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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에는 ‘유배자’ 111명이 있다

MBC에는 ‘유배자’ 111명이 있다. 2012년 170일 동안 파업을 벌인 이후 방송 현장에서 쫓겨난 이들이다. 회사는 기자에게서 취재를, PD에게서 제작을, 아나운서에게서 진행을 앗아갔다.

김은지 기자 smile@sisain.co.kr 2017년 09월 06일 수요일 제52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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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유배자 목록이요?” 전국언론노조 MBC본부(이하 언론노조 MBC본부)에 MBC의 징계 및 부당 전보 관련 자료를 요청하자 돌아온 대답이었다. 허유신 언론노조 MBC본부 홍보국장은 “회사가 공정방송을 주장한 기자·PD·아나운서 등을 비제작 부서인 서울 광화문·구로, 경기도 수원·인천·성남·고양·용인 등으로 쫓아내 내부에서는 ‘유배 갔다’고 부른다”라고 말했다.

건네받은 A4 용지 넉 장에는 ‘유배자’ 111명의 이름이 빼곡히 적혀 있었다. 언론노조 MBC본부가 2012년 ‘김재철 사장 퇴진’을 내걸고 170일 동안 파업을 벌인 이후 방송 현장에서 쫓겨난 이들이다. 언론노조 MBC본부에 따르면 200명이 넘는 이들이 징계와 보복성 인사를 당했고, 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제자리를 찾지 못한 이들이 111명이나 된다. 이들의 다섯 해 동안 경력에는 대기·교육·비제작팀 발령 등이 주를 이뤘다.

ⓒ시사IN 포토
언론노조 MBC본부는 2012년 1월30일 총파업을 선포하는 출정식을 열었다.

회사는 끈질기고 지속적으로 파업 참가자들을 현장에서 격리했다. 언론인이기보다는 직장인으로서의 생활에만 만족하라는 듯, 기자에게서 취재를, PD에게서 제작을, 아나운서에게서 진행을 앗아갔다. 대신 교육이라는 명목으로 브런치 샌드위치 만들기·바리스타 체험 따위를 가르쳤다. 교육 기한이 다 차면, 스케이트장에서의 동전 교환이나 방송 자막 내보내기 등 비제작 업무에 배치했다. MBC 핵심 업무를 담당하는 서울 상암동 본사에서 아예 떼어놓는 경우도 많았다.

정형일 MBC 기자는 2년10개월 만에야 본사를 찾았다. 지난 8월30일 본사 1층에서 열린 총파업 결의대회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그는 2014년 10월 광화문 신사업개발센터 발령을 받았다. 스케이트장을 관리하는 업무 등을 하는 곳이다. 1987년 입사한 그는 정치부, 사회부, <시사매거진 2580>을 거친 선임 기자다. 베이징 특파원, 사회부장, 국제부장을 지내기도 했다. 2012년 파업 당시 보도국 문화과학부장이었다. 후배들의 파업을 지켜보다 보직을 사퇴하고 합류했다. 결과는 유배였다. 정직 2개월 후 ‘신천교육대(서울 송파구 신천역 인근에 위치한 MBC 아카데미를 일컫는 말)’행을 당했다. 기본 3개월을 채우자, 3개월 더 받으라는 지시가 내려왔고, 최대 3회까지 가능한 마지막 3개월을 채웠다. 그런 다음에도 보도국으로 복귀하지 못했다. 경기도 일산의 미래전략실을 거쳐 서울 광화문 신사업개발센터에 머물렀다. 돌아가면서 해야 하는 스케이트장 업무는 일부러 주말 근무를 자청했다. ‘저들에게 이런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는 8월30일 총파업 결의대회에서 “처음에는 동병상련 처지의 동료들과 함께 지내 힘든 줄 몰랐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정신적으로 고문당하는 기분이라 힘들었다”라고 말했다.

정 기자만이 아니었다. 무력감과 모멸감을 주는 회사의 인사 조치는 공정방송을 외친 MBC 구성원 대다수가 겪은 일이었다. 정도 차이가 있을 뿐이었다. 유배자 중 한 사람인 임명현 기자는 자신의 석사학위 논문 <2012년 파업 이후 공영방송 기자들의 주체성 재구성에 관한 연구(2017)>에서 파업 이후 회사의 인사관리를 다음과 같이 분류했다. ①취재 부서에 근무하면서 <뉴스데스크>를 제작하는 기자 ②<경제매거진> <월드리포트> 등 기타 보도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기자 ③보도 정보시스템 관리, 팩트체크, 뉴스 품질관리 등 뉴스 생산 업무를 간접 지원하는 기자 ④신사업 아이템 개발, 뉴미디어 포맷 개발, 광고 영업, 마케팅, 심의 부서 등 비보도 부문에서 근무하는 기자 ⑤수도권 지역이나 여의도·구로 등 본사 외부의 사무실에서 근무하는 기자 ⑥해직 기자다. 임 기자 논문에 따르면 MBC는 이러한 분류로 회사 측 입맛에 맞지 않는 기자들을 단계적으로 배제했다. 임 기자는 논문에서 모멸감을 주는 인사권 행사가 구성원들의 무력감을 키웠고 저항적 실천을 약화시켰다고 분석했다. 그러는 동안 MBC 보도는 ‘일베 방송’이라는 조롱을 듣는 수준으로까지 망가졌다.

ⓒ전국언론노동조합 MBC본부 페이스북 갈무리
8월22일 서울 상암동 MBC 사옥 앞에서 MBC 아나운서 방송 및 업무 거부 기자회견이 열렸다.

내부 저항이 없었던 것도 아니다. 2005년 입사한 강연섭 기자는 2012년 11월4일 오정환 사회부장에게 ‘정수장학회 도청 의혹, <한겨레> 기자 소환 통보’에 관한 리포트를 작성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한때 박근혜 전 대통령이 이사장이었던 정수장학회는 MBC의 지분 30%를 가지고 있다. 당시 대선을 앞두고 최필립 이사장이 이진숙 MBC 기획홍보본부장과 MBC 매각을 논의한 정황을 <한겨레>가 보도했다. 이를 MBC가 도청 의혹으로 프레임을 설정해 공격하는 내용을 취재 지시한 것이다.


무력감과 모멸감을 주는 인사 조치


강 기자는 정확한 사실이 확인되지 않은 상황에서 무리한 보도를 하는 것이 부적절하다는 의견을 전했다. 오 부장은 더 이상 말이 없었다. 같은 날 밤, 부장이 직접 제작한 리포트로 해당 기사가 나갔다. 한 달 뒤 회사는 강 기자에게 리포트 제작 지시를 따르지 않았다는 이유로 정직 2개월을 처분했다. 그는 이러한 정직 처분이 부당하다고 법원에 소송을 제기했고 1·2·3심에서 모두 이겼다. 그 기간에 강 기자는 교육을 받고, 비취재 부서인 SNS뉴스부로 가야 했다. 2015년 5월14일 대법원에서 정직무효 결정을 받았지만 회사는 거꾸로 해석했다. 해당 판결의 취지가 정직 2개월이 과하다는 의미라며 정직 1개월 징계를 다시 내렸다. 강 기자는 다시 징계무효 소송을 냈고, 지난 8월24일 1심에서 이겼다. 회사는 소송에 져도 항소와 상고를 거듭한다. 결과가 중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시간을 끌며 누구든 저항하면 보복한다는 메시지를 보여주기 위해서다.

2000년에 입사한 양효경 기자는 세월호 관련 보도를 하다 본사를 떠나야 했다. 이미 파업 이후 대기발령과 세 차례에 걸친 교육을 받았다. 해당 처분이 부당하다는 법원의 가처분을 받아낸 끝에야 2013년 5월 이브닝뉴스팀으로 돌아왔다. 보도국이었지만 직접 취재를 하는 부서는 아니었다. 2014년 4월16일 오전 세월호 참사가 터졌다. ‘유가족의 눈물이 나오는 화면을 빼라’ ‘유가족이 정부를 비판하는 발언을 빼라’ ‘촛불집회 보도에서 촛불이라는 단어를 빼라’ 따위 깨알 같은 지시가 위에서부터 내려왔다. 데스크와의 싸움이 길어지던 나날이었다. 단원고 학생이 세월호 안에서 남긴 마지막 영상, 유가족이 울분에 차 청와대를 비판하는 목소리 등이 전파를 타자 양 기자는 결국 그해 5월 경인지사로 발령이 났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프로그램 협찬을 따내는 사업 등 비제작 업무만 맡고 있다. 현재 서울 구로의 뉴미디어포맷개발센터가 양 기자의 근무지다. 지난 7월 이곳을 방문한 특별근로감독관이 ‘다단계 사무실 같다’고 말했다. 기자·PD 등 14명이 온종일 근태 관리만 당하다 출퇴근을 반복한다.

유배자들은 지난 8월30일 총파업 결의대회에서 ‘유배지 폐쇄’ 선언을 했다. 유배지를 떠도는 기자들은 취재 현장으로, PD들은 제작 현장으로, 아나운서들은 프로그램 진행 현장으로 돌아가겠다는 뜻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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