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B조 경비원이 자주 바뀌었다. 얼굴이 익을라치면 퇴사 공고가 올라왔다. 이사 온 지 3년째. 내가 사는 아파트에는 경비원이 2명이다. A조 담당자는 처음과 그대로인데 B조 경비원은 당장 머릿속에 스쳐가는 얼굴만 네댓 명이다. 두 달 만에 그만두는 이도 있었다. 언젠가 우연히 마주친 관리소장에게 이유를 물었지만 마땅한 답변을 듣지 못했다.

ⓒ시사IN 양한모

궁금증이 풀린 건 최근의 일이다. 얼마 전 새로운 공고가 붙었다. 쓰레기 분리수거 일자를 일주일에 두 번으로 조정한다는 내용이었다. 그런가 보다 하며 읽어 내려가는데 눈에 띄는 구절이 있었다. 방침이 바뀐 데에는 ‘경비원의 잦은 퇴사’가 있었다. 그랬다. 원인은 분리수거였다. 이전까지는 언제든 쓰레기를 내놓을 수 있었다. 보통 일주일에 하루, 정해서 하는 다른 아파트와 달라 의아했던 점이다. 입주민으로서는 편한 점이지만, 언젠가 밤늦게 재활용 쓰레기를 분리 배출하러 갔을 때 경비원이 언짢은 표정을 보인 뒤로는 삼갔다. 내 입장에선 여유 있는 시간을 활용했을 뿐이지만 누군가에겐 노동의 연속이었던 셈이다.

이런 일도 있었다. 어느 날 갑자기 분리수거장에 비닐류만 모아두는 자루가 통째로 없어졌다. 음식물 등 이물질이 섞인 비닐이 하도 많아 없애기로 했다는 설명이었다. 엉성한 분리 배출의 뒤처리는 그들의 몫이었다. 그 전부터 몇 차례, 주의를 당부하는 글이 수거장 입구에 붙었다. 주민들의 불만이 쌓였고 다시 부활했다.

채용정보 사이트에서 아파트 경비원 공고를 찾아보니 주된 업무가 주차관리, 주변정리 등으로 간단히 나와 있었다. 2년 전 춘천시민연대가 춘천 지역 경비원 117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을 보면 경비 노동자들이 가장 어려워하는 업무가 ‘분리수거 및 청소, 조경작업 등 아파트 환경관리 업무’였다. 다음으로 ‘택배 등 아파트 입주민들을 위한 민원 서비스’를 꼽았다. 얼마 전 이웃 아파트에서 경비원이 분리수거를 하다 주삿바늘에 찔렸다는 소식을 들었다.

올여름, 폭염을 지나며 경비실의 에어컨 문제가 주목받았다. 주민의 비인격적 대우로 한 경비원이 자살한 후, 경비 노동자들의 여건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최근의 일을 겪으며 보다 손쉬운 길도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내 삶의 터전이, 누군가에게 유쾌한 일터였으면 하는 바람은 누구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이번에 새로 온 B조 경비원을 오래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기자명 임지영 기자 다른기사 보기 toto@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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