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9일, 문재인 대통령이 서울성모병원에서 ‘건강보험 보장 강화대책’을 발표했다. ‘건강보험 하나로 큰 걱정 없이 치료받고, 건강을 되찾을 수 있도록 건강보험의 보장성을 획기적으로 높이겠다’는 내용이었다. 이를 위해 앞으로 5년간 30조6000억원이 필요한데, 그동안 쌓인 건강보험 누적흑자(적립금) 21조원 중 절반가량을 활용하고 나머지 부족한 부분은 국가가 재정을 통해 감당하겠다고 밝혔다.

ⓒ시사IN 조남진이상구 (사)복지국가소사이어티 운영위원장.

(사)복지국가소사이어티의 이상구 운영위원장은 새 정부의 발표를 환영했다. 복지국가소사이어티는 ‘모든 의료비를 국민건강보험 하나로’ 정책을 만들고 10여 년간 시민사회단체들과 운동을 전개해왔다. 현직 의사인 이상구 운영위원장은 참여정부 청와대에서 행정관으로 보건복지 분야를 담당했고 보건복지부 장관 정책보좌관으로도 일한 바 있다. 8월10일 이상구 운영위원장을 만나 새 건강보험 정책의 의미를 짚었다.

오랫동안 ‘건강보험 하나로’ 운동을 펼쳐왔는데, 이번 건강보험 정책에 대한 평가는?복지국가소사이어티의 주장과 큰 원칙이 대체로 반영되었다. 2022년까지 건강보험 보장성 70% 수준으로 급여를 확대하겠다는 것인데 우리 제안보다 규모와 속도가 늦추어진 측면은 있다(OECD 평균 수준은 80%. 2015년 한국의 건강보험 보장률은 63.4%). 하지만 원칙과 방향이 대체로 옳다. 실현 가능한 정책이라는 점에서 높이 평가한다. 김대중 정부에서 의료보험을 통합하고, 의약분업으로 시스템을 바꾼 이래 가장 큰 변화가 있으리라고 예상한다.이번 발표에서 어떤 점을 주목하나?미용·성형을 제외하고 모든 비급여를 급여화하겠다는 점이 눈에 띈다. 특히 3대 비급여(국민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항목)인 선택진료비(특진비)·상급병실료·간병비를 해소하겠다는 것은 획기적인 일이다. 가구당 평균 월 24만~28만원씩 민간 의료보험비를 내는 것은 이런 비급여 진료비 때문이었다. 대통령이 원칙적으로 모든 비급여를 급여화하겠다고 선언했다. 한국은 단일 보험자로 어떤 항목을 비급여에서 급여로 전환하면 5000만명에게 일시에 다 해당된다.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측면이 있다. 그래서 예비급여라는 중간 단계를 만들고 본인부담률도 차등을 두고 3~5년 후 평가해 세부 기준과 급여 여부를 결정하겠다는 것인데 치밀한 전략으로 보인다. 누수·낭비를 방지하기 위해 200여 개 종합병원에 신포괄수가제도를 확대하겠다는 것도 특기할 만하다(기존 행위별 수가제는 의사가 환자에게 제공하는 의료 서비스 하나하나에 가격을 매겨서 보상하는 것을 말한다. 포괄수가제는 환자가 입원해서 퇴원할 때까지 발생한 진료를 묶어서 미리 정해진 금액을 지불하는 방식이다. 맹장염 수술의 예를 들면 동일한 중증이라고 할 때 입원 기간이나 검사량에 관계없이 동일한 진료비를 지급한다). 현재 42개 공공병원에서 시범 시행하고 있는데 적용 의료기관을 대폭 확대하겠다는 것이다.그동안 건강보험 보장성이 62~63% 수준에서 묶여 있었던 이유는 무엇인가?

건강보험 급여와 보험료 인상은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이하 건정심)에서 결정한다. 공급자·가입자·공익대표 각 8명씩 24명이 참석한다. 급여 확대를 의결하면 그에 맞추어 건강보험료 인상을 결정한다. 그동안 급여 확대가 여의치 않았다.

두 가지 이유가 있다. 급여가 늘어나면 국고 지원이 늘어나야 한다. 건강보험 급여의 20%에 대해 국고 지원을 하도록 법에 규정되어 있다. 급여가 늘어나면 국고 지원이 늘어나기 때문에 기획재정부가 반대했다. 이것보다 더 큰 이유는 민간보험 회사의 반대 때문이다. 건강보험과 민간보험은 동전의 양면이다. 건강보험 급여가 확대되면 국민이 민간보험에 가입할 이유가 없어진다. 그러니까 재벌그룹에 속한 민간보험 회사는 건강보험 급여가 늘어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또 정부에 대한 신뢰가 높지 않기 때문에 건강보험료를 인상하기에 어려운 측면도 있었다.국고 지원 20%가 법으로 규정되어 있는데 그동안 국고 지원 비중이 15% 선에 머물렀다고 하는데?기획재정부가 의도적으로 매년 차기 연도 건강보험 재정 규모를 과소 추계해서 그렇다. 예상 재정 규모를 적게 잡으니 국고 지원이 줄어드는 것이다. 법을 개정해 전년도 건강보험 급여 총액의 20%를 지원하는 사후정산제로 바꿀 필요가 있다. 시민단체들도 평가가 조금씩 다르다. 보장성 목표치가 너무 낮다는 비판도 있고, 긍정적이지만 아쉽다는 논평도 나온다.

진보 진영이나 시민사회는 OECD 평균 수준인 건강보험 보장성 80%에 미치지 못하는 70%를 목표치로 잡았다는 점을 비판할 수 있다. 미흡하지만 큰 원칙과 방향을 잡았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할 대목이 있다고 본다.

ⓒ연합뉴스문재인 대통령은 ‘건강보험 보장 강화대책’을 발표하면서 원칙적으로 모든 의학적 비급여를 급여화하겠다고 선언했다.

의료계의 평가는?

의료계 일반의 반응도 각각 다른 것 같다. 개원가 일각에서는 전면적 반대 투쟁을 하자는 분위기도 있다. 의사협회는 긍정과 우려를 동시에 나타냈다. (대형 병원이 속한) 병원협회도 우선은 긍정적인 반응이지만, 앞으로는 적극 반대를 할 가능성이 높다. 신포괄수가제를 적용하겠다는 200여 개 병원에 이른바 빅5 병원이 들어간다. 한 의료기관당 건강보험 급여만 1조원 이상 쓰는 곳이다. 울산시 전체가 쓰는 의료비용을 한 병원이 쓰는 정도다. 포괄수가제의 확대 적용에 반대할 가능성이 크다.보험업계는 어떤가?

‘건강보험 하나로’를 실현하게 되면 가장 큰 영향을 받을 곳이 민간보험 업계이다. 건강보험 급여 보장성이 높아지면 단기적으로 보험업계는 실비 보상 부분이 줄어든다. 급여 확대의 혜택을 얻게 된다. 민간 보험회사는 실손 보험료를 낮추라는 압력을 받을 수밖에 없고, 낮추지 않을 명분도 없다. 건강보험과 민간보험을 연계하는 법안이 나온다. 핵심은 두 가지다. 건강보험 급여가 확대되면 보험회사의 부담이 줄어드니 보험료를 낮추라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가입자 처지에서는 건강보험 급여가 확대되면 실비보험을 들 필요가 없어진다. 그러니 실비보험을 연금보험같이 소득보장 보험으로 전환하거나 상병급여로 받는 보장성 보험으로 바꿀 수 있게 하는 게 필요하다. 법안 논의가 국회에서 시작되면 보험업계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사활을 걸고 나설 것이다. 국민도 어느 의원이 누구의 이익을 대변하는지 감시해야 한다.

건강보험 가입자인 국민은 어떤 점에 주목해야 하나?

환자들이나 온라인 반응을 보면 대체로 이번 대책에 긍정적이다. 촛불시위의 전리품이다. 보호자가 직접 간병할 필요가 없이 운영하는 서울의료원의 포괄간호 병동을 가보면 환자와 가족들 만족도가 무척 높다. 3월에 국회에서 ‘건강보험 하나로’ 공약 제안 토론회를 할 때 추진 방안 중 하나로 ‘선(先)체감, 후(後)부담’을 이야기했다. 복지로 인한 변화를 느끼면 건강보험료 인상에 대한 태도도 달라질 수 있다. 장기적으로 건강보험료 인상이 필요하다. 건강보험료를 더 내더라도 건강보험 급여율을 높이는 게 훨씬 이익이다. 그러지 않으면 민간 보험사의 배만 채우게 된다.

기자명 차형석 기자 다른기사 보기 cha@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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