웬만해선 전자책을 사지 않는다. 어릴 때부터 로망이 서재였다. 벽면 셋을 빙 두른 책장에 가득 책이 꽂혀 있는 풍경이 그렇게 뿌듯할 수가 없다. 전자책이라면 태블릿 한 대면 되는 정보를 보관하기 위해 방 하나를 통째 쓴다. 빈말로라도 효율적이라고는 못한다. 서울 집값으로 계산해보면 얼추 중형차 한 대짜리 취미다.

독서란 그저 정보를 입력하는 절차만은 아니다. 읽는다는 건 꽤 물리적인 경험이다. 책장을 넘기는 촉감, 메모하는 펜, 물을 잘못 맞춰 싱거운 커피, 결정적인 대목을 읽을 때 타고 있던 버스, 그때의 창밖 풍경, 마지막 페이지를 탁 하고 덮을 때 밀려드는 감상-경이로움, 뿌듯함, 허탈함, 분노 등등. 이 모든 경험이 한데 뒤엉킨 덩어리가 그 종이 다발이다. 비트 말고.

그런 취향 덕에 〈아날로그의 반격〉에 선뜻 손이 갔다. 디지털 기술이 발달할수록, 묘하게도 사람들은 아날로그를 다시 찾는다. 이탈리아 시골구석에서 철거를 기다리던 필름 공장이 난데없이 초우량 기업이 되고, 한때 서울에서 잠시 흥했다 사라진 보드게임 카페가 유행을 선도하는 명소가 된다. 음악 저장매체로서 레코드판의 부활은 이제 뉴스도 아니다. 아날로그는 불확실하고, 비싸고, 결점이 많다. 그러나 바로 그렇기 때문에 어떤 사람들은 아날로그에 열광한다. 불확실성이야말로 무한 복제가 가능한 디지털 시대에 드물어진 가치다.

물론 디지털 시대에 아날로그가 대세가 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예측 불가능하고 비싼’ 아날로그는 일종의 사치품이자 틈새 상품이다. 다만 그 틈새가 우리 생각보다 크고, 우리 생각만큼 쉽게 사라지는 게 아니라고 책은 환기한다. 아날로그 매체에서 일하다 보니 여러 생각이 드는 책이다. 이 기사를 굳이 종이로 읽고 있는 ‘아날로그형 독자’도 비슷한 느낌을 받을지 모른다. 책이 강조하는 아날로그의 비교우위 중 하나는 ‘물리적 접촉’과 ‘직접경험’이다. 〈시사IN〉과 독자가 직접 만날 기회를 꾸준히 만들어봐야겠다.

기자명 천관율 기자 다른기사 보기 yul@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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