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한 일러스트 작가의 SNS 계정은 이른바 ‘병맛’ 일러스트로 인기가 높다. 완벽함과는 동떨어진 어설픔, 유쾌한 넋두리가 좋아 계속 보게 됐는데 팔로어들 사이에서 자주 쓰는, 나 역시도 종종 써온 ‘병맛’이라는 말의 뿌리, ‘처음엔 병신 같으나 재미있다’를 알고 나니 찬물 세례를 맞은 듯 아차 싶었다.

말의 홍수 시대다. 넘치는 말들 속에서 귀를 거쳐 마음까지 잠식하는 나쁜 말을 솎아낼 좋은 말의 차단막이 필요하다. 아니 무엇보다 보이지 않는 것을 마주 보려는 용기가 필요하다.

강윤중 지음
서해문집 펴냄

〈카메라, 편견을 부탁해〉의 저자 강윤중 기자에게 ‘카메라’는 용기를 내는 일이었다. 저자는 카메라를 들면 들수록 카메라를 드는 일이 점점 더 조심스럽다고, 사진 한 장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희망은 일찍 접었다고 고백한 적이 있다. 그럼에도 사진을 찍는 건, 사람을 세상의 중심에 가져다 놓는 데 사진이 작은 돌다리라도 될 수 있다는 기대 때문이다. 


물론 이 책에서 강조하는 것은 (이미 짐작했겠지만) 따뜻하고 소외된 이웃들의 이야기가 아니다. ‘열린 가슴으로 서로를 이해하자’는 긍정 또한 쉽게 뱉지 않는다. 그보다는 뉴스 화면, 일간지 귀퉁이에 무덤덤하게 장식되고 마는 사건과 사람들을 비로소 우리 일로 체감하게 한다. 그 과정에서 너무 쉽게 판단했던 가치들의 우선순위를 새롭게 재정리한다. 무엇보다 쉽게 볼 수 없는 생생한 현장 사진들과 그 속에 담긴 밀도 있는 이야기는 이 책을 여느 책들과 다른 지점에 놓는다.

김치녀, 한남, 맘충, 진지충…. ‘○○녀’ ‘○○남’ ‘○○충’ 없는 사회는 가능해질까? 끊임없이 생산되는 혐오와 그 혐오를 뿌리에 둔 말들 사이에서 우린 언제쯤 나, 너, 우리를 볼 수 있을까? 이 책의 서문에는 ‘카메라는 내 편견을 드러내고 동시에 그것을 깨기 위한 도구였다’고 적혀 있다. 이제 마음먹어보자. 보이지 않는 것을 보겠다고. 이 책은 그 출발을 함께하기에 퍽 괜찮은 도구이다.

기자명 하선정 (서해문집 편집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