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서를 집어 들면, 가능한 한 원제를 확인해보곤 한다. 제목에 변함이 없으면 그 자체에 집중하지만 달라질 경우에는 생각이 조금 더 갈래를 친다. 원저자, 역자, 편집자가 무엇을 말하고 싶어 하고 어떤 면에 중점을 두는지 이리저리 찾아가는 재미가 있다. 그뿐만 아니라 두 나라 사이에서 나타나는 문화, 사고, 감성의 차이를 추출해내는 즐거움도 따른다. 완전히 새로운 제목이 더욱 풍성한 시각을 열어주는 흥미로운 경우도 있다. 〈누가 상상이나 할까요?〉가 그렇다.

이 책의 원제는 〈My Henry(나의 헨리)〉이다. 표지 그림의 할아버지가 헨리일 터다. 화자는 헨리의 품에 안겨 있는 할머니겠지. 둘은 해로한 부부로 보인다. 할머니가 자신의 남편인 헨리를 소개하거나 회상하면서 둘의 인생과 사랑에 대한 소회를 토로하는 이야기가 펼쳐질 것이다. 그러니까 독자는 헨리에게 주목하시라. 〈나의 헨리〉는 그런 길잡이 역할을 하는 제목이다.

그런데 두 사람의 자세가 심상치 않다. 앉아 있는 것도 서 있는 것도 아닌 어정쩡한 자세. 땅을 딛고 있는 게 아니라 허공에 들려 있는 듯한 발 모양. 하늘을 날고 있는 걸까? 나비와 새들이 두 사람을 둘러싸고 있는 게 그 추정을 증명하는 것 같지만 잠깐, 고양이와 생쥐 그리고 토끼와 물고기도 보인다. 뭔지 상당히 종합적인 배경과 주제를 아우르려는 모양이다. 〈누가 상상이나 할까요?〉라는 질문으로 보아 그런 광범위한 배경과 주제 위에 초현실적 판타지가 펼쳐질 것 같다. 한국어 제목은 책을 이렇게 소개한다.

상상이나 할까요? 이런 여행을!

〈누가 상상이나 할까요?〉 주디스 커 지음, 공경희 옮김, 웅진주니어 펴냄

책의 내용은 그 둘을 다 포함한다. 안락의자에 앉아 ‘사람들은 내가 홍차를 기다리는 줄 알지만, 사실 나는 헨리의 손을 잡고 하늘을 날고 있는 중’임을 슬쩍 흘리듯 말해주는 할머니. 이 세상을 떠나 하늘에 사는 ‘내 사랑 헨리(원문은 ‘나의 헨리’가 아닐까 짐작해본다. ‘내 사랑 헨리’와 ‘나의 헨리’에서 드러나는 미묘한 뉘앙스 차이를 생각해보는 것도 재미있다)’와 여러 가지 일을 한단다.

이후로는 할머니와 헨리가 하는 일들이 펼쳐진다. 사자와 놀기, 공룡 등에 타기, 높은 나무에 올라 동물에게 음식 대접하기, 스핑크스와 수다 떨기, 에베레스트 오르기, 돌고래와 수상스키 타기, 바다 속 인어와 놀기, 유니콘과 친구 되기…. 하늘과 땅과 바다를 누비는 노부부의 환상 여행이 작가 특유의 부드럽고 따뜻한 선과 색에 실려 마음 그득하게 살아난다. 이런 환상은 상상도 못할 정도로 아주 새롭고 놀라운 것이 아니다. 어쩌면 전형적이라고 할 만큼 흔할 수도 있다.

하지만 한 노부인이 하늘에 사는 ‘나의 헨리’와 함께하는 이 상상 여행은 온전히 그들만의 것이다. 아무도 상상 못할 특별한 여행, 하지만 모두들 공감할 수 있는 뭉클한 여행. 흔한 상상도 ‘나의’ 누군가와 함께하면 그렇게 될 수 있다는 것을 이 책은 말하는 듯하다. 작가가 50년 이상 함께 살았던 남편과 사별하고 5년 뒤에 내놓은 작품이라는 사실을 알고 보면 더욱 그렇다.

기자명 김서정 (동화작가∙평론가)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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