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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 대학생에게 너무 먼 졸업장

대학에 진학한 탈북자 중 졸업하지 못하고 중도 탈락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학업을 중단하는 주된 이유는 ‘부적응’이다. 탈북자를 보는 따가운 시선 때문에 우울해하기도 한다.

조소진 (<시사IN> 교육생) webmaster@sisain.co.kr 2017년 09월 05일 화요일 제52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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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4월 집단 탈북한 중국의 북한 식당 여종업원 12명 가운데 상당수가 올해 대학에 진학했다. 이들은 입국 초기부터 대학 진학을 바란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뿐 아니라 많은 탈북자들이 대학을 남한 사회에 정착하기 위한 ‘지름길’로 여긴다. 2015년 남북하나재단의 조사 결과 탈북 청소년의 대학 진학 희망률이 80%에 달할 정도다.

하지만 탈북자들이 대학 졸업장을 받기가 호락호락하지 않다. 대학을 졸업하지 못하고 중도 탈락(자퇴·휴학·제적)하는 비율이 높다. 탈북 청소년을 위한 특성화 학교인 한겨레중고등학교 김진영 교사는 “한겨레중고등학교를 졸업하고 4년제 대학에 진학한 학생 가운데 80%가 휴학이나 자퇴를 한다”라고 말했다. 탈북자 대안학교인 우리들학교 관계자도 “졸업한 학생들의 대학 졸업률을 집계하면 10% 정도에 불과하다. 등록금을 정부에서 지원해주니 일단 진학하지만 대부분 중도 탈락한다”라고 말했다.

이들이 중도 탈락하는 주된 이유는 ‘부적응’이다. 연구 보고서 <탈북대학생 중도탈락 원인 및 대안>을 낸 유시은 고려대 교수는 “탈북 대학생은 신분 노출에 대한 불안과 염려, 열등감과 위축감, 미래에 대한 불안감, 우울감과 무력감 등을 함께 느껴 어려움이 배가된다”라고 말했다. 유 교수 연구에 따르면 ‘영어 공부를 하고 다시 학교에 돌아오기 위해(32.7%)’ ‘생활비를 마련하기 위해(28.6%)’ ‘수업 내용을 따라갈 수 없어서(12.2%)’ 등을 학업 중단 이유로 꼽았다.

ⓒ자유터 제공
탈북자들을 위한 영어, 글쓰기, 컴퓨터 강좌가 진행되는 대안 야학 ‘자유터’의 수업 모습.

<시사IN>이 탈북자 출신 대학생 9명을 만나 대학을 자퇴하거나 휴학한 이유를 들어봤다. 이들 중 세 명의 사례로 탈북자 출신 대학생이 겪은 상황을 구체적으로 담았다. 북한에 남은 가족 등 신변 문제로 다니는 학교와 이름을 밝히기 꺼려하는 이도 있었다.


■ “탈북자라는 단어와 내 이름이 함께 불렸다”

윤지훈씨(가명·23)는 탈북자라는 신분을 ‘커밍아웃’ 당했다. 2015년 1학년 1학기 말 학과 MT에서 교수가 학생들에게 그를 탈북자로 소개했다. “탈북자라는 단어와 내 이름이 함께 불렸다. 그때 친구들의 눈빛을 잊지 못한다. 겨우 숨기고 다녔는데, 정말 죽고 싶었다.”

그는 초등학교 5학년 때 남한으로 왔다. 사춘기 때부터 느끼던 차별의 경험 탓에 탈북자라는 신분을 감추고 싶었다. 중학생이던 2010년 천안함 사건 때 받은 상처를 아직도 잊지 못한다. 윤씨는 “아이들이 몰려와 너는 누구 편이냐고 물었다. 쉬는 시간마다 몰려와서 물어대는데… 정말 힘들었다. 내가 무슨 기준이 된 기분이었다. 탈북자라는 꼬리표를 떼고 싶었다”라고 말했다. 이 일을 당한 뒤 그는 일반 중학교에서 탈북 청소년 학교인 한겨레중고등학교로 전학을 갔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갔다. 자연스럽게 탈북자라는 신분을 감췄다. 윤씨는 대학 친구들에게 강원도 출신이라고 둘러댔다.

대학교에서 커밍아웃을 당한 이후 그는 자신을 바라보는 주변의 눈빛이 바뀌었다고 느꼈다. 학교 수업 등을 따라가는 데도 벅찼던 윤씨는 입학한 지 6개월 만에 자퇴했다. 어릴 때 북한에서 두만강 국경 근처에 살았지만 남한 생활이 그곳보다 더 춥게 느껴졌다.

그는 학교를 떠난 뒤 공장을 다니다, 올해 북한이탈주민 전형으로 서울의 한 대학 간호학과에 지원했다. 현재 그는 수시전형 합격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이번에 입학해도 자신이 탈북자라는 사실을 굳이 밝히지 않을 작정이다. “임지현씨 재입북 문제 등으로 탈북자들 보는 인식이 더 나빠졌다. 포털사이트 댓글에는 탈북자를 간첩·빨갱이로 취급하는 내용까지 있다. 탈북자라고 드러냈다가 친구들과 더더욱 잘 지내기가 힘들 것 같다.”


■ “도망치다시피 강의실을 나왔다”


‘15학번’ 임지은씨(가명·22)는 아직도 대학 수업 첫날의 충격을 잊지 못한다. “필수였던 영어회화 수업에서 외국인을 난생처음 봤다. 오리엔테이션 내내 무슨 말인지 하나도 알아들을 수 없었다. 원어민 교수 이야기에 학생들이 웃는데, 어디서 웃어야 할지 몰라서 가만히 있었다. 도망치다시피 강의실을 나왔다.” 임씨는 영어가 너무 어려웠다. 북한에서도 영어 교육이 이뤄지지만, 농촌 노력동원 등으로 공부에만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니었다. 게다가 공부를 잘한다고 대학을 가는 게 아니어서 공부할 의지도 별로 안 생겼다. 다니던 고급중학교 정원 600여 명 중 출신 성분이 좋은 단 한 명만이 대학에 진학하곤 했다.

임씨를 괴롭힌 건 영어만이 아니었다. 한글 맞춤법을 틀리기 일쑤였고, 서술형 답안은 고역이었다. 글쓰기 과제가 없는 강의만 골라 수강했다. 1학년 1학기가 끝나고, 결국 휴학했다. 대학 생활을 위한 ‘과외 공부’가 필요하다고 절감했다. 2009년 탈북해서 열다섯 살에 남한에 들어온 그는 중·고등학교 과정을 모두 검정고시로 치렀다.

휴학을 2년 한 뒤 자퇴도 생각했다. 하지만 탈북자들은 남한에서 대학 졸업장이 없으면 더더욱 설 자리가 없다는 현실을 알기에 버티기로 했다. 임씨는 올가을 복학을 앞두고 있다. 대학 교칙 때문에 더 이상 휴학이 허락되지 않는다. 대학 공부를 쫓아가기 위한 준비가 끝나서가 아니다. ‘어쩔 수 없이’ 학교로 돌아가야 한다. 정부의 등록금 지원 기간(6년 안에 8학기)을 맞추려면 선택지는 하나다. 탈북자들은 북한이탈주민법 제24조에 근거해 등록금을 지원받는다. 종종 특례전형과 지원금을 시기하는 친구도 있다. “나도 북한에서 태어났어야 했는데, 완전 부럽다”라는 말도 들었다. 농담이라고 여기면서도 “진짜 북한에서 태어나길 원해?”라고 묻고 싶었다.

■ “태어나는 곳을 선택할 수 없는데…”

ⓒ시사IN 윤무영
2006년 남한으로 온 김필주씨는 대학을 자퇴하고 북한 인권 활동을 하다 올해 다시 대학에 들어갔다.

김필주씨(31)는 2006년 남한에 들어왔다. 2002년 탈북해 4년 동안 중국에서 ‘검은 사람(黑户)’으로 살았다. 검은 사람은 호구(호적)가 없는 사람을 부르는 말이다. 투명인간처럼 지내야 했기에 중국에서 학업은 생각도 못했다. 입국해서 1년간 검정고시를 준비한 끝에 꿈을 이뤘다. 스물두 살에 대학에 입학했다. 북한이탈주민 전형으로 정원 외 특례 입학해 한국외대 중국어과 ‘09학번’이 되었다.

그도 입학 뒤 탈북자라는 사실을 숨겼다. “같은 탈북자 출신 학생들을 피했다. 그들과 같이 있으면 왠지 적응에 방해가 되는 것 같고, 탈북자 신분이 노출될 것 같았다.” 대학생이 꿈이었던 그는 버틸 수 있는 만큼 버티려 했다. 하지만 3학년 1학기 때 자퇴했다. 그가 자퇴할 때 동기생들은 스펙 쌓기에 여념이 없었다. “태어나는 곳을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게 아닌데, 내가 동정해달라고, 세금 달라고 한 적도 없는데 왜 나는 이 시선을 견디며 이렇게 살아야 하는지 모르겠다.”

자퇴한 뒤 한동안 피시방을 전전하던 김씨는 자신의 정체성을 찾기 위해 여러 활동을 했다. 오히려 탈북자라는 신분을 드러내자 할 수 있는 일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는 북한 인권 활동을 하며 연극 무대에 섰다. 자퇴 후 5년 동안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찾아 다녔다. 현재 그는 가톨릭대 심리학과 ‘17학번’이다. 이제는 목표가 뚜렷하다. 그는 청소년 심리상담가를 준비 중이다. 김씨는 “졸업하면 탈북 청소년들을 주로 상담하며 도울 생각이다. 나처럼 혼란스러운 길을 더 이상 걷게 하고 싶지 않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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