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생산 거점을 해외로 옮기는 방안을 검토할 수밖에 없다.” 현대·기아·한국GM·르노삼성·쌍용 등 국내 완성차 5개사 모임인 한국자동차산업협회가 8월10일 낸 성명의 일부다. 이 기업들이 해외 이전을 언급한 것은 기아자동차 통상임금 소송 1심 판결이 코앞에 다가와서다. 금속노조 기아차지부 조합원 2만7458명이 2011년 1차 소송을, 조합원 13명이 2014년 2차 소송을 제기했다. 기아차는 자신들이 패소할 경우 부담해야 할 비용이 최대 3조원이라고 주장한다. 서울중앙지법 민사41부(재판장 권혁중 부장판사)는 8월17일 선고 예정이던 1심 판결을, 원고 명단을 보완하라며 연기했다. 이르면 8월 말 1심 선고가 날 예정이다.

광주 서구 기아자동차 광주2공장 조립 라인에서 노동자가 차량을 조립하는 모습. ⓒ연합뉴스

기아차 통상임금 소송은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으로 인정해달라는 소송 중 하나다. ‘통상임금’이란 연장·야간·휴일근로수당이나 연차휴가 미사용 수당 등 각종 수당을 계산할 때 쓰는 임금 개념이다. 근로기준법 제56조는 법정 근로시간(1일 8시간, 1주 40시간)을 초과해 연장·야간·휴일근로를 한 노동자에게는 사용자가 통상임금의 1.5배를 지급하도록 했다. 통상임금이 한 시간에 1만원이라면 법정 근로시간을 초과한 연장·야간·휴일근로를 했을 때는 한 시간에 1만5000원 이상을 줘야 한다는 얘기다. 힘든 노동에 대한 보상이기도 하지만, 사용자가 비용 부담 때문에라도 노동자에게 초과근로를 시키지 않게 하려는 취지다.

그런데 노동자들이 그동안 회사가 통상임금에서 정기상여금을 빼고 계산해 수당 등을 지급한 게 잘못됐으니 차액을 돌려달라고 소송을 낸 것이다. 기아차의 경우 두 달에 한 번 정기상여금(기본급의 750%)이 나오는데, 이제까지 통상임금을 계산할 때 이 금액을 포함하지 않았다. 원고인 금속노조 기아차지부를 대리하는 김기덕 변호사(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는 소송의 취지를 이렇게 설명했다. “예를 들어 정기상여금까지 포함해 통상임금을 계산하면, 소정 근로시간(법정 근로시간 내 노사가 합의한 근로시간) 1시간 일했을 때 1만7500원을 받는 노동자가 있다. 이 노동자가 근로기준법상 초과근로를 1시간 하면 1만7500원의 50%를 더한 2만6250원을 받아야 한다. 그런데 그동안은 정기상여금을 뺀 기본 시급 1만원만 통상임금으로 계산했기 때문에 초과근로 1시간에 1만5000원을 받았다. 결국 초과근로시간 시급이 1.5배는커녕 소정 근로시간 시급(1만7500원)만큼도 안 된 것이다. 사용자들이 노동자들에게 잔업 특근을 많이 시킨 배경이 바로 이거다. 새로운 사람을 뽑기보다 지금 일하는 직원들에게 일을 더 시킬수록 인건비가 낮아지기 때문이다.”

통상임금 범위 확대하는 판례 나오기도

왜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에서 뺐을까. 이는 법원의 판례 변경과 관련이 있다. 통상임금의 정의와 범위는 법률에 따로 규정돼 있지 않다. 근로기준법 시행령이 전부다. 그동안 통상임금 정의와 범위는 법원 판례로 바뀌어왔다. 그간 법원은 이른바 ‘임금이분설(노동자로서의 지위에 대한 대가인 생활보장적 임금과 노동에 대한 대가인 교환적 임금이 따로 있다는 견해)’을 지지했다. 이에 따라 임금 중 노동을 행한 직접적 대가인 부분만 통상임금에 해당될 수 있다고 봤다. 1995년 삼척군 의료보험조합 사건에 대한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은 ‘모든 임금은 노동의 대가’라며 판례를 바꿨다. 종전까지 통상임금에서 제외되던 생활보장적 임금 등이 통상임금에 포함될 수 있는 길을 열었다. 이듬해인 1996년 대법원은 1개월을 초과하는 기간마다 지급하는 임금이라도 통상임금에 포함될 수 있다는 판결을 내린다. 이 판결은 정기상여금이 통상임금에 포함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둔 판결로 평가받는다.

하지만 이 판례는 현실에 적용되지 않았다. 1988년 제정된 정부의 ‘통상임금 산정지침’은 정기상여금 등을 통상임금에서 배제하는 해석을 했는데, 1996년 판례 이후에도 이 해석을 바꾸지 않았다. 판례와 지침의 불일치 속에서 기업들은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에서 뺀 채 각종 수당을 계산해 지급했다. 그러자 노동자들은 통상임금을 제대로 계산해 수당을 달라고 소송에 나섰다. 2012년 대구의 시내버스 회사인 금아리무진 소속 운전기사들이 회사를 상대로 낸 임금청구소송에서 대법원 1부(주심 이인복 대법관)는 정기상여금도 일률성·고정성을 갖추면 통상임금이라고 처음 명시적으로 판결했다. 이른바 ‘금아리무진 판결’이다. 이후 전국적으로 관련 소송이 늘었다.  

결국 대법원은 2013년 8월 갑을오토텍 노동자들이 제기한 임금·퇴직금 청구소송 두 건을 전원합의체에 회부하기로 했다.  

ⓒ연합뉴스금속노조 기아차지부 소속 조합원들이 통상임금 소송 변론기일에 출석하기 위해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2013년 12월18일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은 정기상여금이 통상임금에 포함될 수 있음을 명확히 하면서 어떤 임금 항목이 통상임금에 해당하는지 조건을 명시했다(정기성·일률성·고정성). 그런데 대법원은 고정성과 관련해 통상임금 인정 범위를 좁혔다. 특정 시점에 재직 중이거나 일정 근무일수를 충족한 노동자에게만 지급하는 임금의 경우, 초과근로를 하는 시점에서는 지급 여부가 불확실해 고정성이 없다는 것이다. 이로써 특정 시점 재직 중인 노동자에게만 지급하는 복리후생비 등은 통상임금으로 인정받기 어렵게 됐다. 현대자동차 통상임금 소송의 경우 두 달 동안 15일 이상 근무한 노동자에게만 지급하는 정기상여금은 통상임금이 아니라는 지방·고등법원 판결이 나왔다. 현재 이 소송은 대법원에 계류 중이다.

“통상임금 소송은 장시간 노동이 핵심”

2013년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은 무엇보다 통상임금 소송에 ‘신의성실의 원칙’ 법리를 적용해 논란이 일었다. 민법 제2조 제1항의 ‘신의성실의 원칙(이하 신의칙)’은 ‘권리의 행사와 의무의 이행은 신의에 좇아 성실히 해야 한다’고 규정한다. 대법원은, 정기상여금은 통상임금에서 제외된다는 전제로 노사가 임금수준을 정한 경우, 노동자 측이 합의 수준을 훨씬 초과하는 추가수당 지급을 구해 회사에 중대한 경영상 어려움을 초래하면 신의칙에 반해 허용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노동 소송에 민법의 신의칙 법리를 적용하면서 판결 직후 학계로부터 강한 비판을 받았다. 근로기준법은 개별 계약에 우선한다는 원칙을 무력화했다는 이유에서다. 도재형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연장근로수당 등의 차액을 달라는 소송의 본질은 계약에 근거해 금전을 더 달라는 것이 아니다. 초과근로에 대한 법정수당을 제대로 지급하지 않아 강행법규인 근로기준법을 위반한 데 대한 책임을 묻는 것이 본질이다. 1996년 판례로 이미 정기상여금이 통상임금에 포함될 가능성이 지적되었는데도 대기업이 그에 대한 준비를 제대로 하지 않은 책임을 피하기는 어렵다. 신의칙을 적용하기에 적절하지 않다”라고 지적했다.

2013년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 이후 개별 사안에서 신의칙 인정 여부에 따라 하급심 판결이 갈렸다. 이번 기아차 통상임금 판결도 신의칙 인정 여부가 핵심이 될 전망이다. 사용자 측도 재판부에 신의칙 인정을 강하게 요구하고 있다. 기아차 홍보실 관계자는 “정기상여금은 통상임금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관행 아래 노사가 임금수준을 합의해왔다. 사드 배치 여파로 중국 시장에서도 고전하고 있는데 1심에서 패소하면 당장 3조원 이상의 우발적 채무가 발생해 심각한 유동성 위기에 놓이게 된다”라고 말했다.

기아차 사용자 측은 현재 소송이 제기돼 있는 2008년부터 2014년 기간에 더해 임금 소멸시효가 남은 2017년까지 10년간 노조 측이 청구한 수당 등이 모두 인정될 경우 회계 기준으로 약 3조원을 부담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금속노조 기아차지부가 소송을 낸 금액은 1차 소송(집단 소송 2만7458명) 6589억원, 2차 소송(대표 소송 13명. 이후 전 조합원 적용 예정) 4억4900만원이다. 이는 법정 수당만이 아니라 단체협약에서 정한 약정수당도 포함한 최대치의 금액이다. 박상모 금속노조 기아차지부 정책기획실장은 “법원이 청구액을 얼마나 인정할지, 앞으로 회사가 어떻게 대응할지 유동적인 상황에서 지연이자까지 과도하게 계산한 측면이 있다”라고 말했다.

기업은 통상임금을 좁게 해석했고, 정부는 판례와 어긋나는 지침을 고수해 이를 묵인했다. 노동조합은 기본급 비중이 낮은 임금구조 아래서 장시간 노동에 합의했다. 일련의 소송은 노조가 예상외의 추가 이익을 얻으려는 것이라기보다는 그동안 잘못 계산했던 법정수당을 제대로 책정해 장시간 노동을 바로잡으려는 요구로 봐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박상모 금속노조 기아차지부 정책기획실장은 “대기업이어도 잔업·특근으로 버는 변동급 없이는 안정적인 생활임금을 확보하기 어렵다. 없는 걸 새롭게 요구하는 게 아니라 법에 있는 걸 해달라는 건데도 산업계에서 ‘제2의 IMF가 온다’ 운운하는 건 사법부를 협박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시사IN 신선영김기덕 변호사(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는 “기아차는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에서 빼 인건비를 낮춰왔다”라고 말했다.

통상임금 소송은 기아차만의 문제는 아니다. 한국경제연구원이 7월25일부터 8월2일 통상임금 소송을 진행 중인 종업원 450명 이상 기업·기관 35곳을 대상으로 조사한바에 따르면, 조사에 응답한 25개사가 통상임금 패소 시 부담해야 하는 지연이자, 소급분 등을 합산하면 최대 8조3673억원에 이른다. 바꿔 말하면 그만큼의 각종 초과근로 수당을 기업이 그동안 제대로 지급하지 않았을 수 있다는 뜻이다. 길게 보면 통상임금 문제는 ‘돈’이 아니라 ‘근로시간’에 관한 문제로 접근하고, 장시간 노동을 규제하는 데 실패한 기형적 임금 구조를 노사정이 함께 바꿔나가야 풀릴 수 있다. 도재형 교수는 “장시간 근로 체계가 계속 유지되는 것을 전제로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통상임금이 문제되는, 장시간 근로가 일어나는 사업장 상당수가 좋은 일자리다. 지금 시간외근로로 하는 부분을 신규 채용으로 어떻게 바꿔갈 것인지, 노사가 합의하에 장시간 근로를 유지하는 구조를 어떻게 바꿔갈지 모색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통상임금 판결 흐름과 기아자동차 소송 경과
※ 도재형 〈노동법의 회생〉(2016년)을 바탕으로 재구성

1978년 대법원 판결 “통상임금이란 고정적이고 평균적인 일반임금과 이에 준하는 고정적으로 지급되는 수당의 1일 평균치”(통상임금의 의의를 최초로 판시)

1989년 서울민사지방법원 판결 “임금 중 교환적 부분만 통상임금에 해당될 수 있다.”(임금 중 생활보장적 부분은 통상임금에서 제외)

1992년 대법원 판결 “근속수당은 근로교환적 임금이라 볼 수 없어 통상임금이 아니다.”(하급심 논리 수용)

1995년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
“모든 임금은 노동의 대가다.”(종전까지 통상임금에서 제외되던 생활보장적 임금과 상여금 등이 통상임금에 포함되게 판례 변경)

1996년 대법원 판결 “1개월 초과 기간마다 지급되는 임금이라도 정기적·일률적으로 지급된다면 통상임금에 포함된다.”(정기상여금 통상임금 포함 가능성 시사)

2011년 금속노조 기아자동차지부 조합원 2만7458명, 통상임금 1차 소송 제기

2012년 대법원 판결(‘금아리무진 판결’) “정기상여금도 일률성·고정성을 갖추면 통상임금이다.”

2013년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 “정기상여금의 통상임금 제외를 전제로 노사가 임금수준을 정한 경우, 노동자 측이 합의 수준을 훨씬 초과하는 추가수당 지급을 구해 회사에 중대한 경영상 어려움을 초래하면 신의칙(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한다. 특정 시점 재직하거나 일정 근무일수를 충족한 노동자에게만 지급하는 임금은 통상임금이 아니다(고정성 결여).”

2014년 10월 금속노조 기아자동차지부 조합원 13명, 통상임금 2차 소송 제기

2015년 9월 노사정 대타협, 통상임금 입법화 합의(관련 근로기준법 개정안 19대 국회 임기만료 폐기, 20대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계류)

2017년 8월 말 기아차 통상임금 소송 1심 선고 예정

기자명 전혜원 기자 다른기사 보기 woni@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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