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핀셋 규제(과열 지구를 콕 찍어 투기 수요를 정밀 타격한다는 의미)’로 알려진 6·19 대책이 사실상 실패하자, 8·2 대책이 나왔다. 초강경 대책이다. 노무현 정부 때보다 한층 강한 규제 방안들을 ‘한꺼번에’ 시행한다. 일부 지역에서는 ‘공황 상태에 빠진 느낌’이란 하소연이 새어나오고 있다.

8·2 대책에 따르면, 문재인 정부는 정책 대상 지역(서울 전역과 경기, 부산, 세종 등의 일부 지역)을 투기 강도에 따라 ‘조정대상 지역’ ‘투기과열 지구’ ‘투기 지역’ 등으로 나눠 차등적 규제를 시행하기로 했다. 조정대상 지역에 대한 규제를 기본으로, 투기가 심한 정도(투기과열 지구→투기 지역)에 따라 규제 수단이 추가된다.

ⓒ김흥구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과 고형권 기획재정부 1차관(오른쪽), 김용범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왼쪽)이 ‘8·2 부동산 대책’을 발표하고 있다.

‘조정대상 지역’의 경우, 주택청약 1순위의 자격 요건이 까다로워질 뿐 아니라 가점제(가구주 연령, 가족 수, 무주택 기간 등이 많고 길수록 높은 점수를 부여) 적용 확대로 실소유자들의 당첨 가능성을 높이기로 했다. 다주택자가 집을 파는 경우, 기존 양도세에 가산세까지 추가한다. 주택 3채 소유자의 경우, 양도소득세로 40%를 냈다면 앞으로 20%를 추가로 내야 한다(모두 60%). 이에 더해 ‘투기과열 지구’에서는 재개발 시 분양권 전매를 제한하고, 3억원 이상 주택을 거래할 때는 자금조달 및 입주 계획을 의무적으로 신고해야 한다. 투기 목적의 주택 거래를 억제하기 위해서다. 더욱이 투기 정도가 가장 심한 ‘투기 지역’은 주택담보대출 건수가 종전의 ‘1인당 1건’에서 ‘세대당 1건’으로 제한된다. 이와 함께 투기과열 지구와 투기 지역에서는 LTV(주택담보대출비율)와 DTI(총부채상환비율) 역시 종전의 60%(LTV)와 50%(DTI)에서 40%로 강화되었다. 은행에서 대출받을 수 있는 돈이 크게 줄어든 것이다(오른쪽 표 참조). 


이와 함께 공적 임대주택을 연간 17만 호씩 공급하고, 특히 수도권 내에서는 다양한 유형의 주택 공급을 확대하기 위한 공공택지를 추가 확보하기로 했다. 강력한 투기억제 정책과 함께 실수요자 및 서민을 대상으로 하는 주택공급 확대 정책이 병행되는 셈이다. 무주택자들의 경우, 대출 규제가 강화되지 않고 청약 당첨 확률이 높아지는 데다 공공분양 및 신규택지 공급 확대로 ‘내 집 마련 기회’가 더 많아지리라 보인다. 투기를 잠재워 집값 상승을 차단하고 주택시장을 실수요자 중심으로 재편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이다. 한편 ‘재건축 초과이익 환수제(재건축 주택에서 정상적 가격 상승분을 넘는 이익에 대해 세금 징수)’도 내년부터 시행하기로 했다.

8·2 부동산 대책에 따르면, 문재인 정부는 현재 부동산 시장 교란의 주범을 다주택 소유자로 규정하고 이들의 투기 유인을 제거하는 데 정책의 방점을 찍었다. 청약, 세금, 재건축 및 재개발, 대출 등 부동산 시장에 영향을 미칠 만한 거의 모든 정책 수단을 동원했다. 정부가 사용할 수 있는 정책 수단들을 축차적으로, 투입하는 것이 아니라 일시에 시행했다. 이는 참여정부 당시 ‘부동산 대책들을 축차적으로 시행하면서 시장의 내성만 키워줬다’는 반성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매년 300조원 이상 부동산 불로소득

하지만 아쉬운 대목이 있다. 조세 정의와 투기 억제의 핵심인 ‘보유세(부동산을 소유하는 것 자체로 내는 세금) 현실화’가 누락됐다. 부동산 보유세가 현실화되지 않은 상황에서는, 현금을 넉넉히 가진 다주택자들이 집을 급매로 처분할 유인이 없다. 양도세를 중과해봤자 금융자산 10억원 이상의 부자 24만2000명에게는 ‘부동산을 그대로 갖고 있게 하는’ 동결 효과를 발휘할 따름이다. 게다가 이번 대책에는 ‘임대소득자 등록 의무화 및 임대소득에 대한 과세 강화’가 빠졌다. 결론적으로 8·2 부동산 대책은 투기 과열과 집값 앙등을 차단하는 동시에 부동산 가격 하락까지 막는, 현상 유지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

투기 억제 목적만으로 ‘보유세 현실화’를 주장하는 건 너무나 협애한 관점이고 인식이다. 우리는 지금, 왜 ‘보유세 현실화’가 간절한 과제인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통계에 따르면, 2015년 말 기준 한국의 국부(국민순자산)는 1경2359조5000억원으로 추산된다. 그중 부동산 자산의 규모가 9136조원(75.3%)에 달한다. 토지+자유연구소의 보고서에 따르면, 매년 300조원 이상의 부동산 불로소득이 발생한다. 부동산이 재벌과 부동산 부자들에게 편중돼 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그들은 다른 사람들이 피땀 흘려 만들어낸 천문학적 부(富)를 매매와 임대를 통해 합법적으로 약탈하는 셈이다.

이런 ‘지대(rent) 추구자’는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가장 큰 적이다. 자본주의 시장경제 체제는 부의 창출에서 각 구성원들의 기여와 공로가 합당하게 평가될 때 정당화될 수 있다. 지대 추구자들은 가치 생산에 기여하는 정도에 비해 너무 많은 보상을 받는다. 자본주의 시장경제 시스템을 정상화하려면, 공공 영역이 ‘지대’를 세금 등의 형태로 환수해서 사회적으로 유익한 부문에 투자할 수 있어야 한다. ‘사유화’된 지대의 ‘사회화’다. 이런 사회적 과제를 완수하는 최적의 해결책이 바로 보유세다.

보유세는 누구나 평등하게 누려야 할 토지사용권을 세금의 형식으로 보장한다. 연구자들에 따르면, 특히 토지 보유세는 시장을 왜곡하기는커녕 왜곡된 시장을 교정하는 구실까지 감당한다. 흔히 알려진 보유세의 투기 억제 및 가격안정화 효과는 보유세가 지닌 여러 장점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현재 대한민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주요국 가운데 보유세 실효세율이 가장 낮은 축에 속한다.

OECD도 최근 포용적 경제성장과 세수 증대를 위해 보유세율을 높이는 것이 가능할 뿐만 아니라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보유세는 경제에 활력을 줄 뿐 아니라 부동산 투기도 잡는 일석이조의 정책 효과를 발휘하는 세금이다. 문재인 정부는 좌고우면하지 말고 보유세 혁명에 착수해야 한다. 다만 참여정부의 종합부동산세와 달리 보유세는 토지에만 부과하고 누진 구조를 취해야 한다. 수취한 토지 보유세를 전 국민에게 토지 배당 등 적절한 형식으로 배분할 수 있다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기자명 이태경 (토지정의시민연대 사무처장)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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