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공항은 휴가철을 맞아 해외여행을 가려는 이들로 북적였다. 〈시사IN〉 창간 10주년 몽골올레 걷기 행사(7월26~30일)에 참여하려고 대기하는 독자는 금세 티가 났다. 조용히 책에 코를 빠뜨리고 있으면 영락없이 〈시사IN〉 독자였다.

그렇게 서로의 존재감을 진하게 확인하면서 몽골 여행은 시작됐다. 게이트가 하나밖에 없는 칭기즈칸 공항은 시골 역처럼 정겨웠다. 몽골 국적 항공사가 예약을 초과해 승객을 받는 바람에 시비가 붙어 공항에 한 시간 이상 발이 묶여 첫날 일정이 숨 가빴다. 다행히 저녁 8시가 넘어서도 북극의 해가 넘어갈 줄 몰라 마음은 여유가 있었다.

ⓒ시사IN 이명익

촛불이 열어젖힌, 모두가 n분의 1인 시대에 대한 이철수 화백의 강의가 끝났을 때는 이미 저녁 10시가 넘어서였다. 참석자들은, ‘명망가나 잘난 사람들이 아니라 평범한 이들이 개척한 위대한 길에서 작품의 영감을 받는다’는 이철수 화백의 얘기에 감정이입해 숙연한 시간을 보냈다. 


다음 날은 몽골올레 1코스. 먼 한국 땅에서 몰려온 관광객들을 신기한 듯 구경하는 동네 코흘리개들의 전송을 받으며 1코스 초입부 4.5㎞를 걸었다. 말과 소, 양이 흩어져 풀을 뜯는 초원은 허브 향으로 가득했다. 야생초를 좋아하는 이들은 고개를 박고 사진을 찍다 일행과 멀어진 걸 알고는 화들짝 놀랐다. 아이들은 어느덧 꼭 잡았던 부모 손을 놓아버리고 천방지축 달리기 시작했다. 먼 옛날 제주도에 쳐들어와 말을 수출한 몽골 땅에 제주올레는 길을 수출했다. 역사는 선순환하기도 한다.

밤에는 테를지 국립공원 내 게르에서 묵었다. 어두워지자 심술맞게 하늘을 덮었던 구름이 거짓말처럼 퇴각했다. 별이 따갑게 쏟아져 내렸다. 젊은이들은 처음 보는 광경에 눈이 휘둥그레졌고, 나이 든 사람들은 어려서 시골집 마당 평상에 누워서 보던 그 하늘을 떠올리며 감회에 젖었다.

사흘째 걸은 길은 테를지 국립공원 내에 새로 난 몽골올레 2코스. 강을 건너 언덕을 넘어 11㎞를 걷는 꽤 긴 여정이었다. 멀리서 키 낮은 풀이 돋아난 산 중턱을 가로지르며 말들이 달리고, 마부가 손짓했다. 사방이 탁 트여 마치 낮게 나는 독수리의 눈으로 세상을 보는 느낌이었다. 그렇게 온 세상천지에 우리만 있는 듯한 오붓함 속에서 참석자들은 하나가 되어갔다.

기자명 문정우 기자 다른기사 보기 woo@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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