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현민 행정관은 지금 억울할까. 너무 많은 이들로부터 자신의 삶을 부정당한다고 느끼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바꿔서 생각해보면 어떨까?

여성가족부 장관·국회의원·언론· 여성단체·일반인 등 수많은 사람이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데도 대통령은 그의 해임을 요구하는 야당 대표의 발언에 입을 다물었다. 그가 그토록 대체 불가능한 ‘출중한 능력’을 가졌는지는 알 길이 없다.

이와 별개로 나는 그가 기반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어떤 감각의 체제에 관심이 있다. ‘1970년대생 (문화)행사기획자’라는 직함은 한 시대를 보여주는 표본이나 마찬가지다. 이들은 최근 몇 년간 tvN ‘응답하라’ 시리즈나 〈무한도전〉 ‘토토가’ 등을 통해서 소환되었던 1990년대, 바로 그 1990년대의 주인공이었던 X세대다.

쿨하게 행동했을 때 겪는 부당함에는 관심이 없는 자유

1990년대를 회고하는 방식은 매우 다양하다. 애초에 시대 자체가 새로운 것에 매달리다시피 했으니 별수 없는 일이기도 하다. 1997년 외환위기로 ‘잔치’가 강제 종료당하기 전까지, 사람들은 1980년대의 중압감을 벗어버릴 수 있다면 어떤 것도 마다하지 않는 듯했다. 비록 그것이 무엇이었으며 무엇이어야 했는지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을지언정, 1987년 민주화 이후의 공백을 채운 것이 밑도 끝도 없는 ‘문화’였다는 것은 당시에도, 또 지금도 많은 이들이 증언하고 있다.

ⓒ정켈 그림

이 새로운 시대에 번성했던 것 중 하나가 바로 성(性) 담론이다. 성에 대한 이야기는 대중문화에서부터 사회운동의 차원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게 포진되어 있었다. 1990년대를 대표하는 문화적 전략인 ‘파격’은 성의 영역에서 매우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일부는 동성애자 인권운동이나 새로운 페미니즘 운동 같은 방식으로 나타났지만, 대중적 관심사가 쏠리는 곳은 역시 ‘섹스’ 그 자체였다. 그중에서도 가장 세가 컸던 것은 성적 자유주의자들이었다. 이들은 성적 엄숙주의와 그에 동반되는 위선을 맹비난하며, 직설적이고 즉물적인 욕망을 옹호했다. 즉 이들은 독재로부터의 해방에 이은 성 해방을 주장했다.


물론 성 해방은 인간의 자유가 증대되는 데 매우 중요한 사건이다. 성적 억압과 허용이 어떻게 권력에 의해 이용되어왔는지 그 역사적 사례가 많이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해방의 내용이다. 특히 ‘탁 행정관 류’의 자유주의는 자신들의 욕망이 어떤 방식으로 생성되어 있고, 어떤 사회적 관계 속에서 (불)가능한지 고민하지 않는다. 단지 지금 내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이 진정한 욕망이며, 성욕의 원초적이고 보편적인 형태라고 단언한다.

여기에 그 내밀한 이야기들을 활자로 찍어낼 수 있었던 것은, 조야한 성적 자유주의가 상업주의와 훌륭한 조화를 이루었기 때문이다. 아마도 이것의 가장 큰 성공 사례는 가수 싸이의 작업들일 것이다. 그는 시종일관 조신한 척하고 근엄한 척하는 이들을 조롱하며 성적 자유를 옹호해왔다. 그의 노래에는 언제나 여성혐오가 깔려 있는데, 이는 그가 늘 조롱하는 성에 소극적이거나 그런 ‘척’하는 여성들이 놓여 있는 상황에는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여성들의 ‘쿨’하지 못함을 비난하지만, 그들이 막상 쿨하게 행동했을 때 겪는 부당함에는 관심이 없는 편리한 자유다.

그것이 얼마나 조야한 것이든 자유라고 이름 붙은 모든 것을 다 끌어다 써야 하는 시기도 있다. 모든 역할에는 유효한 기간이 있고, 이 조야한 자유는 이제 용도 폐기해야 할 때가 되었다. 더 이상 X는 필요 없다.

기자명 최태섭 (문화평론가)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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