되풀이되는 재앙을 어찌할 것인가. 겨우 반년 전이다. 지난겨울 우리 사회는 사상 초유의 조류독감(AI) 사태로 일대 혼란을 겪었다. 달걀 값이 치솟고, 양계 농가는 쑥대밭이 되었다. 3000만 마리가 넘는 닭이 땅속으로 생매장됐다. 정부가 지급하는 살처분 보상금만 2300억원이 풀렸다.

 

ⓒ연합뉴스1월3일 고병원성 조류독감(AI)이 확산되자 의심 신고가 접수된 경기도 화성시의 한 산란계 농장 주변에서 예방적 살처분이 진행되고 있다.

AI 이후 불거진 ‘살충제 달걀’ 파동은 우리 사회를 충격과 공포로 몰아넣었다. 살충제 달걀이 유통됐다는 것은 엄연한 사실이지만, 언론의 자극적 보도도 공포를 키우는 데 한몫했다. 예컨대 일부 언론은 8월20일 한살림 달걀에서 DDT 성분이 검출됐다고 보도해 소비자를 당혹스럽게 했다. 그런데 DDT는 38년 전인 1979년 국내에서 완전히 판매 금지된 살충제다. 농가에서는 구할 수조차 없다. 흙을 쪼아 먹는 습성을 지닌 자연방사 닭이 DDT가 잔류한 일부 토양에서 놀다 전이된 것으로 봐야 했다. 이후 방역 당국의 안전성 검사 결과 DDT 성분이 미량 검출된 농가 2곳을 포함한 모든 관련 농가가 ‘적합’ 판정을 받았지만, 후속 보도는 찾기 어려웠다.

 

살충제 달걀로 인한 사회적 파장은 AI 때보다 훨씬 심각하다. 관련 농가나 업계뿐 아니라 우리 사회 전체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먹을거리 공포’가 확산되는 가운데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우리 사회에서는 먼 이야기로 들렸던 동물복지 농장까지 공공연히 논의된다. 이를 위해 가격 상승까지 감당할 수 있다는 소비자의 목소리도 적잖게 들린다. 

과거 달걀은 귀한 음식이었다. 명절 때 짚 꾸러미에 서너 알씩 담아 선물로 줄 만큼 대접받는 식품이었다. 농림축산식품부 통계에 따르면 1970년만 해도 1인당 한 해 달걀 소비량은 70여 개였다. 그러다 1980년 100개를 돌파하더니, 1990년 167개, 2000년 184개, 2010년 236개로 크게 늘었다. 지난해인 2016년에는 1인당 268개를 소비했다. 하루가 멀다 하고 먹는 생필품이 된 것이다. 

달걀 소비가 크게 늘어난 데 비하면, 가격은 별로 오르지 않았다. 달걀 10개 기준 소비자 가격은 1980~1990년대에 1500~ 2000원 사이를 오르락내리락했다. 이후 2000년대 들어 AI가 유행하면서 달걀 값이 꽤 상승했지만 가계가 직격탄을 맞을 정도는 아니었다. 축산유통종합정보센터 가격 동향에 따르면 AI가 터지기 전인 지난해 8월만 해도 저렴한 일반란(10개)의 경우 3000~5000원에 판매됐다. 


열악한 환경에서 닭 기르며 항생제에 의지

ⓒ시사IN 신선영
ⓒ시사IN 이정현

‘공장형 사육 시스템’은 폭발적으로 늘어난 축산물 소비량을 맞추기 위한 정부와 시장의 선택이었다. 농가는 좋든 싫든 시스템을 따라야 했다. 산란계 농장에서는 좁은 공간에 닭을 가둬 키우는 ‘배터리 케이지’가 도입됐다. 가로·세로 50㎝의 공간에 암탉 6~8마리를 키웠다. 암탉 한 마리에게 주어지는 공간은 A4 용지 3분의 2 크기(0.05㎡). 한 농가에서 이런 케이지를 12단까지 쌓아놓고 최대 수십만 마리씩 닭을 키웠다. 창문 하나 없는 ‘무창계사’에서 스트레스를 받은 닭이 서로를 쪼아 상처 입히는 걸 막기 위해 부리를 자르기도 한다.

열악한 환경에서 닭이 병드는 것을 막기 위해 항생제 투여는 일상이었다. 아예 항생제를 섞은 사료를 먹여 키웠다. 2011년부터 법으로 사료에 항생제를 첨가하는 것을 금지했지만, 금지한 것은 사료뿐이었다. 항생제 주사 등은 여전히 써왔다. 최근 살충제 달걀 파동 이후 이런 사실이 널리 알려지면서 무항생제, 친환경 달걀에 배신감을 토로하는 이들도 늘어났다.

여기서 잠깐 짚어볼 대목이 있다. 무항생제 축산물 인증제의 역사다. 우리 사회에서 공장형 축산에 대한 비판이 터져 나오기 시작한 것은 주로 2000년 이후다. 주로 열악한 사육 환경과 그에 따른 항생제 오남용에 대한 비판이었다. 당시 한국은 항생제 오남용 국가 1위라는 오명을 뒤집어썼다. 항생제 범벅인 가축분을 퇴비로 쓸 수 없다는 농가의 문제 제기도 잇따랐다. 그러자 2007년 정부는 무항생제 축산물 인증제를 실시한다.

당시 이는 획기적인 정책이었다. 무항생제 축산은 사실 2001년 미리 도입됐으나 자리를 잡지 못한 ‘유기 축산’으로 가기 위한 포석이었다. 유기 축산은 친환경 인증보다 훨씬 까다로운 절차를 밟아야 한다. 항생제나 성장호르몬은 물론이고 농약과 화학비료가 없는 사료를 닭에게 먹여야 한다. 닭 한 마리당 사육 공간도 0.22㎡로 기존 계사 공간(0.05㎡)더 넓다. 현재 논의되는 동물복지 농장의 전 단계쯤 된다.

정책은 현실을 따라가지 못했다. 더 나은 환경에서 사료 값은 더 들었는데 거꾸로 생산성은 떨어졌다. 달걀 가격을 두 배로 받아도 수지타산이 맞지 않았다. 상당수 농가들이 유기 축산 인증을 포기하는 사례가 속출했다. 궁극적으로 유기 축산으로 전환하려 했던 정부와 농가의 계획은 한계에 부딪혔고, 허점이 있는 무항생제 축산만 유지하다가 오늘날 된서리를 맞은 셈이다. 

정책이 실패한 자리에는 대규모 농가와 기업이 들어섰다. 정부는 일이 터질 때마다 현대화·대형화를 강조했다. 그 결과 닭 사육 두수가 크게 늘어나는 동안 오히려 양계 농가 수는 줄었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국내 달걀 생산 규모는 1990년 4076억원에서 2014년 1조8072억원으로 대폭 늘었다. 국내 산란계 농가 수는 1995년 2859호에서 2015년 1149호로 줄었다. 20년 만에 절반이 훨씬 넘는 농가가 사라진 셈이다. 그동안 대형 농가가 크게 늘어났다는 뜻이다. 농림축산식품부 2017년 2분기 가축동향조사에 따르면 산란계를 5만 마리 이상 사육하는 농가가 전체 35.2%에 달한다. 한 농가당 평균 사육 두수는 10만 마리를 훌쩍 넘는다. 

대형화된 산란계 농가 규모는 기업이 뛰어들기 딱 좋은 조건이었다. 2000년대 초·중반부터 풀무원, 오뚜기, CJ 등이 달걀 유통시장에 뛰어들었다. 지난해부터 육계시장을 쥐락펴락하고 있는 하림 역시 대형 마트와 SSM을 중심으로 달걀 유통시장에 진출했다. 양계 농가들은 기업들이 무리한 생산성 높이기로 출혈 경쟁에 내몰 것이라며 반대했지만, 흐름은 막을 수 없었다. AI나 위생 이슈 등이 발생할 때마다 ‘계열화 기업’이 관리하는 닭이나 달걀이 더 안전한 것 아니냐는 목소리가 비등했기 때문이다. 

계열화란 간단히 말해 기업의 하청을 받아 양계 농가들이 닭을 키우는 것을 말한다. 육계의 경우 농가의 90% 이상이 특정 기업 소속이다. 산란계 농가의 경우 아직 육계와 같은 계열화가 이루어지지는 않았지만 어떤 식으로든 기업과 계약을 맺고 달걀을 생산하는 농가가 점점 늘어가는 추세다. 농민단체 등에서는 이들 기업이 이윤을 극대화하기 위해 농가를 옥죄고 있다고 비판하는 반면, 하림 등 기업들은 안정적인 판매처를 보장한다는 점에서 계열화가 농가에 이롭다고 주장한다.

이제 지형이 바뀌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반복되는 재앙이 계기가 되었다. 기존 양계산업의 최대 이슈가 ‘농가 대 기업’이었다면, 이제 어떻게 하면 양계산업 전반이 ‘안전한 먹을거리’의 터전이 될 수 있느냐가 최대 관심사다. 주체마다 결은 다르지만 적어도 ‘공장형 밀집 사육’ 환경은 바꿔야 한다는 공감대가 모아진다. 농민단체와 학계는 물론, 정치권에서도 관련 논의가 잇따른다.

동물복지가 자칫 ‘달콤한 독약’ 될 수도

방향은 정해졌다. 문제는 돈과 속도다. 김영규 친환경농업인연합회 정책기획실장은 “조류독감 사태 등에 대한 후속 비용으로 해마다 1조원 가까운 돈이 쓰인다. 이제 이런 돈을 국민건강 비용으로 인식하고 동물복지 환경을 구축할 필요가 있다”라고 주장했다. 김 실장은 “정부가 쌀 농가를 위해 이중곡가제를 실시한 것처럼 친환경 유기 축산 농가에도 소득 보전을 해준다면 농가의 적극적인 참여도 이뤄낼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홍재 대한양계협회 회장도 〈시사IN〉과 인터뷰에서 “농가의 소득 보전이 이뤄진다면 동물복지 농장으로 바꿔나가는 데 동의한다”라고 말했다(오른쪽 상자 기사 참조). 

 

ⓒ연합뉴스8월11일 농민·소비자·시민단체 회원들이 서울 종로구 세종로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문재인 정부 농정분야 국정운영 5개년 계획 재수립’을 촉구하며 행진하고 있다.

국가 차원의 ‘푸드 플랜’이 절실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노무현 정부 시절 대통령 직속으로 꾸려졌던 ‘농어업·농어촌특별위원회’처럼 책임 있는 기구가 ‘거대한 전환’을 이끌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농민단체들은 문재인 정부가 7월19일 발표한 농업 분야 국정과제가 후보 시절에 내놓았던 공약(친환경 생태농업으로의 과감한 전환, GMO 표시제와 식품표시제도 강화 등)에 비해 한참 후퇴했다며 국정과제 재수립을 요구하고 있다. 아직 갈 길이 멀어 보인다.

동물복지는 자칫 ‘달콤한 독약’일 수도 있다. 계열화 기업이 기세등등한 축산업 구조에서, 잘못 가면 이들 기업의 배를 불리는 수단이 될 수도 있다. 불가피한 가격 상승으로 인한 대중적 반발을 어떻게 풀어가느냐도 숙제다. 이 논의가 거대한 전환의 첫 발자국이 될지, 요란한 빈 수레가 될지는 아직 알 수 없다. 되풀이되는 재앙 속에서, 어쨌든 멍석은 깔렸다.

 

기자명 이오성 기자 다른기사 보기 dodash@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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