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창간 10주년 기념 ‘독자와 함께 걷는 몽골올레’ 행사에 다녀왔다. 석 달도 못 버티리라는 얘기를 들으며 힘겹게 출범했는데 어느덧 10년이나 역경을 헤쳐왔다. 흥겨운 시간을 보냈지만 긴장의 끈을 놓을 수는 없었다. 몽골 수도 울란바토르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아서였다. 가이드는 밤에 거리를 배회하다가는 무슨 봉변을 당할지 모르니 외출을 삼가라고 신신당부했다.

몽골 인구는 300만명 정도인데 그중 120만명이 울란바토르에 산다. 본래는 30만명 정도를 수용할 수 있도록 건설한 계획도시인데 근래 들어 행정력이 감당 못할 만큼 인구가 폭발하는 중이다. 2009~2010년 사이 겨울에 기록적인 한파가 불어닥친 게 결정적이었다. 전국에서 수백만 마리 가축이 선 채로 얼어 죽었고 빈털터리가 된 유목민은 빌린 트럭에 달랑 게르와 가재도구만 싣고 수도로 몰려들었다. 그 뒤 ‘기상관측 이후 최고의’ 한파와 가뭄이 번갈아 초원을 휩쓸 때마다 울란바토르 외곽 빈민촌은 커져만 갔다. 마실 물과 땔감조차 구하기 힘든 난민과 무능하고 부패한 정부가 만나면 치안은 극도로 불안해질 수밖에 없다. 울란바토르는 기후변화의 직격탄을 맞고 비틀대는 대표적인 제3세계 도시 가운데 하나이다.

10년 전, 전 직장에서 편집장을 그만두고 취재 현장에 복귀했는데 꼭 가보고 싶었던 곳이 있었다. 남미 콜롬비아의 시에라네바다 산맥 오지에 사는 아루아코족을 찾아가 같이 한 달만 살아봤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기후변화 문제에 오래 전부터 꽂혀 있던 참이었다. 하지만 사장은 환경 문제를 취재하기 위한 국내 출장조차 허락하지 않았다. 그는 나를 불러 정치부장과 편집장까지 지낸 사람이 왜 그리 하찮은 일에 매달리느냐고 다그쳤다. 그는 정치인과 재벌 뒷이야기를 많이 알지 않느냐며 제발 팔리는 기사를 좀 쓰라고 충고했다. 비행기 삯을 들여 저 멀리 남미의 콜롬비아까지 가서 취재를 해보겠다는 얘기는 언감생심 농담으로라도 꺼낼 수 있는 형편이 아니었다. 그때 사달이 났다. 회사가 삼성 기사를 편집장도 모르게 인쇄소에서 빼버려 노사가 충돌하는 바람에 회사를 박차고 나와 〈시사IN〉을 창간하게 된 것이다. 딱히 그 사장이 재벌 얘기를 좋아한 것만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아루아코족은 시에라네바다 산맥을 세계의 심장이라 부르며 자신들은 그 수호자라고 믿는다. 현지어로 형님이란 뜻인 마모라고 불리는, 어려서부터 특별한 훈련을 받은 부족의 지도자들은 한 달에 한 번씩 산맥의 성지를 순례하며 의식을 거행한다. 지구가 물리적으로, 영적으로 균형을 유지하도록 기원하는 뜻에서다. 이 마모들은 벌써 30년 전에 세계의 심장에 문제가 생겼다는 것을 발견했다. 산봉우리 만년설이 계속 줄어들고 생명은 동요하고 있었다. 공기와 토양에서 수분이 날아가고 새와 나비의 이동 패턴이 바뀌었다.

ⓒ한성원 그림

마모들은 부족에게 이 사실을 알렸고, ‘아우’들에게도 경고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마모들은 바깥 세계의 사람들을 자기들이 지도해야 하는 동생쯤으로 생각한다. 이즈음부터 문명세계에 바로 이 ‘이상한 예언자’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들은 각종 국제 행사에 출현해 초목이 태양과 더위로부터 필사적으로 도망치고 있다고 사람들을 붙들고 얘기했다. 당시에 사람들은 이 이국적인 인물들과 사진 한 장 찍는 것 이상의 흥미를 보이지는 않았다.


마모는 굴하지 않았다. 오히려 누구도 생각지 못한 일을 하기 시작했다. 2000년대에 접어든 후 마을의 젊은이들을 도시의 대학에 보내 법조인·경제인·경제학자·생태학자로 키우기 시작했다. 세계의 심장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부족의 전통에 굳게 뿌리를 내린 전문가가 필요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런 사실은 2007년 커피 공정무역의 개척자인 딘스커피의 창립자 딘 사이컨이 쓴 책을 읽고 알았다. 마모는 커피 질이 들쭉날쭉한 이유를 밝혀내려고 콜롬비아를 찾은 딘 사이컨에게 이렇게 말해주었다. ‘당신들이 그것(기후변화)을 어떻게 부르는지 저는 모릅니다. 대지가 점점 더워지고 있어요. 비 내리는 방식이 전과 달라요. 점점 늦게, 점점 세게 내립니다. 본래 땅을 위해 내리는데, 요즘에는 오히려 땅을 파괴합니다. 강물은 바다에 닿기도 전에 말라요. 산 위의 만년설이 강을 채워야 하는데 눈도 갈수록 적게 내립니다. 꿀벌마저 사라지고 있어요. 커피나무는 물론 다른 모든 식물이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데 어려움을 겪습니다. 꿀벌의 날갯짓 소리가 작아졌어요. 이 모든 일이 빠르게 일어나고 있지요. 아우들이 땅과 전쟁을 하고 있어요.’

전 직장의 사장뿐만 아니라 기후협약에 참석한 세계 정상 중 다수가 아직 기후변화가 인간이 초래한 재앙이라는 걸 확신하지 못하던 시절이었다. 마모는 숫자로 세상을 바라보지 않았다. 해양과 대기의 온도 변화 및 움직임을 예측한 미래 기후모델 따위는 필요 없었다. 온실효과가 무엇인지도 알지 못했다. 그들은 머리가 아니라 가슴으로 안다고 말했다. 마모는 파괴되고 있는 자연 그 자체였다. 그들을 직접 만나서 같은 것을 보고 느끼고 만지고 싶었다. 어쩌면 그들은 세상을 한꺼번에 무너뜨릴지 모르는 미세한 지점을 주시하고 있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콜롬비아에 다녀와야겠다는 꿈을 끝내 이루지는 못했지만 한시도 그들을 잊은 적은 없다. 그들의 예언이 무섭도록 잘 들어맞고 있기 때문이다. 아우들은 땅과의 전쟁에서 처참한 패배를 맛보는 중이다. 미국의 현직 대통령을 포함한 많은 이들이 아직 회의론에 기울어 있지만 대다수 아우들의 생각은 바뀌었다. 10년 전만 해도 인간이 배출한 이산화탄소가 기후변화를 초래한 주범이란 주장은 과학계의 다수설 정도였다. 지금은 과학자 10명 중 9명이 굳게 믿는다. 2015년 12월 195개국 정상이 프랑스 파리에서 기후변화 회담을 갖고 온실가스 배출 규제에 협력하기로 했다. 지난 6월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은 이 파리협약에서 빠지겠다고 선언하기는 했지만 아직 그 어떤 나라도 미국에 동조하지 않는 상태이다. 이런 모든 과정에서 마모의 역할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아루아코족이 감지한 대로 정말 모든 생명체가 양쪽 극지를 향해 도망치는 중이다. 바다 생명체는 이미 수백㎞씩 거처를 옮겼다. 육지의 초목과 동물 역시 도시와 도로에 가로막혀 고전 중이지만 기온이 좀 더 낮은 곳으로 이주하려 애쓰고 있다. 여름마다 이제는 모두가 절감하게 되었듯이 기후변화는 이미 창밖에 와 있다. 산업혁명 이후 지구 평균기온은 거의 1℃가량 올랐다. 기후변화가 그 명성에 비해서는 대단한 게 못된다고 착각하게 만들 수도 있는 수치이다. 에어컨을 틀고 잠깐이면 내려가는 이 온도가 지구 전체에 평균으로 작용할 때 벌어질 수 있는 일은 다양하고 심각하다.

기후변화는 지구 축까지 흔들고 있다

그린란드를 덮은 빙하가 녹으면서 물 배분을 바꾸고 지구 축을 살짝 건드렸다. 그 결과 2005년 이후 북극점이 동쪽으로 1m가량 이동했다. 요컨대 지구가 좀 더 빨리 돌게 됐다는 뜻이다. 당신이나 나나 100살까지 살 확률이 아주 약간 높아졌다. 무시할 수도 있는 변화라고는 하지만 기후변화가 지구 축까지 흔들 수 있다는 것은 결코 좋은 소식이 아니다.

영국에서는 50년 전보다 봄은 2주 먼저, 가을은 1주 늦게 시작한다. 온실가스가 열기를 우주로 놓아보내지 않아 밤이 낮보다 더 빨리 더워진다. 밤에 열기를 식힐 기회를 잃으면 낮에 열파를 견디기가 점점 더 힘들어진다. 2003년 유럽을 덮친 열파로 7만명이 사망했다. 과거에는 500년 만에 한 번꼴로 발생하는 기후 재앙으로 분류했지만, 최근 과학자들은 40년 만에 한 번꼴로 일어나는 재앙으로 수정했다. 이 상태로 가면 중동의 페르시아만 연안을 비롯한 건조지역에 사는 이들이 바깥출입을 할 수 없는 날들이 점점 많아질 것이다.

홍수, 가뭄, 폭풍 등 기존 재난의 성질이 모두 사나워졌다. 더운 공기는 더 많은 습기를 머금고 폭풍에 에너지를 무한 제공한다. 물이 증발하는 속도가 빨라 가뭄이 더욱 혹독해졌다. 기후변화 양상은 아주 복잡하다. 건조한 지역에 초록빛을 선사하기도 한다. 그렇다고 좋은 일이라고 할 수도 없다. 예를 들어 오스트레일리아에서는 사막지대에서 갑자기 푸르러진 식물이 맹렬하게 물을 빨아들이는 바람에 강물의 유량이 3분의 1이나 줄었다. 기후변화는 끊임없이 인간의 상상력을 조롱하는 경향이 있다.

우리는 언제인지도 모르게 예전에 살던 지구와는 다른 행성에 도착하고 말았다. 좋든 싫든 옛 고향은 잊고 이곳에 정착해 적응해야만 한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이 행성은 지구와는 많이 다르다. 이 행성의 기후는 아직 변화하는 중이다. 그 변화는 우리의 노력 여하에 따라 천양지차가 될 수 있다. 2015년 195개국 정상이 설정한 목표는 산업혁명 이전 시기보다 온도가 2℃ 이상 올라가는 걸 막겠다는 것이었다. 그러자면 2020년까지 이산화탄소 배출양의 정점을 찍고 2070년에는 배출량 0에 가까운 수준에 도달해야만 한다. 많은 이들은 각국이 파리협정에서 스스로 제시한 약속을 잘 지키기만 하면 문제가 어떻게든 해결될 수 있으리라고 대충 생각하는 경향이 있지만 이는 결코 사실이 아니다. 각국이 약속을 충실히 이행한다면, 그리고 거기에 만족해 더 이상의 조치를 취하지 않는다면 2030년에는 평균온도가 3.6℃까지 치솟을 전망이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고춧가루 뿌리기가 성공해 각국이 공조 노력을 포기해버린다면 이번 세기말까지 온도가 5℃ 이상 올라갈 가능성이 있다.

상기하자면 산업혁명 이전에 비해 지금은 평균기온이 겨우 1℃ 남짓 올랐을 뿐이다. 그런데도 이 난리인데 온도가 3℃, 5℃ 이상 솟구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상상하기조차 두렵다. 우리가 파리협정에서 설정한 목표대로 2℃대에서 온도 상승을 저지한다 해도 거기에 적응할 때까지 이 행성의 생명체는 너나 할 것 없이 모진 고통을 겪어야 할 것이다.

평균기온 상승을 2℃에서 막으려면 각국은 지금보다 훨씬 과격한 정책을 펴야만 한다. 기후변화를 정책의 최우선 순위에 놓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개인의 식단, 여행의 자유, 난방 온도까지 통제해야 할지 모른다. 우리 아우들은 이제 겨우 기후변화의 초입에 도달했을 뿐이다.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고 없는지, 결국 우리가 어디에 있는지 분명히 아는 게 순서이다. 이 문제에는 무엇보다 머리가 아니라 가슴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점도 이해할 필요가 있다(제520호에 계속).

기자명 문정우 기자 다른기사 보기 woo@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관련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