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지 않고 배불리 먹고 싶다〉
구리하라 야스시 지음
서영인 옮김
서유재 펴냄
‘청년 흙밥’을 취재할 때 이 책을 처음 보고 화들짝 놀랐다. 일종의 금기가 책 제목으로 떡하니 박혀 있었다. ‘일하지 않고 배불리 먹고 싶다고? 안 돼. 그건 죄악이야.’

저자는 일하지 않는 자다. ‘세상 쓸모없는’ 아나키즘 연구를 하느라 1년 수입이 10만 엔(약 100만원)에 그친다. 부모의 연금에 기대 살며, 정규직 일자리가 없어서 애인에게도 차였다. 물론 시간당 값을 매기는 노동에 종종 투입됐다. 대학에서 비정규직 강사로 뛰고, 매일 저녁을 굶으며 일하느라 3주 동안 체중 5㎏이 빠지면서까지 열심히 아르바이트도 했다. 저자는 묻는다. 이렇게 당장 벌어 당장 먹는 것 말고, 그냥 내가 하고 싶은 일, 즉 읽고 싶은 책 읽고 좋아하는 공부를 하고 살면서도 배불리 먹을 순 없나? 바이올린을 켜며 놀던 베짱이가 굶어죽는 건 마땅한 일인가? 나는, 일하지 않는 우리는 사회에 쓸모없는 인간인가?

이런 망상에 참다못한 저자의 (전) 애인이 폭발했다. “하고 싶은 일만 하겠다니 다 큰 어른이 할 소리야, 그게?” 저자는 물었다. “하고 싶은 일을 하지 않는다면 무슨 재미로 인생을 살아가?” 애인은 대답했다. “당연히 쇼핑이지. 어른들은 모두 괴로운 일이 있어도 참고 돈을 벌고, 그것을 쓰는 것으로 보람을 느끼는 거야.” 저자는 깨달았다. “단지 일하지 않기 때문만이 아니다. 노동과 함께 소비를 방기했기 때문에 일하지 않는 자는 이토록 사회악 취급을 받는다.”

소비 중심의 자본주의 세상에서 ‘사회악’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또한 빚이 필수다. 일을 하기 위해 학자금을 대출해서라도 대학 교육을 받고, 직장인이 되어서는 매달 신용카드 청구액을 노동의 원천으로 삼으며, 은행 대출로 30평대 아파트를 마련하고 또 그것을 갚기 위해 열심히 일함으로써 모두가 인정하는 어엿한 사회인이 된다. 저자는 이를 ‘미친 사회’로 규정했다. 그리고 귀띔한다. 일하지 않고 배불리 먹기를 꿈꾸는 사람들이야말로 이 미친 사회에 균열을 낼 수 있는 존재들이라고.

기자명 변진경 기자 다른기사 보기 alm242@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