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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소하거나 야만적이거나, 늦여름에 읽기 좋은 책들

시사IN 편집국 webmaster@sisain.co.kr 2017년 09월 07일 목요일 제52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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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벨룽의 노래
아우구스테 레히너 지음, 김은애 옮김, 문학과지성사 펴냄

“죽여버리겠어요! 크림힐트는 생각했다. 멈출 수가 없었다.”

‘모두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다’고 맺어야 할 것 같은 대목에서 돌연 갈등은 시작된다. 주인공으로 여겼던 인물이 갑자기 살해되는데, 그 방식은 비열하기 그지없다. 복수가 복수를 낳고 양측 모두 정당성을 잃는다.
책은 게르만 민족의 옛 전승을 재구성했다. 독일에서는 권력에 대한 눈먼 충성을 독려했다는 이유로 2차 세계대전 이후 비판받기도 했다. 그러나 이야기 속 인물들이 힘 있는 자에게 무조건 복종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서사를 이끄는 것은 최고위 권력자들의 결정에 대한 다수 개인의 충동적 항명이다. 입체적 인물들은 활자 안에서 뛰놀며 사건을 더 잔인하고 예측하기 어렵게 만든다. 생소하고 야만적이기에 익숙하고 현대적인, 늦여름에 읽기 좋은 책이다.



엄마는 페미니스트
치마만다 응고지 아다치에 지음, 황가한 옮김, 민음사 펴냄

“치잘룸을 한 사람의 개인으로 봐줘. 어떠어떠해야 하는 여자애로 보지 말고.”

육아휴직 중인 친구들은 한숨 섞인 문자 메시지를 보내곤 했다. ‘아이를 어떻게 키워야 할지 모르겠어’라는 내용이었다. 저자 역시 친구로부터 비슷한 질문을 받았다. 페미니스트로 아이를 키우고 싶다는 친구의 요청에 따라 쓴 편지 열다섯 편을 묶었다.
한 가지 아쉬운 점. 제목이 부제로 삼은 ‘아이를 페미니스트로 키우는 열다섯 가지 방법’이거나 ‘부모는 페미니스트’였으면 더 좋았겠다. 아니면 원제(A Feminist Manifesto in Fifteen Suggestions)를 살리거나.
주 양육자가 ‘엄마’여야 한다는 신화에서부터 벗어나는 일이 성평등 육아의 시작일 테다. 엄마는 물론 아빠도 페미니스트가 될 수 있고 되어야 한다. 저자의 전작이 <우리는 모두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합니다> 아니었던가.




책을 직거래로 판다
이시바시 다케후미 지음, 백원근 옮김,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펴냄

“출판사와 서점이 도매업체를 거치지 않은 거래를 ‘직거래’라 부르고, 이를 더 줄여 ‘직(조쿠)’으로 부른다.”

제목만 보고 끌렸다. <시사IN>도 넓게 보면 책이다. 왜 책이 팔리지 않을까? 일본이나 한국이나, 잡지쟁이나 출판쟁이나 365일 마주하는 질문이다. 물론 일본 출판시장이 침체되었다고 하지만 지난해 판매량 기준으로 서적 6억1769만 부, 잡지 13억5990만 부가 팔려나갔다. 그럼에도 위기의 징후는 비슷하다. 온라인 구매 상승, 동네 서점 몰락, 도매상 균열이 그것이다.
출판업계 주간 신문 <신문화> 편집장을 역임한 저자가 일본에서 대표적인 직거래 출판사인 ‘트랜스뷰’의 재고 관리, 배송, 반품 등 구체적인 노하우를 담았다. 동네 단골 서점이 오래 지속되기를 바라는 독자가 읽어도 괜찮은 책이다. <시사IN>도 직거래로 팔 수 있을까 하는 얄팍한 호기심에 조금은 답을 찾았다.




일본회의의 정체
아오키 오사무 지음, 이민연 옮김, 율리시즈 펴냄

“아베 정권 뒤에는 일본회의가 있다. 그럼 일본회의 뒤에는 누가 있을까?”


‘일본회의’는 일본을 움직이는 대표적인 우익 로비단체로 ‘일본 우익의 대본영’이라 불린다. 숫자로 보는 일본회의의 영향력은 막강하다. 아베 총리가 2014년 3차 내각을 구성했을 때 각료 19명 중 15명이 일본회의 소속이었다. 2차 내각 때도 80%가 여기 속했다. 일본회의 산하단체인 ‘국회의원간담회’에 가맹한 의원이 280명 정도이고, ‘지방의원연맹’ 소속 의원은 1700여 명에 이른다.
일본의 대표적 독립 저널리스트인 저자는 일본회의의 근원을 파고들었다. 1997년 ‘일본을 지키는 국민회의’와 ‘일본을 지키는 모임’이 통합하면서 결성된 모임이다. 이들은 <신편 일본사> 편찬운동(1985), 원호 법제화 운동(1978), 건국기념일 지정 운동(1966) 등을 이끌어왔다.




로컬 지향의 시대
마쓰나가 게이코 지음, 이혁재 옮김, 알에이치코리아 펴냄

“개인은 목적지향적인 생산적 인간에서, 시간의 변화와 과정을 중시하는 소비적 인간으로 변하고 있다.”


지방이 붕괴할 것이라는 경고는 어제오늘 이야기가 아니다. 한국고용정보원 조사에 따르면 30년 내 소멸할 우리나라의 지역이 시·군은 84개, 읍·면·동은 1383개에 달한다고 한다. 초고령화 사회에 진입한 일본에서는 ‘지역에서 희망을 찾자’라는 유의 구호가 오래 전부터 떠들썩했다.
저자는 후쿠이, 가미야마 등 일본의 소도시를 비롯해 자신만의 방식으로 성장하고 있는 마을을 취재했다. 지방이 가진 자원으로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전략이 필요하다고 본다. 그것이 포스트 산업화 시대에 지방이 살길이라는 주장이다. 책을 읽는 내내 고개를 끄덕이게 되지만, 한국을 떠올리는 순간 멈칫멈칫하게 된다. 책에서 말하는 ‘유연한 개인주의자’들이 이제 막 태동하는 중이어서일까.



희망을 향한 끝없는 행진, 난민
하영식 지음, 사계절 펴냄

“세계는 이들과 함께 어느 정도까지 고통을 나눌 것인가.”


인류가 전쟁을 시작한 이래 동서양을 막론하고 ‘난민 신세’로 전락한 이들이 있었다. 최근에는 가난에 질려 더 잘사는 곳으로 가기 위해 불법으로 국경을 넘는 이들도 생겨났다.
이 책은 시리아, 쿠르드, 아프리카, 티베트, 우크라이나, 체첸 등지에서 일어난 분쟁의 현장을 담았다. 또 가난과 전쟁에 찢긴 땅을 벗어나 그리스, 이탈리아, 스페인 등 유럽으로 향하는 여정에서 마주한 일들을 소개한다.
2015년 한 해 동안 난민 100만명이 유럽으로 들어갔다. 터키에서 그리스로 배를 타고 넘어간 인원만 84만명에 이른다. 이때 해역에서는 4000명이 숨졌다. 국제분쟁 전문기자인 저자는 현장에서 마주한 난민 문제를 분석하고 그들의 상황을 이해할 수 있게 돕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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