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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를 식히는 실험에라도 희망을 걸어야 할까?

문정우 기자 woo@sisain.co.kr 2017년 09월 08일 금요일 제52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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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국이 기적적으로 파리 협정을 준수한다 하더라도 지구 기온이 이번 세기 안에 3.6℃까지 오르리라고 말했던 걸 기억하시는가. 그래서 과학자들은 종종 지구가 ‘3.6 트랙’ 안에 갇히고 말았다고들 말한다. 불행히도 이 트랙이란 말 앞에 붙은 숫자는 커지면 커졌지 작아지지는 않으리라고 보는 게 합리적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이 트랙 안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지게 될까. 자연에서 일어나는 일을 섣불리 예단하기는 힘들지만 그동안 축적된 각종 연구 결과가 가리키는 방향은 대체로 일치한다.

이 세상은 불과 물의 심판을 동시에 받게 생겼다. 따지고 보면 난민 수백만명과 수십만의 사상자를 내고 지금도 여전히 연기를 뿜는 시리아 내전의 방아쇠를 당긴 것은 기후변화였다. 내전이 일어나기 전 기록적인 가뭄이 계속돼 농부가 생업을 포기하고 도시로 대거 밀려드는 바람에 갈등이 누적된 것이다. 북아프리카와 서아프리카에서 일어난 내전과 기근의 배후에도 기후변화가 있다. 에티오피아, 소말리아, 남수단에서는 50만명이 역사에 남을 만한 가뭄에 가축을 잃고 난민이 되어 떠도는 중이다. 몽골 수도 울란바토르 외곽에서 몸집을 키워가는 빈민가 역시 기후변화가 유목민을 벼랑으로 몰고 있다는 증거이다. 건조 지역에서 집중 발생한 난민은 유럽과 지구 전체에 고통스러운 압박을 가하는 중이다. 전 세계를 공포에 몰아넣고 있는 테러 역시 기후변화의 산물이라고 말한다면 비약일까. 지구 곳곳에서 유목민이 가족처럼 아끼던 가축을 잃고 망연자실 눈물을 흘리며 유민으로 전락하는 일이 앞으로 더욱 잦아질 것이다.

그렇더라도 기후변화란 드라마의 주역은 따로 있다. 바로 물이다. 남극의 거대한 빙상 츠와이테스가 빠르게 녹아내리고 있다. 그린란드의 야콥샤운, 자카리에 빙상 역시 급속도로 줄어들고 있다. 이 세 빙상이 완전히 녹는 것만으로도 바다 수위는 2m 이상 올라갈 것이다. 3.6 트랙 안에서 바다 수위는 결국 3m까지 치솟을 전망이다.

1900년대에 비해 지금은 수위가 얼마나 높아졌냐고? 대략 20~23㎝ 올라갔을 뿐이다. 그 정도에도 섬이 순식간에 사라지고 미국 동부의 광대한 해안가 숲이 염해를 입어 말라죽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최근 연구 결과에 따르면 바다 수위가 1.8m 올라가면 미국은 해안가 거주자 1300만명을 소개해야 한다. 전 세계적으로는 수억명이 이주해야 한다. 앞으로 플로리다처럼 낮은 지역에는 집을 지어서는 안 된다는 뜻이기도 하다. 고급 휴양단지를 포함해 전 세계 해안가 인구 밀집지역은 아마 물이 차오르기도 전에 인적 없는 유령 도시로 변할 것이다. 막대한 수해 복구 비용과 부동산 거품으로 세계경제는 롤러코스터를 타게 생겼다.

ⓒ한성원 그림

역사는 극지 얼음 양의 변화가 바다의 순환을 요동치게 만든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지금까지는 남극과 그린란드 빙상에서 녹아 흘러든 막대한 양의 물이 해류의 순환에는 영향을 끼치지 않았지만, 앞으로는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아무도 모른다. 멕시코 만류의 흐름이 바뀌고 아시아와 서아프리카의 몬순이 결딴나면 사람 수억명과 가축 수십억 마리가 위기에 처할 것이다. 세계 곳곳의 높은 산에 쌓인 만년설이 사라지고 있다는 것은 참담한 비극의 전조이다. 빙하를 수원으로 삼는 긴 강들이 계절 하천으로 전락할 것이며 거기에 목을 맨 수억명의 생명이 위태로워졌다는 뜻이다. 그 강들을 공유하는 국가와 부족 간에 긴장이 고조돼 전쟁이 일어날 확률이 매우 높아졌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북아메리카와 시베리아의 영구동토가 녹으면서 거기에 묶였던 메탄가스가 풀려나는 데에도 과학자들은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이산화탄소와 비슷한 작용을 하는 온실가스인 메탄가스가 대거 공기 중에 유입되면 온난화의 속도는 갑자기 빨라질 수 있다. 최근에는 일부 과학자들이 극지의 만년빙이 녹아버릴 경우 활화산 수십 개가 동시에 폭발할 수도 있다는 스산한 시나리오도 내놓았다.

상황이 엄중하기 때문에 ‘플랜 B’가 있어야 한다는 의견도 꾸준히 제기돼왔다. 데이비드 케이츠를 비롯한 하버드 대학 연구팀은 내년 자연 상태에서 기상학 실험을 실시할 예정이다. 인공적으로 지구를 식힐 수 있는지 알아보려는 것이다. 10년 전만 해도 이런 발상은 지나치게 공상적이거나 위험하다고 여겨졌다.

연구팀은 20㎞ 상공에서 풍선을 터뜨려 대기 중에 입자를 살포할 계획이다. 입자가 햇빛을 어떻게 굴절시키고 오존과 어떤 작용을 하는지 알아보기 위해서다. 입자는 화산재와 같은 성분인 얼음, 칼슘, 탄산염, 유황 혼합물이다. 화산이 터질 때마다 화산재가 그늘막을 형성해 지구를 식히는 데서 착안한 실험이다. 연구팀은 입자를 한 번에 100g 정도의 미량만 살포할 계획이어서 지구 대기를 교란할 일은 없으리라고 장담한다. 하지만 과학자 가운데는 그 효과도 의심스럽거니와 이런 식으로 인간이 자연에 개입하는 것은 바람직하지도 않다고 믿는 이들이 많다. 최근에는 바다를 부영양화해 녹조류를 번성시켜 대기 중의 탄소를 포획해 바다 밑바닥에 가라앉히자는 제안도 나왔지만 현실성은 없어 보인다. 지금까지 인류는 공기 중에 더 이상 이산화탄소를 집어넣지 않는 것보다 더 값싸고 효과적인 기후변화 저지 방법을 찾아내지 못했다.

나쁜 소식만 있는 것은 아니다. 세계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3년째 늘어나지 않는 상태이다. 매년 1% 미만 증가에 그쳤을 뿐이다. 2차 오일쇼크, 소련 해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를 빼면 없었던 일이다. 더구나 지금은 세계경제가 호황기에 접어든 상태이다. 21개국에서 경제성장과 이산화탄소 배출량 증가 간의 연관성이 깨졌다. 산업혁명을 이끌었던 제왕, 즉 석탄이 퇴장하고 있는 게 가장 큰 이유다. 미국에서도 가스와 재생에너지가 석탄을 밀어내버렸다. 중국과 인도 사람들이 더 이상은 숨쉬기 힘들 정도로 대기오염이 심각해졌다는 사실도 한몫했다. 중국과 인도는 석탄을 때는 화력발전소 가동을 줄여가는 중이다.

상대적으로 재생에너지의 약진은 눈부시다. 기술 누적으로 풍력 터빈과 태양광 전지 가격이 곤두박질친다. 재생에너지는 30여 개국에서 정부 보조금 없이도 기존 에너지와의 경쟁력을 확보했다. 유엔 환경포럼에 따르면 각국이 새로 확보한 에너지원의 55%가 재생에너지이다. 지난해 미국의 재생에너지 인력은 47만6000명이었는데, 석탄 산업 노동자는 16만명에 불과했다. 이런 변화가 10년 전에만 일어났어도 3.6 트랙을 벗어날 희망을 가질 수 있을 텐데, 라는 탄식이 나오기는 하지만 괄목할 만한 반전임에 틀림없다.

기후변화 피해자는 대부분 약자

우리 모두는 기후변화가 자연에 직접 가하는 타격뿐만 아니라 세계의 경제와 정치에 끼치는 영향에도 적응해야 한다. 기후변화는 산업혁명을 추동한 내연기관의 몰락을 앞당기고 있다. 이는 굴뚝 산업의 종말을 뜻한다. 산업혁명의 본고장인 영국은 요즘 석탄을 단 1g도 때지 않고 하루를 보낸다. 트럼프가 아니라 히틀러가 살아 돌아온다 해도 멈추기 힘든 방향으로 세계는 변하고 있다.

자동차 산업에 권위를 부여하던, 구조가 복잡하고 정교한 기름 엔진이 밀려나고 그 자리에 원리를 따지자면 간단하기 짝이 없는 리튬 배터리가 달랑 올라앉았다. 전기 자동차는 현재 자동차 판매량의 1%를 점하고 있을 뿐이지만 2025년에는 14%로 불어날 예정이다. 배터리는 점점 더 성능이 좋아지고 싸지고 있어서 기름 엔진을 완전히 대체하는 것은 이제 시간문제이다.

후폭풍이 클 것이다. 세계경제를 주물러온 석유기업은 시한부 선고를 받은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사우디아라비아 같은 산유국의 영화는 옛이야기가 될 것이다. 투자자들은 리튬 부자인 칠레로 눈길을 돌리고 있다. 세계경제의 큰손이었던 산유국과 석유기업이 뿌리가 뽑히면서 세계경제는 악몽을 경험할 것이다. 2016년에 미국 재계에서 나온 보고서에 따르면 6만명 개인투자자와 700개 기관·대학·연금기금까지 석유기업에서 손을 뺄 기회를 엿보고 있다. 자연에서 일어나는 것 못지않은 큰 소란이 일어날 수도 있다.

기후변화는 무조건 약자를 괴롭힌다는 점에서 모질고 잔인한 면이 있다. 온난화를 초래한, 주로 온대에 위치한 부자 나라보다는 변방의 빈민을 괴롭힌다. 최근에는 지난 30년 동안 기후변화 탓에 5만9000명의 인도 농부가 자살했다는 연구 결과도 나왔다. 남미의 만년설을 머리에 인 봉우리의 70%를 끌어안고 있는 페루에서는 수십만명이 언제 범람할지 모르는 호수와 저수지를 머리맡에 두고 산다. 인도 북부와 방글라데시, 그리고 남아시아 전역에서 높은 온도와 습도가 상승작용을 일으킬 경우 수십만이 일시에 생명의 위협을 받는 일이 발생할 수도 있다고 과학자들은 벌써부터 경고해왔다. 하지만 이런 나라의 정부들은 속수무책이다.

최근 미국 캘리포니아 버클리 대학 솔로몬 샹 교수 등 연구팀이 <사이언스>에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온도가 4℃ 올라가면 미국 국민총생산이 1.5~5.6%까지 줄어드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런데 충격적이게도 미국 내 카운티(지자체) 간의 격차가 극심했다. 국민총생산이 10% 늘어나는 카운티가 있는가 하면 40%나 줄어드는 카운티도 있었다. 고통은 가난한 지역에 집중됐다. 평균보다 소득이 낮고 날이 더운 남쪽 카운티는 노동생산성과 평균수명이 줄어들고 사망률과 범죄율이 현저히 증가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태평양 북서쪽은 대조적으로 겨울이 온화해지고 농업 생산이 오히려 늘어난다는 결과가 나왔다. 이런 불평등을 방치하면 사회는 혼란에 빠질 수밖에 없다.

이 연구를 보면 기후변화가 마치 인간을 상대로 짓궂은 장난을 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가난하고 힘없는 자들에게만 폭력을 휘두르며 ‘네 문제가 아니니 외면하라’고 속삭이는 것만 같다. 

기후변화와 인류는 일종의 경주를 하는 셈이다. 기후변화가 스스로 변화를 추동해가는 티핑포인트, 즉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너기 전에 인류는 탄소배출량을 줄여야 한다. 큰 혼란 없이 석유 위주의 경제체제를 개편하는 게 관건이다. 플랜 B를 만들려고 노력해온 과학자들은 돌파구를 마련할 수 있을까. 무엇보다 기후변화로 고통을 겪는 전 세계 약자를 돕기 위해 부자 나라들이 협력할 수 있을까. 아루아코족의 말을 빌리자면 탐욕을 버려야만 위험에 빠진 세계는 균형을 찾는다. 

참고한 활자:<자바트레커>(황소걸음), <이코노미스트> <뉴 사이언스> <내셔널 지오그래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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