조했다. 보수의 핵심 가치는 법치인데, 아무리 비상 상황이라도 당헌·당규 등을 어기는 일이 너무 잦다는 것이다. 정책위 의장 자리가 비어 있으면 의총에서 선출하면 되는데 당헌·당규에도 없는 ‘대행’이란 자리를 만들어 운용하고, 전당대회를 체육관 경선으로 하기로 했다가 ‘태극기들이 쳐들어온다더라’는 소리에 갑자기 룰을 바꿔버리는 것 등이 대표 사례다. 매주 열던 최고중진회의를 홍 대표가 은근슬쩍 한 달에 한 번으로 줄인 것도 ‘쓴소리 듣기 싫다는 의미 아니겠냐’고 나 의원은 꼬집었다.

그러면서 나 의원은 “제발, 계파정치 좀 없어졌으면 좋겠다”고 여러 차례 푸념했다. 판사 시절 경험이 몸에 밴 탓인지 정치권에 와서도 어느 한쪽으로 ‘팍 엎어지는’ 걸 잘 못하는데, 그것 때문에 두 번이나 공천을 못 받을 뻔하는 등 생존이 버겁다는 것이다.

실제로 2008년 서울 송파병 출마를 노리다 당시 공천권을 쥔 친이 실세 의원한테 ‘공천 못 준다’는 전화를 받았다. 2007년 대선 때 이명박 후보 대변인을 맡아 열심히 선거운동을 도왔는데도 친이 핵심이 아니라는 이유로 홀대를 당한 셈이다. 밭 좋은 데 고르려다 낭패를 보겠구나 직감한 나 의원은 당시 야권 거물 ‘손학규 출마설’로 한나라당 의원들이 기피하던 서울 중구를 이판사판 심정으로 택했는데, 손학규 후보가 종로로 가는 바람에 자유선진당 신은경 후보(전 앵커)와 겨뤄 국회에 재입성했다.

박근혜 비대위가 공천권을 쥔 2012년 총선 때는 일찌감치 불출마를 선언해야 했다. 이번에는 친박계가 나 의원을 아예 비박으로 찍은 데다 서울시장 재보선에서 패배한 후유증이 컸기 때문이다. 33개월 공백 후 서울시장 후보로 나선 정몽준 의원의 지역구(동작을)를 물려받아 3선에 성공했다. 당시 경쟁자는 야권 단일 후보로 나온 정의당 노회찬 후보였다.



나경원의 자산? 최근 KBS 2TV <냄비받침>에 함께 출연한 손혜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나경원 하면 떠오르는 세 가지”로 외모, 내공, 첫 여성 외통위원장을 꼽았다.

나 의원의 외모는 젊었을 때부터 독보적이었다. 조국 민정수석, 원희룡 제주도지사 등과 서울대 법대 82학번 동기인데 SNS에 돌아다니는 당시 사진에는 ‘연예인급 미모’라는 댓글이 주르륵 달렸다. 2002년 나 의원이 법복을 벗고 이회창 대선 후보 캠프에 합류했을 때는 ‘미모의 여판사가 나타났다’며 언론이 떠들썩했고, 그 후 나 의원은 대변인을 맡고 텔레비전 토론에 단골 출연하며 인지도를 높였다. 나 의원은 “정치 입문 초기에는 확실히 덕을 봤는데, 갈수록 손해가 큰 것 같다. 외모 덕에 정치를 쉽게 한다고 여기는 분들도 있고, 내가 내놓은 정책이나 법안 등은 오히려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라고 억울해했다.

“내공이 만만치 않다”는 평가 또한 양면적이다. 나 의원은 여려 보이는 외모와 달리 정치 공방이 거세게 벌어지는 현장에서도 웬만해서는 눈썹 한번 움찔하지 않는다. 초선 의원 때도 찬반 양론이 격돌하는 회의장의 사회를 맡아 낮고 엄숙한 목소리로 장내를 단숨에 평정하곤 했다. 이 때문에 나 의원에게는 ‘얼음공주’라는 별명도 따라다닌다. 이처럼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최대한 절제하는 습관은 판사 훈련을 받으며 몸에 뱄다는 게 나 의원의 설명이다. “처음 판사 교육을 받을 때 부장판사가 했던 얘기가 아직도 생생하다. ‘법대 위에 앉은 판사가 무의식적으로 고개만 끄덕여도, 누군가와 무심코 눈만 마주쳐도 아래서 판사만 쳐다보는 피고나 원고의 희비가 엇갈린다. 그러니 절대 감정을 드러내면 안 된다’는 내용이었다. 첫 직업에서 그런 훈련을 받아서인지 정치권에서 와서도 ‘무조건 이 편입니다’ 못하고, 무의식중에 사안을 객관적으로 보려고 하는 경향이 있다.” 정치는 때론 격하게 공감하고 같이 울고 웃어야 하는데 속으로는 펑펑 울고 있으면서도 겉으로는 차분하게 보이는 탓에 나 의원은 종종 오해를 사기도 한다. “그나마 지역주민을 만나는 선거는 진심을 다하면 통하더라. 그런데 당내 선거는 하면 할수록 더 어렵다. 그동안 내 지역구 선거와 최고위원, 원내대표 선거는 물론이고 대선, 지방선거 등 남의 선거도 참 많이 도왔다. 국회의원 그만두면 앞으로 선거기획사나 해야겠다(웃음).”

외모나 내공이 양면성이 있다면, 첫 여성 외통위원장 경험은 온전하게 나 의원의 자산으로 평가받을 만하다. 나 의원은 2015년 2월부터 2016년 5월까지 국회 외교통일위원장을 맡았다. 정두언 의원과 의원총회에서 경선까지 치른 끝에 208표 중 176표를 얻어 헌정 사상 첫 여성 외통위원장에 올랐다. 나 의원은 정부 주도로 이뤄지는 국제 외교의 장에서 의원 외교의 역할을 강화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미국·중국·일본·러시아 등 주변 4강은 물론이고 가능한 한 많은 나라를 방문해 의원 외교의 폭을 넓혔다. 그 결과 북핵 문제 등이 발생하면 곧바로 연결해 상황을 공유하고 의견을 물을 수 있는 핫라인을 구축했고, 우리 의원들이 해당 국가를 급하게 방문하더라도 “누구 만나고 싶다” 하면 신속하게 가동될 수 있는 루트도 만들었다. 지난 8월 초 나 의원이 대표를 맡고 있는 ‘포도 모임’에 마크 내퍼 주한 미국 대사 대리가 참석해 북한 미사일 관련 미국 정부의 방침을 설명하고, 슈테판 아우어 주한 독일 대사가 참석해 독일의 탈원전 정책을 소개한 것도 그때 만든 네트워크의 힘이다.

ⓒ연합뉴스
2016년 1월11일 주한 러시아 대사의 북핵 관련 발언을 듣고 있는 나경원 국회 외교통일위원장(오른쪽).

여기에 하나 더, 원내 활동은 아니지만 나 의원의 리더십을 엿볼 수 있는 사례가 있다. 한국스페셜올림픽위원회 대표를 맡아 2013 평창 동계스페셜올림픽 세계대회를 성공적으로 치러냈다. 장애인 체육대회 하면 일반인에게는 패럴림픽만 익숙한데, 체육계에 따르면 장애인 올림픽은 신체 장애인들이 참여하는 패럴림픽, 지적장애인들이 참여하는 스페셜올림픽, 청각장애인들이 참여하는 데플림픽 등 3개가 있다. 다운증후군을 앓는 딸 때문에 지적장애인에 대한 감수성이 남다른 나 의원은 “스페셜올림픽을 눈앞에 보여주면 지적장애인에 대한 인식이 크게 바뀔 거라고 생각해” 세계대회를 유치하고 알리는 데 전력을 기울였다. 1년 넘게 철저하게 을(乙)이 되어 후원금을 모으고 사람들을 조직해 끝날 때는 스페셜올림픽에 대한 인지도가 70%대까지 오르는 등 대성공을 거두었다.


나 의원은 8월에 열린 제5회 평창 스페셜 뮤직&아트 페스티벌에 다녀왔다. 2013년 평창 동계스페셜올림픽 세계대회 때 장애인 아티스트들과 한국 최고 예술인들이 합동 공연을 한 것이 계기가 되어 매년 열게 된 행사로, 지금은 세계 유일의 발달장애인 문화예술축제로 자리매김했다. 나 의원의 방에는 평창 스페셜올림픽의 슬로건이었던 ‘투게더 위 캔(Together we can)’이 크게 적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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