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가 스티브 배넌 전 백악관 수석전략가를 내친 데는 존 켈리 백악관 비서실장의 진언이 결정적이었다는 후문이다. 켈리는 지난 몇 달간 파벌 간의 암투 및 정보 누설 등으로 어수선했던 백악관 기강을 확립하기 위해, 트럼프가 삼고초려 끝에 불러들인 해병대 사령관 출신이다. NBC 방송에 따르면, 켈리는 7월31일 취임한 직후 백악관 직원 200여 명을 모은 자리에서 근무 방침을 하달했다. “백악관 직원은 먼저 나라를 위해, 그다음으로는 대통령을 위해 하나의 팀으로 봉사해야 한다.” 특히 언론에 기밀을 유출하는 행위를 ‘범죄행위’로 다스리겠다고 천명했다. 백악관 공보국장으로 취임한 뒤 구설에 오른 앤서니 스캐러무치를 전격 해임한 사람 역시 켈리다.

ⓒREUTERS트럼프 대통령에게 스티브 배넌의 경질을 진언해 승낙을 얻어낸 존 켈리 백악관 비서실장.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5월부터 켈리(당시 국토안보장관)에게 백악관 비서실장직을 맡아달라고 여러 차례 간곡히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켈리는 트럼프에게 세 가지 조건을 요구했다. ‘백악관 비서실 인사에 대한 전권’ ‘대통령에게 유입되는 정보의 흐름에 대한 통제권’ ‘대통령 접견에 대한 통제권’ 등이었다. 이후, 트럼프에게 걸려온 모든 외부 전화는 백악관 전화 교환대를 거친 뒤 켈리의 승인이 떨어져야 대통령에게 연결될 수 있게 되었다. 대통령 집무실을 마음대로 출입하던 맏딸 이방카와 사위 쿠슈너도 지금은 켈리의 재가를 받아야 아버지를 만날 수 있다.

켈리는 백악관 입성 직후인 지난 7월, 스티브 배넌을 만나 결별 선언을 했다. 특히 8월12일 버지니아 주 샬러츠빌의 국수주의 폭동 사태로 백악관 차원의 수습책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켈리와 배넌은 정면충돌한다. 사실상 백인 우월주의자들을 두둔한 트럼프의 최초 발언으로 여론이 급속히 악화되자, 켈리는 “대통령의 최초 반응에 문제가 있고, 시정되어야 한다”라는 쪽으로 정리했다. 하지만 배넌은, 트럼프 대통령이 여론에 밀려 굴복하는 식으로 시정 발언을 내놓는 것은 “너무 늦은 데다 충분치도 않다”라고 주장했다.

배넌은 또한 진보주의 성향 〈아메리칸 프로스펙트〉와 인터뷰하면서 설화를 자초했다. 켈리는 트럼프 대통령에게 배넌의 경질을 진언해 승낙을 얻어냈다. 결국, 명예로운 자진사퇴를 희망하던 배넌은 불명예를 안고 백악관에서 쫓겨났다.

기자명 워싱턴∙정재민 편집위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