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는 외식이라면 으레 짜장면 한 그릇이었다. 유치원을 겸해서 다닌 태권도장에서 빨간 띠를 딴 날도, 초등학교 입학식 날도 중국집에 가서 짜장면을 먹었다. 1973년생인 필자에게도 짜장면은 ‘솔 푸드(soul food)’였다. 중국인을 통해 전파됐지만 정작 중국 본토에는 없는 음식이라는 묘한 자부심도 한몫했다.

이 자부심은 1992년 한·중 수교가 이뤄지면서 깨졌다. 당시 청년들은 드디어 무협의 본고장을 방문한다며 베이징으로 상하이로 내달렸다. 베이징 시내 한복판에서 한 식당을 목격해야만 했다. ‘노북경작장면(老北京炸酱面).’ 다들 놀랐다. ‘작장면? 그럼 자장몐이라고 읽나? 응? 짜장면? 짜장면은 우리나라 것 아니었어?’ 인터넷이 활발하던 시절이 아닌지라, 중국에 진짜 짜장면이 있다는 말은 도시 괴담 수준이었다.

처음 맛본 원형의 짜장면은 당혹스러웠다. 잘 뽑은 수타면에 볶은 장 한 종지, 대여섯 종지의 채소가 나왔다. 점원은 춘장을 면 한가운데 꽃봉오리처럼 얹고서 달그락거리며 채소를 투하하고는 가버렸다. 일단 한국 짜장면과 달리 장이 매우 적었다. 큰 수저로 가득 푼 정도의 양을 겨우겨우 비볐는데, 그래도 짰다. 장에서 콩 볶은 향이 흘러나왔는데 투박했지만 좋았던 기억이 있다.

ⓒ전명윤 제공중국에는 한국의 짜장면과는 다른 ‘작장면’이 있다.

한국에 돌아와 이 소식을 퍼트렸는데 다들 반신반의했다. 애써 찍은 사진을 보여줘야 믿었고, 베이징의 짜장면이 한국의 그것에 비해 얼마나 별로인지 듣고 싶어 했다.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중국은 뭐든 한국보다 뒤떨어졌다고 믿었고, 그래야 속이 편한 사람들이 많았으니까.

짜장면을 향한 모험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홍콩 유명 면요릿집에 갔더니 ‘교토 짜장면(京都炸酱麵)’이라는 메뉴가 눈에 띄었다. ‘교토 짜장면이라니 일본에도 짜장면이 있나?’ 순간 호기심이 크게 일었고,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이미 일본 교토의 거리를 헤매고 있었다.

교토 짜장면을 찾는 길은 멀고 험했다. 우동집-모밀집-라멘집 순서로 뒤졌는데 어디에도 없었다. 마지막 날쯤 터덜터덜 들어간 중국집에서 극적으로 ‘교토 짜장면’이라는 메뉴를 발견했다. 화교가 하는 작은 식당이었는데, 한가한 시간이라 주인에게 이것저것 물어볼 수 있었다.

“교토에도 원래 짜장면이 있었나요?” “무슨 소리야, 교토에 짜장면이 왜 있어.” “여기 메뉴에 있잖아요. 교토 짜장면.” 흰 주방 옷을 입고 있던 늙은 주인은 잠시 당황하더니 이렇게 말했다. “이건 교토가 아니라, 중국어 징두(京都)라고 읽는 거야. 수도라는 뜻이지. 바로 베이징을 말하는 거야.” “이게 교토가 아니라 베이징, 즉 ‘베이징 짜장면’이라는 뜻이라고요?”

한국 짜장면 닮아가는 베이징과 홍콩, 일본 짜장면

그렇게 교토 짜장면 여행은 우스꽝스럽게 마무리됐다.
하지만 베이징 서민들의 가정요리였던 짜장면이 한국 전역은 물론 홍콩과 일본에도 넓게 퍼진 음식이었다는 사실은 알 수 있었다. 한국의 짜장면이 캐러멜을 가미해 새카만 데 비해 베이징·홍콩·일본의 짜장면은 노란색에 가깝다는 게 차이점이었다. 가장 흥미로운 대목은 최근 한국식 짜장면이 본토로 역수출되는 중이라는 점이다. 베이징과 홍콩, 그리고 일본 짜장면이 한국 짜장면을 닮아간다. 장 색깔은 점점 짙어지고, 맛은 달콤해진다.  

중국에서 건너온 짜장면이 이 땅에서 동거한 지도 100년도 지났다. 이제 짜장면이 우리 것인지 아닌지 논하는 일도 큰 의미가 없어 보인다. 아마도 십수 년 뒤에는 ‘서울 짜장면’이라는 메뉴를 베이징 작장면집에서 맛볼 수 있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기자명 환타 (여행작가·<환타지 없는 여행> 저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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