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이 단독 입수한 장충기 전 삼성그룹 미래전략실 차장(사장)의 휴대전화 문자 메시지는 ‘관리의 삼성’ 실체를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단독] ‘삼성 장충기 문자’ 전문을 공개합니다 참조). 그는 삼성그룹의 대관업무(관청, 즉 정부를 상대하는 업무) 총괄책이었다. 특검은 삼성이 한국 사회에서 얼마나 광범위하게 영향력을 미치는지 보여주는 자료로 장 전 차장의 휴대전화 문자 메시지를 재판부에 제출했다. 특히 삼성과 언론의 ‘부적절한 관계’를 증언하는 내용이 눈길을 끈다. 광고와 협찬을 요구하는 언론사, ‘알아서 기는’ 언론사의 모습이 보인다. 지금까지 증언으로만 나오던 삼성의 힘을 보여주는 물증이다.
 

〈문화일보〉의 한 간부가 장 전 사장에게 보낸 카카오톡 메시지다. “올 들어 문화일보에 대한 삼성의 협찬+광고 지원액이 작년 대비 1.6억이 빠지는데 8월 협찬액을 작년(7억) 대비 1억 플러스(8억)할 수 있도록 장 사장님께 잘 좀 말씀드려달라는 게 요지입니다. 삼성도 많은 어려움이 있겠지만 혹시 여지가 없을지 사장님께서 관심 갖고 챙겨봐주십시오.” 〈매일경제〉의 한 기자도 문자 메시지를 전송했다. “존경하는 실차장님! 어제 감사했습니다. 면세점 관련해 ○○○과 상의해보니, 매경이 어떻게 해야 삼성의 면세점 사업을 도와줄 수 있는지를 구체적으로 알려주셨으면 좋겠다고 합니다.” 2015년 면세점 신규 4곳이 발표되던 때다.

 

 

삼성이 예민하게 생각하는 현안에 대해서도 장 전 차장은 언론사 간부와 긴밀하게 소통했다. 2016년 7월 이건희 회장의 성매매 동영상 관련 보도가 나왔다. 이에 대해 〈연합뉴스〉의 한 간부는 “장 사장님. 늘 감사드립니다. 시절이 하수상하니 안팎으로 조심하는 수밖에 없을 거 같습니다. 누워 계시는 이건희 회장님을 소재로 돈을 뜯어내려는 자들도 있고요. 나라와 국민, 기업을 지키는 일이 점점 어려워져갑니다”라고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상대방이 특정되지 않은 또 다른 문자 메시지에서는 TV조선의 보도 방향에 대한 언급이 있다. “방상훈 사장이 조선과 TV조선에 기사 쓰지 않도록 얘기해두겠다고 했습니다. 변용식 대표가 자리에 없어 ○○○에게도 기사 취급하지 않도록 부탁하고 왔습니다.”

〈연합뉴스〉 노조는 7월3일 특보를 내고 삼성에 불리한 뉴스를 축소 보도했다고 지적했다. 지난 4월 검찰은 동영상 속 인물이 성매매 여성이 맞다는 결론을 내렸다. 수사기관이 이건희 회장의 성매매를 인정한 것이었다. 당시 〈연합뉴스〉는 “檢 ‘동영상 속 행위 ‘성매매’ 맞다’ 결론…이건희 기소중지”라는 제목의 단독 기사를 작성했지만 보도되지 않았다. 기자들의 반발로 뒤늦게 보도됐지만 제목과 부제에서 성매매라는 단어가 빠졌다.

“방상훈 사장이 기사 쓰지 않겠다고…”

언론사에 미치는 ‘삼성의 힘’은 이재용 부회장 재판에서 또다시 빛을 발하고 있다. 장충기 전 차장이 박근혜 게이트 이후 사퇴하고 미래전략실은 사라졌지만, ‘관리의 삼성’은 여전히 작동하고 있다. 7월6일 하루 동안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재판에 대한 보도가 쏟아졌다.

‘판도라의 상자? 안종범 수첩 열어보니 빈 상자(데일리안)’ ‘이재용 재판, 히든카드 날아간 특검…재판부 “安 수첩, 직접증거로 부족”(더팩트)’ ‘스모킹 건에서 계륵으로…안종범 수첩 뭐가 담겼기에(아시아경제)’ ‘법원 “안종범 수첩, 朴-이재용 독대 직접증거능력 인정할 수 없어”(중앙일보)’ ‘“안종범 수첩 朴-이재용 뇌물 증거 안 돼”(YTN)’. 안종범 전 수석이 쓴 업무수첩 이 증거로서 문제가 있다는 인상을 주는 제목이 연이어 나왔다. 이재용 재판부인 서울중앙지법 형사27부(부장판사 김진동)가 안종범 업무수첩을 간접증거로 보았다는 뉴스다.

새로운 내용이 아니다. 지난 1월20일 최순실씨 재판에서 안종범 업무수첩은 이미 간접증거로 채택됐다. 서울중앙지법 형사22부(부장판사 김세윤)는 “검사도 안종범 업무수첩을 간접 정황 증거로 제출했다. 정황 증거로서 증거능력이 인정된다”라고 밝혔다. 재판부가 간접증거로 인정한 이유는 박근혜 전 대통령이 전해준 말을 안종범 전 수석이 받아 적어서다. “대부분 박근혜 전 대통령이 직접 불러준 걸 적었다. 어떤 개별 회장 면담 때 이런 이야기를 했다고 이야기해준다(7월4일 이재용 재판의 증인으로 출석한 안종범 전 수석의 증언).”

이재용·박근혜 독대 자리에 안 전 수석이 없었기에 안종범 업무수첩은 ‘직접’증거가 아니라 ‘간접’증거가 된다. 뇌물죄에서 직접증거는 뇌물을 준 사람의 진술 등을 말한다. 보통 뇌물은 은밀한 곳에서 아무도 모르게 주고받는다. 범죄 현장을 포착한 CCTV·녹음이나, 돈이 오간 계좌 내용과 같은 직접증거가 나오기 어렵다. 양홍석 참여연대 공익법센터 변호사는 “직접이든 간접이든 증거의 내용이 중요하다. 이번 사건은 당사자들이 혐의를 부인해 직접증거는 상당 부분 없다고 봐야 한다. 안종범 업무수첩은 애초에 간접증거였다”라고 말했다.

ⓒ사진공동취재단지난 2월23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뇌물 공여 등 혐의에 대한 조사를 받기 위해 서울 대치동 특별검사 사무실로 들어서고 있다.

그런데도 유독 이재용 재판의 보도 논조만은 달랐다. 새삼스럽게 안종범 업무수첩이 간접증거라고 강조하는 기사가 쏟아져 나왔다. 특검이 무리하게 이재용 부회장 수사를 했고, 그것이 재판 과정에서 드러나고 있다는 취지의 기사도 이어졌다. 다른 국정농단 재판 뉴스에서는 보기 어려운 기조였다. ‘삼성발 언론플레이’가 힘을 발휘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삼성 홍보팀은 이재용 재판에 꼬박꼬박 방청을 하며 관련 보도자료를 뿌린다. 기사 방향을 잡아준다는 의심을 산다. 아예 삼성 출입기자가 이재용 재판을 취재하는 언론사도 있다. 보통 법원 출입기자가 재판을 취재하지만, 이재용 재판은 예외로 판단한 것이다. 〈동아일보〉 7월7일 ‘예고편만 요란했던 맹탕 안종범 수첩’이라는 기자 칼럼이 대표적이다. 산업부 기자가 썼다. 특검을 비판하는 내용이 주였다. 법조 출입기자가 없는 경제지 등에서는 따로 팀을 꾸려 이 건을 취재하기도 한다.

한 법원 출입기자는 “현재 박근혜·최순실·김기춘 등 수많은 이들의 국정농단 재판이 진행된다. 팽팽한 법정 상황이, 유독 이재용이라는 이름이 들어가면 원사이드하게 보도된다. 산업부 기자는 아무래도 삼성 쪽 이야기를 더 많이 듣게 되고, 법원 출입기자와는 다른 시각에서 사안을 보는 것도 있다. 그러다 보니 안종범 업무수첩이 직접증거로 채택 안 되었다는 당연한 사실에 호들갑 떠는 기사가 나간다”라고 말했다. 이재용 재판을 취재하는 또 다른 기자는 “매번 삼성 홍보팀에서도 재판에 나오고, 누가 어떤 기사를 쓰는지 일일이 다 챙긴다. 재판이 밤늦게까지 이어져 삼성이 사주는 밥을 먹고 커피를 마시는 경우도 있다. 자연스레 삼성 쪽 설명을 더 충실하게 듣고 인간적인 관계가 생기면 덜 비판적으로 쓰게 되는 면도 생긴다”라고 말했다.

좀 더 적나라한 이야기도 나온다. 현재 이재용 재판을 취재하는 한 산업부 기자는 ‘관리의 삼성’이 작동하는 방식을 고백했다. “회사의 기조는 확실하다. 삼성과의 관계, 그러니까 광고 때문에 산업부 기자들을 재판 취재에 붙였다. 나름 삼성에 완전히 엎어지지 않으려고 특검과 삼성의 주장을 균형 맞춰서 써도, 발행되는 기사는 대놓고 삼성 편이다. 왜냐면 지금이 회사에게는 기회니까.”

 

기자명 김은지 기자 다른기사 보기 smile@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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