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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가난한 사람이 보수정당에 투표하는가

진보냐 보수냐, 정치 성향은 어떻게 만들어지는 것일까? 신경정치학은 정치 성향이 어느 정도까지는 선천적으로 결정된다는 연구 결과를 내놓는다. 정재승 교수는 세 번의 대선에서 신경정치학 실험을 한 결과를 발표했다.

천관율 기자 yul@sisain.co.kr 2017년 08월 30일 수요일 제51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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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왜 보수와 진보라는 서로 다른 정치 성향을 갖는가. 왜 가난한 사람이 보수 정당에 투표하는가. 부자가 진보 정당을 지지하는 ‘강남 좌파’ 현상은 어떻게 전 세계에 그리도 많은가. 왜 유권자는 나이가 들수록 보수적이 되는가. 부동층은 대체 어떻게 공략해야 우리 후보를 찍어주는가. 정치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고민해보았을 오랜 수수께끼들이다. 정치가, 언론인, 여론 분석가, 정치학자들이 저마다 가설을 들고 답을 찾아다녔다.

이 수수께끼 풀이에 도전하는 과학자들이 있다. 뜬금없어 보여도 꼭 그렇지만은 않다. 정치의 오래된 수수께끼들은 결국 ‘우리가 왜 그런 선택을 하는가’의 문제다. 그리고 인간의 선택은 과학의 연구 대상이다. 이들의 도전을 소개한다.


정재승 카이스트 바이오및뇌공학과 교수는 뇌과학자다. 뇌에서 일어나는 선택의 메커니즘이 그의 연구 주제다. ‘인간의 뇌는 어떤 과정을 거쳐 정치적 선택을 내릴까’라는 질문을 던질 수 있다. 이런 연구 분야를 ‘신경정치학’이라고 부른다. 정 교수는 5년에 한 번 돌아오는 대선마다 신경정치학 실험을 설계해 연구한다. 2007년에 시작해 2017년, 세 번째 실험 결과가 나와 논문 발표를 앞두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 이슈로 정국이 떠들썩하던 지난해 연말, 정 교수는 아주 독특한 신경정치학 특강을 했다. 수강생은 사실상 한 명이었다. 질문이 유난히 많고 학습능력이 탁월했다. 정 교수가 더 인상적으로 기억하는 대목은 따로 있다. “이분이 내 얘기를 듣고는 본인이 잘못한 사례를 자기 입으로 쭉 말씀하시더라고요. 조언을 구하는 리더를 여럿 만나봤지만, 아픈 지적을 들으면 결국 자기변명을 하는 리더가 아주 많습니다. 그런데 이분은 그런 게 없더라고요.” 이 독특한 학생은 올해 대선에 출마했고, 지금은 청와대에 있다.

“우리 뇌는 생각보다 원시적인 방법으로 리더를 고릅니다.” 8월16일 자신의 개인 연구실에서 만나, ‘방송인’답게 능숙하게 사진 촬영에 응한 후 마주앉은 정 교수가 말했다. “미국에서 실험 대상자들에게, 다른 주의 얼굴을 처음 보는 하원의원 선거 후보들을 1초 힐끗 보여주고 누가 더 유능해 보이는지 물어보면, 결과가 실제 투표와 거의 일치해요. 몇 주간 캠페인을 보고 심사숙고한 투표 결과와 1초짜리 인상평 결과가 사실상 같다는 거죠. 심지어 아이들에게 물어도 그렇습니다. 후보들 사진에 선장 모자를 씌우고 ‘누구 배에 타고 싶어?’라고 물어도 실제 선거 결과에 꽤 근접하게 나옵니다.”

왜 그럴까. 정 교수는 세계적인 뇌과학자 안토니오 다마지오의 ‘체감표지 가설’을 빌려 설명한다. 말하자면 ‘뇌의 즐겨찾기’ 가설이다. 우리가 모든 상황에서 최선의 합리적 판단을 내리려 들다가는 시간과 에너지를 너무 많이 잡아먹어서 오히려 최악의 결과를 낼 수 있다. 손해를 보거나 보상을 받는 등 과거 경험에 따라 뇌에 ‘즐겨찾기’가 새겨지면, 이제는 모든 정보를 심사숙고하는 대신 특정 신호에 특정 반응을 곧바로 꺼내 쓴다.

ⓒ시사IN 조남진
정재승 카이스트 바이오및뇌공학과 교수는 부동층 성향 조사를 통해 ‘뇌의 즐겨찾기 가설’을 검증했다.

이 가설이 옳다면, 유권자의 판단 회로는 굉장히 빠르게 작동한다. 정치인은 이 초고속 즐겨찾기 회로에 좋은 이미지로 올라타야 한다. 이름을 듣는 순간 가장 먼저 떠오르는 형용사 키워드를 긍정적으로 만드는 게 좋은 공약보다 어쩌면 더 중요하다. 우리 뇌는 옳고 그름보다는 좋고 나쁨에, 좋고 나쁨보다는 이득이 있고 없음에 더 민감하게 반응한다. 옳고 그름을 판단할 때조차도, 직관이 심사숙고를 앞선다.  

그러니 신경정치학자에게 정치인의 메시지 스타일로 가장 나쁜 사례를 수집하라고 한다면, 그 연구자는 거의 틀림없이 변호사를 예로 들 것이다. 옳고 그름에 집착하고, 상대의 주장에서 허점을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고, 세세한 디테일에서 승부를 내려 한다. 2016년까지 변호사 출신 정치인 문재인의 메시지 스타일이 거의 정확히 이랬다. 2013년 노무현·김정일 정상회의록 공개 논란, 2016년 10월 송민순 전 외교부 장관 회고록 논란, 2016년 11월 JTBC 손석희 앵커와의 단독 대담 등 ‘메시지 참사’로 불릴 만한 몇 차례 사례에서, 문 대통령은 신경정치학의 기본 원칙을 신기할 만큼 잘 피해갔다. 정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신경정치학 관점의 조언을 받은 후에 문 후보가 <썰전>에 나갔는데, 접근법이 완전히 달라져서 놀랐어요. 학습능력이 좋고 조언을 들으려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죠.”

이 ‘뇌의 즐겨찾기 가설’은 당파성 강한 유권자에게만 해당하는 것은 아닐까. 진보든 보수든 정치 성향이 뚜렷한 유권자는 굳이 심사숙고할 필요 없이 간단한 표식만으로 결정하지만, 부동층은 훨씬 더 많은 정보를 놓고 심사숙고하지는 않을까. 그렇지 않다는 게 정 교수 연구팀의 결과다. 부동층도 비교적 초기에 후보에 대한 호불호를 형성한다. 그 흐릿한 호불호는, 격렬한 선거 캠페인과 숱한 돌발 이슈에도 불구하고, 놀라울 정도로 안정적으로 유지된다.

정재승 교수와 마인드브릭 디자인랩(신경과학 스타트업)은 올해 1월께부터 부동층 피험자를 모집했다. 아직 대선 구도조차 불투명하던 시기였다. 리얼미터와 제휴해 전화 4만6992통을 걸어 4363명이 응답하는 대형 여론조사를 돌렸다. 그중에서 부동층을 추리고, 거기서 실험에 참가하겠다는 부동층을 다시 추리고, 결국 실제로 실험장에 나타난 부동층 유권자가 최종 실험 대상이다. 그게 106명이었다. “이런 실험에선 상당히 큰 숫자라고 보면 됩니다(웃음).”

유권자 스스로도 감추려 하거나 알지 못하는 호불호를 어떻게 측정한다는 걸까. “아주 단순하게 설명하면 이렇습니다. 모니터 왼쪽에는 ‘문재인’, 오른쪽에는 ‘안철수’라고 쓰인 버튼을 띄웁니다. 피험자들에게 얼굴 사진을 보여줍니다. 문재인 얼굴이면 왼쪽 버튼을, 안철수 얼굴이면 오른쪽 버튼을 클릭하면 됩니다. 아주 쉽죠.”

정 교수는 실제 실험 이미지를 띄워가며 말을 이어갔다. “그다음으로, 왼쪽 버튼에 ‘문재인 또는 좋다’, 오른쪽 버튼에 ‘안철수 또는 싫다’라고 써요. 자, 그 상태에서 문재인 사진이 모니터에 뜬다고 생각해보세요. 피험자는 당연히 왼쪽 버튼을 눌러야 합니다. 그런데 이 사람이 부동층이라곤 했지만 문재인을 내심 싫어한다면? 왼쪽 버튼을 누르는 속도가 느려집니다. ‘좋다’라는 단어는 규칙상 아무런 상관도 없지만, 그래도 자기 마음이 브레이크를 걸거든요.”

문재인을 내심 좋아하는 피험자라면, 사족으로 달린 ‘좋다’에 거의 방해받지 않는다. 사족이 없는 실험의 반응시간과 차이가 없다. 하지만 내심 싫어하는 피험자라면 얘기가 다르다. 많이 싫어할수록, 더 느려진다. 거꾸로 문재인을 좋아하는 피험자라면, ‘문재인 또는 싫다’라는 보기 앞에서 더 오래 주저한다. 반응시간을 측정해봐도 마우스 궤적을 측정해봐도 결과는 같다. 나도 모르는 나의 호불호가 측정 가능하다.

정재승 교수가 2017년 대선에서 부동층 유권자 106명을 면접 조사한 결과를 보면
‘진짜 부동층’은 셋 중 한 명 정도였다. ‘문재인 선호’는 48.9%, ‘안철수 선호’는 14.9%였다.

이 실험을 조합(‘문재인 또는 싫다’ 버튼)과 좌우 위치(문재인 버튼을 오른쪽으로)를 바꿔가며 반복하면 아주 흥미로운 데이터를 얻을 수 있다(오른쪽 그림). 가운데 점선이 문재인·안철수 두 후보에 대해 선호도가 정확히 중립인 지점이다. 여기서 왼쪽으로 기울면 문재인 선호, 오른쪽으로 기울면 안철수 선호다. 중앙에서 더 멀어질수록 선호의 강도가 크다는 의미다. 통계 보정 결과, 점선 주위에 몰린 ‘중립 성향’은 36.2%였다. 부동층 중에서도, ‘진짜 부동층’은 셋 중 한 명 정도였다. ‘문재인 선호’는 48.9%, ‘안철수 선호’는 14.9%였다. 여론조사에서 부동층이라고 응답하는 유권자들도, 절반 정도는 문재인 후보에게 좀 더 기울어져 있는 상태였다.

현실정치 변수를 전혀 고려하지 않은 ‘사진 짝짓기 놀이’가 과연 실제 선거에서 의미가 있을까. 연구팀은 대선이 끝난 후 피험자들에게 실제 투표 결과를 요청했다. 실험 결과와 비교해보니 일치도가 78.6%였다. 대선이 100여 일이나 남은, 선거구도조차 확정되지 않은 시기에, 사진과 보기를 짝짓는 시간을 잰 결과가 부동층 피험자들의 표심을 80% 가까이 예측했다.

부동층 성향 조사, 실제 투표와 80% 정도 일치

정재승 팀은 지난 4월에 홍준표 후보까지 추가하여 유사한 실험을 한 번 더 수행했다. 그 실험의 부동층 표심 예측 결과는 정확도 82.3%였다. 이 4월의 데이터를 기준으로, 리얼미터와 함께 실제 선거 결과 예측을 시도했다. 그 예측 값은 문재인 42.7% 홍준표 22.8% 안철수 19.1%였다. 실제 선거 결과는 문 41.1% 홍 24% 안 21.4%였다. 본인도 자각하지 못할 만큼 흐릿한 호불호도, 전쟁 같은 선거 캠페인 기간을 상상 이상으로 잘 버텨낸다. 이들에게 ‘즐겨찾기’를 설정하는 초기 입력 값은 점점 더 중요해진다. 기자는 80% 확률로 투표로 이어지는 부동층 데이터라면 영혼이라도 팔아 구하려 들 선거 전략가를 몇 떠올렸다.

정치에 대해 탐구하는 과학은 부동층보다 더 넓은 대상에 질문을 던진다. ‘왜 누구는 진보주의자, 또 누구는 보수주의자가 되는가’라는 질문이 그것이다. 이에 답을 찾으려면 여러 학문의 협업이 필요하다. 우선은 다시 신경정치학부터 시작하자.

“진보주의자와 보수주의자는 뇌가 좀 달라요.” 정 교수가 말을 이었다. “똑같은 자극에도 보수주의자의 아미그달라(amygdala·편도체)가 더 민감하게 반응합니다. 여기는 공포 반응을 관장합니다. 보수주의자가 공포에 더 민감하죠. 반대로 진보주의자는 인슐라(insula·뇌섬)가 더 민감하게 반응합니다. 여기는 역겨움을 관장하는데, 사회적 불공정을 볼 때도 반응하지요. 이들은 강자의 특권이나 약자의 부당한 고통에 뇌가 더 민감합니다.” 정치 노선이 오로지 개인의 후천적 선택이며 합리적 개인은 두 노선을 이슈에 따라 넘나들 수 있다는 통념에, 신경정치학은 의문을 제기한다.

이 바통을 이어받는 것은 사회심리학이다. 서구 과학계는 정치 성향이 어느 정도까지는 선천적으로 결정된다는 연구를 여럿 생산해내고 있다. 가장 유명한 연구 중 하나는 2003년에 나왔다. 사회심리학자 존 조스트 등 연구자 네 명이 발표한 결과는 이랬다(크리스 무니의 저서 <똑똑한 바보들> 3장에서 재인용). 진보주의자에 비해 보수주의자들은 더 성실하다. 죽음을 더 두려워한다. 인지적 종결욕구가 더 강하다. 즉, 애매모호하고 불확실한 상황을 끝내고 싶어 하는 성향이 더 강하다. 새로운 경험에 덜 개방적이다. 다시 말해, 더 폐쇄적이다.

논문 저자들은 “불확실성과 두려움을 해소하고 싶은 인간의 깊은 욕구”를 보수주의의 뿌리로 보았다. 보수주의자의 뇌가 두려움에 더 민감하다는 신경정치학의 발견과 접점이 있다. 반대로 진보주의자를 가장 잘 특징짓는 심리적 특성은 ‘개방성’이다. 지적 유연성, 호기심, 새로운 경험에 열린 마음, 위험 감수 성향 등을 포괄하는 성격 특성이다. 정재승 교수도 비슷한 말을 했다. “오픈마인드(개방적)일수록 더 진보적인 경향은 여러 연구에서 측정됩니다.”

그런데 왜, 두려움과 종결욕구는 보수주의자의 특징이고 불확실성과 개방성은 진보주의자의 특징이 되었나. 신경정치학과 사회심리학은 다른 연구 방법을 사용해 비슷한 결론에 도달했지만, 왜 그런지를 밝히는 것은 이 접근법으로는 가능하지 않다. 여기서부터 연구자들은 ‘진화’의 관점에 기댄다. 도덕 심리학자인 조너선 하이트는 인간이 잡식동물이라는 데 주목한다.

잡식동물에게는 특유의 딜레마가 있는데, 새로운 음식에 얼마든지 도전할 수 있는 가능성과, 정보가 없는 음식에서 독과 기생충과 미생물의 위협을 받아야 하는 가능성이다. ‘새로운 음식에 개방적인 전략’은 더 많은 영양분과 더 많은 위험을 동시에 제공한다. 반대로 ‘새로운 음식을 두려워하는 전략’은 더 안전하고 더 배고프다. 장단점이 있는 두 태도는 둘 다 현대 인류에 남아 있다. 더 개방적인 성향이 진보주의로, 더 두려움에 민감한 성향이 보수주의로 이어진다고 하이트는 본다.

ⓒ김흥구
전중환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는 국내에서 진화심리학으로 처음 박사학위를 받은 연구자다.
그는 진보와 보수의 쟁점이 경제 영역, 사회집단 차별 영역 그리고 번식 영역에서 각각 형성된다고 본다.

“글쎄요. 저는 여전히 더 나은 설명이 있을 것 같습니다.” 한국심리학회 연차학술대회가 열린 8월17일 세종대학교. 대회 첫날 강연자 중 한 명으로 초대된 전중환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가 대회장 인근 카페에서 특유의 시니컬한 문장으로 말했다. 전 교수는 한국에서 진화심리학으로 처음 박사학위를 받은 연구자다. 이 학문의 개척자 중 한 명인 데이비드 버스가 그의 스승이다.

그는 좌우 일차원 축으로 진보와 보수를 구분할 수 있다는 통념에 회의적이다. 대신 그가 선호하는 설명은 이렇다. “최신 연구들을 보면, 사람에게는 쟁점이 형성되는 영역이 적어도 세 개가 있다고 합니다. 경제 영역, 사회집단 차별 영역 그리고 번식 전략 영역. 셋 다 진화적으로 중요하기 때문에 사람은 각각의 영역에서 어떤 전략을 택할지 신중하게 고려하죠. 그런데 실험을 해보면 이 셋이 같이 움직이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경제 영역에서 진보적이라고 그 사람이 사회집단 영역에서도 진보적이라는 보장은 없습니다.”

‘가난한 보수’와 ‘엘리트 진보’가 발생하는 이유

이런 의미다. 경제 영역에서 가난하거나 학력·인종적으로 취약한 사람들은 자원 재분배를 지지하는 성향이 더 높다. 진보적으로 분류된다. 하지만 이 영역에서 진보적인 가난한 백인은 사회집단 영역에서 보수적일 수 있다. 성·인종·종교 등 집단 간 차별을 유지하는 것이 자기에게 더 유리하기 때문이다. 이는 보수의 태도다. 번식 전략은 어떨까. 가난한 남성이라면 성적으로 개방적인 사회에서 추가적인 이익을 볼 가능성이 높지 않다. 성적 엄숙주의를 지지하는 보수파가 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가난한 사람이 보수당을 찍는 것이 비합리적이라고들 흔히 말하는데, 경제 정책만 보면 그럴지도 몰라요. 하지만 보수당은 사회집단 간 차별을 유지해주기 때문에 어떤 가난한 사람에게는 중요한 이익을 제공합니다. 더욱이 성적 엄숙주의도 가난한 사람에겐 상대적으로 도움이 되지요. 세 가지 쟁점 영역 중 둘에서 보수당 노선과 일치한다면, 그 사람이 보수당 지지자가 될 확률은 낮지 않죠. 신기하거나 비합리적인 일이 아닙니다. 정치적 판단이 이루어지는, 진화적으로 중요했던 영역이 적어도 셋이 있다는 접근법을 택할 때, 미스터리라고 생각했던 현상이 꽤 명쾌하게 설명됩니다. 트럼프를 당선시킨 쇠락한 백인 노동계층을 이 관점으로 다시 보면 어떨까요.”

그렇다면 ‘강남 좌파’는? “마찬가지죠. 상속자보다는 고학력자와 같이 자기 능력으로 출세한 사람을 생각해봅시다. 이 사람은 경제 영역에서 자원 재분배 정책으로 손해를 볼 수 있어요. 하지만 사회집단 차별이 사라질수록 대단히 큰 이득을 봅니다. 개인 능력이 있기 때문에, 연령이든 지역이든 인종이든 종교든 자신이 유리하지 않은 사회적 차별이 철폐될수록 이익이죠. 어느 나라건 고학력자의 진보 성향이 두드러지는 것은 특히 이런 이유라고 봅니다.”

세 쟁점에서 보수당은 각각 경제적 자유주의, 차별 묵인, 성적 엄숙주의를 대변한다. 반면 진보당은 자원 재분배, 차별 철폐, 성적 자유주의를 대변한다. 그리고 어떤 사람이 진보당과 보수당 중 누구를 지지할지는, 세 쟁점에서 그가 가장 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는 노선이 무엇인지에 따라 정해진다. 세 쟁점에서 일관성 있는 진보·보수의 태도는 오히려 예외다. 진화적으로 인간이 중요하게 여기는 영역에서 각각의 정치적 판단이 이루어지고, 그 조합이 일종의 확률적 조건으로 개인에게 주어진다. 전중환 교수가 들려준 이 진화적 접근법이 기존 정치이론을 대체할 만한지는 아직 알 수 없다. 하지만 미스터리로 불리던 질문들에 꽤 일관성 있는 대안 가설을 던지는 것은 분명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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