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28일 오전 10시30분, 국방부는 현재 사드(THAAD) X밴드 레이더와 발사대 2기가 배치되어 있는 경북 성주군 초전면 소성리 롯데골프장 부지에 대해 환경영향평가를 실시하고, 그 결과에 따라 사드 포대의 완전한 배치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같은 날 밤 11시41분, 북한이 대륙간 탄도미사일(ICBM)을 발사했다. 정부는 방침을 뒤집었다. 7월29일 새벽 1시, 문재인 대통령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전체 회의를 소집해 사드 발사대 4기 추가 배치를 미국과 협의하라고 지시했다. 7월31일, 송영무 국방부 장관은 국회 국방위원회 전체 회의에 출석해 “상황이 급해 우선 (사드 발사대 4기를) 긴급 배치하고 일반 환경영향평가를 하겠다”라고 말했다.

북한이 발사한 미사일의 충격이 사드 배치를 반대하는 경북 성주·김천 주민들에게 떨어졌다. 7월31일 오전 11시, 성주·김천에서 주민 50여 명이 상경해 청와대 100m 앞에서 ‘사드 발사대 추가 배치 계획 철회 촉구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석주 소성리 이장이 마이크를 잡았다. “문재인 정부는 환경영향평가를 한다고 발표한 지 15시간 만에 사드를 추가 배치한다고 했다. 그토록 강조했던 사드 배치의 절차적 정당성과 민주적 정당성을 스스로 훼손했다.” 맨 앞에 서 있던 도금연씨가 눈물을 흘렸다. 한 주민이 외쳤다. “왜 1번만 되면 똑같아지노?”

ⓒ연합뉴스7월31일 서울 용산구 국방부 앞에서 열린 사드 배치 반대 집회에 성주·김천 주민들이 참여하고 있다.

8월1일 오전 11시, 소성리 마을회관. 전날 서울에 다녀온 할머니들이 들어서자, 먼저 와 있던 주민들이 반갑게 맞았다. “다치진 않았나?” “어젠 다치는 집회는 아니었다.” ‘다치는 집회’는 지난 4월26일 새벽, 사드 레이더와 발사대 2기가 배치되던 날을 말한다. 당시 경찰이 기습적으로 투입되며 주민들과 충돌했다. 여상돌씨는 경찰과 대치하다 넘어져 오른쪽 골반 주위에 아직도 멍이 들어 있다. 발사대 4기 추가 배치 뉴스를 접한 소성리 주민들은 ‘그날’의 악몽을 떠올렸다. 도경임씨는 기자에게 “우린 사드 때문에 불안해죽겠다. 갑자기 갖다 놓을까 봐 무섭다”라고 하소연했다. 여상돌씨는 “다치면 다치고 말아야지. 죽으면 죽었지 사드는 절대 못 들어와”라고 말을 받았다. 전날(7월31일) 서주석 국방부 차관은 상경 기자회견 후 국방부를 항의 방문한 성주·김천 주민들과의 면담에서 ‘지난번과 같은 야밤의 기습 배치는 없을 것’이라고 약속한 바 있다.


정부의 이번 결정에 주민들은 배신감을 털어놓았다. 김진수씨(가명·80)는 “다른 것보다 대통령이 자기가 뱉은 말은 지켜야 한다. 정당한 절차를 밟겠다고 그렇게 말했는데, 지금 무슨 절차를 밟았나? 그게 제일 속상하다”라고 말했다. 도금연씨는 “(문재인 대통령을 만나면) 왜 우리를 배신했냐고 묻고 싶다. 촛불 때는 우리 편이라고 했는데…”라고 말했다.

전 정부 때와 똑같은 요구사항 5가지

8월1일 오후 7시, 성주군청 앞 주차장에 주민 70여 명이 모였다. 385일차 촛불집회다. 9세 아이부터 80세 할머니까지 줄지어 앉았다. 박수규 사드배치철회 성주투쟁위원회(이하 투쟁위) 상황실장이 무대에 섰다. “작년 이맘때, 박근혜 정부가 소성리에 사드를 배치하겠다고 결정했다. 성주가 들고일어나자 배치를 미루고 미루다 대통령이 탄핵됐다. 결국 정상적인 정부가 아닌 상태에서 새벽에 도둑처럼 기습 배치를 했다. 우리가 우물쭈물하면 나머지 4기도 들여온다. 우리가 포기하지 않으면 다른 변수가 생긴다. 만약 나머지 4기가 배치된다 해도 끝까지 꿋꿋이 싸우면 우리 후손들이 자랑스럽다고 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박수와 함성이 쏟아졌다. 주민들이 언제나처럼 마무리 구호를 외쳤다. “투쟁은 즐겁게, 신나게, 끈질기게!”

ⓒ시사IN 이명익8월2일 오후, 청와대 시민사회비서관실 행정관 2명이 경북 성주군 소성리를 방문했다.

8월2일 오후 1시30분, 청와대 시민사회비서관실 행정관 2명이 소성리를 찾았다. 이들은 〈시사IN〉을 비롯한 취재진에게 “주민들의 의견을 들으러 왔다. 따로 전달할 메시지는 없다”라고 밝혔다. 한 투쟁위 관계자는 “이미 상경 기자회견에서 주민들의 요구사항 5가지를 전달했다. 불법 사드 배치 중단, 배치 과정 전면 조사, 책임자 처벌, 전략 환경영향평가 실시, 사드 배치 원점 재검토다. 박근혜 정부 때부터 투쟁위의 요구사항은 그대로다. 청와대에서 어떤 답변도 없이 똑같은 말을 다시 들으러 오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다”라고 말했다.


오후 2시, 34℃의 무더위 속에 소성리 마을회관 앞마당에 성주·김천 주민 110여 명이 모였다. 청와대 행정관들이 마을회관에서 소성리 주민들과 비공식 면담을 했다. 면담 내용은 공개되지 않았다. 기자가 청와대 측에 전달하고 싶은 말이 있냐고 묻자 도금연씨가 대답했다. “사드 가져가라 캐야지. 우린 사드 필요 없다. 사드만 가져가면 (청와대에서) 여기 올 필요도 없다.”

기자명 신한슬 기자 다른기사 보기 hs51@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